[서울=뉴시스] 1937년 중국의 최대 출판사인 상무인서관에서는 '전영화장법'(電影化裝法)이 출간되었다. 이 책의 작자는 한국인 김광주(金光洲)였다. 우리나라 무협소설의 개척자 중 첫 손에 꼽히는 분으로 해방 후 우리 문단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 인물이다. 언론인이자 무협소설로 일가를 이룬 문단의 중요 인물인 김광주가 어떻게 해서 중국에서 중국어로 영화책을 냈던 것일까?
김광주의 젊은 시절은 문학인보다는 영화인에 가까웠다. 1929년 의학공부를 위해 상해로 온 그는 남양의대(南洋醫大)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의학공부보다는 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김광주는 당시 큰 인기를 끌던 배우 김염(金焰)을 비롯해 전창근(全昌根), 이경손(李慶孫) 등 상해 영화계에서 활약하고 있던 조선영화인들과 어울렸다. 또한 상해임시정부에서 각종 행사의 무대를 제작하고 연극 활동을 전개하는 등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활동했다.
1932년 1차 상해사변이 터질 무렵 조선으로 건너 온 김광주는 1933년 조선영화예술협회(朝鮮映畵藝術協會)에 가담하고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아름다운 희생>을 직접 연출했다. 이 영화를 끝으로 다시 상해로 돌아간 김광주는 아나키스트 조직인 남화연맹(南華聯盟)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보헤미안劇社”를 조직해 연극 활동을 전개하고 '신보'(晨報)에 영화평을 쓰면서 중국 매체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무렵 중국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상무인서관에서는 영화학자 서공미(徐公美)가 주도하여 전영소총서(電影小叢書)를 기획했다. 일반에 영화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기 위해 문고판 형태로 책을 발간하기로 한 것이다. 총서의 구성은 첫째 영화사(1권), 둘째 영화 이론(8권), 셋째 영화제작과 상영, 경영 방법 및 테크놀로지(5권) 등 총 14권으로 구성되었다. 이중 김광주가 집필을 맡은 '전영화장법'은 “사, 론, 법”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법”에 해당하는 책으로 총서의 마지막권이기도 했다.
이 총서는 1938년 5월부터 7월까지 발간되었다. 전영화장법의 판권지에는 “중화민국 27년 7월 초판(中華民國二十七年七月初版)”, 그러니까 1938년 7월에 발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38년 7월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시점이었다. 총서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인쇄소가 장사 남정로 상무인서관(印刷所 長沙南正路 商務印書館)”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아마도 1938년 7월 말이나 8월 무렵 중일전쟁의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상무인서관이 상해를 떠나 장사로 옮겼던 시기에 책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광주의 '전영화장법'은 영화기술의 변화에 맞춰 기획된 책이라 할 수 있다. 1930년대는 각국에서 칼라영화의 상용화에 대해 관심을 갖던 시기였다. 특히 할리우드에서는 테크니컬러(Technicolor)라는 천연색 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여 '백설공주'와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는 물론, '오즈의 마법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영화가 1930년대 후반에 제작되었다.
컬러기술이 활용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색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의 문제였다. 흑백영화 제작에 규격화 된 이전의 화장술과는 다른 새로운 화장술이 필요했다. 김광주가 영화를 만들어 본적이 있었기에 영화 분장술이라는 보다 실무적인 부분에 대한 집필을 김광주에게 맡겼던 것이다.
상무인서관으로 원고를 보낸 상태에서 중일전쟁이 터져 활동이 어려웠던 김광주는 상해를 떠났다. 자신의 원고가 책으로 나온 것을 확인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중국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구입하여 소장하게 되었다. 2018년 '근대서지' 제17호를 통해 그 내용을 소개하였다.
영화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발견은 영화사의 페이지를 새롭게 꾸민다는 측면에서 뿌듯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1930년대 중국 상해라는 공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발견이라 할 수 있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김광주의 젊은 시절은 문학인보다는 영화인에 가까웠다. 1929년 의학공부를 위해 상해로 온 그는 남양의대(南洋醫大)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의학공부보다는 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김광주는 당시 큰 인기를 끌던 배우 김염(金焰)을 비롯해 전창근(全昌根), 이경손(李慶孫) 등 상해 영화계에서 활약하고 있던 조선영화인들과 어울렸다. 또한 상해임시정부에서 각종 행사의 무대를 제작하고 연극 활동을 전개하는 등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활동했다.
1932년 1차 상해사변이 터질 무렵 조선으로 건너 온 김광주는 1933년 조선영화예술협회(朝鮮映畵藝術協會)에 가담하고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아름다운 희생>을 직접 연출했다. 이 영화를 끝으로 다시 상해로 돌아간 김광주는 아나키스트 조직인 남화연맹(南華聯盟)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보헤미안劇社”를 조직해 연극 활동을 전개하고 '신보'(晨報)에 영화평을 쓰면서 중국 매체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무렵 중국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상무인서관에서는 영화학자 서공미(徐公美)가 주도하여 전영소총서(電影小叢書)를 기획했다. 일반에 영화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기 위해 문고판 형태로 책을 발간하기로 한 것이다. 총서의 구성은 첫째 영화사(1권), 둘째 영화 이론(8권), 셋째 영화제작과 상영, 경영 방법 및 테크놀로지(5권) 등 총 14권으로 구성되었다. 이중 김광주가 집필을 맡은 '전영화장법'은 “사, 론, 법”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법”에 해당하는 책으로 총서의 마지막권이기도 했다.
이 총서는 1938년 5월부터 7월까지 발간되었다. 전영화장법의 판권지에는 “중화민국 27년 7월 초판(中華民國二十七年七月初版)”, 그러니까 1938년 7월에 발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38년 7월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시점이었다. 총서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인쇄소가 장사 남정로 상무인서관(印刷所 長沙南正路 商務印書館)”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아마도 1938년 7월 말이나 8월 무렵 중일전쟁의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상무인서관이 상해를 떠나 장사로 옮겼던 시기에 책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광주의 '전영화장법'은 영화기술의 변화에 맞춰 기획된 책이라 할 수 있다. 1930년대는 각국에서 칼라영화의 상용화에 대해 관심을 갖던 시기였다. 특히 할리우드에서는 테크니컬러(Technicolor)라는 천연색 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여 '백설공주'와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는 물론, '오즈의 마법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영화가 1930년대 후반에 제작되었다.
컬러기술이 활용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색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의 문제였다. 흑백영화 제작에 규격화 된 이전의 화장술과는 다른 새로운 화장술이 필요했다. 김광주가 영화를 만들어 본적이 있었기에 영화 분장술이라는 보다 실무적인 부분에 대한 집필을 김광주에게 맡겼던 것이다.
상무인서관으로 원고를 보낸 상태에서 중일전쟁이 터져 활동이 어려웠던 김광주는 상해를 떠났다. 자신의 원고가 책으로 나온 것을 확인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중국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구입하여 소장하게 되었다. 2018년 '근대서지' 제17호를 통해 그 내용을 소개하였다.
영화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발견은 영화사의 페이지를 새롭게 꾸민다는 측면에서 뿌듯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1930년대 중국 상해라는 공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발견이라 할 수 있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