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희게 센 사람 원해"…오바마의 '머리의 선택'
교통사고로 배우자·딸 잃어…장남도 먼저 보낸 비극의 가족사
세 번째 대선 도전 결실…트럼프 反다자주의 행보 되돌릴 듯
[서울=뉴시스] 김난영 기자 =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새로운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바이든 당선인은 7일(현지시간)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승리하면서 선거인단 273명을 확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꺾고 미국 제46대 대통령이 됐다.
대북정책을 비롯한 한반도 정책에 대폭 변화가 예상된다. 세 번의 도전 끝에 백악관행 티켓을 거머쥔 그는 누구인가.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2009~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8년의 백악관 시기를 같이 보낸 인물이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도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우정이 그의 지지세 형성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만 47세의 젊은 청년 후보였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캐릭터를 보완할 러닝메이트 후보로 '경륜 있는 백인'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머리가 희게 센 누군가를 원한다"라는 게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언이었다.
당시 함께 후보군으로 거론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 모두 바이든 당선인보다 젊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케인 당시 주지사에게 "내 가슴은 당신을 택하지만, 내 머리는 조(바이든)를 택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바이든 당선인은 젊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약점으로 꼽혔던 외교·안보 경험 부족을 상쇄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됐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러닝메이트 공식 발표 전부터 바이든 당선인과 여러 차례 통화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당내 경선 과정에선 공개적으로 바이든 당선인을 지지하진 않았었다.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침묵을 지키면서, 공개 지지를 바란 바이든 당선인 측이 불만을 품었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나왔었다.
이후 양당 후보가 확정된 후엔 오바마 전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바이든 당선인 지원을 펼쳐왔다. 지난 21일 이번 대선 주요 경합 주 중 한 곳인 펜실베이니아에서 공개 유세에 등판했으며, 유세 때마다 "내 친구 바이든"을 외쳐왔다.
대북정책을 비롯한 한반도 정책에 대폭 변화가 예상된다. 세 번의 도전 끝에 백악관행 티켓을 거머쥔 그는 누구인가.
'흑인 청년' 보완한 관록의 백인…오바마와 '우정 과시'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2009~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8년의 백악관 시기를 같이 보낸 인물이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도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우정이 그의 지지세 형성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만 47세의 젊은 청년 후보였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캐릭터를 보완할 러닝메이트 후보로 '경륜 있는 백인'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머리가 희게 센 누군가를 원한다"라는 게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언이었다.
당시 함께 후보군으로 거론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 모두 바이든 당선인보다 젊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케인 당시 주지사에게 "내 가슴은 당신을 택하지만, 내 머리는 조(바이든)를 택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바이든 당선인은 젊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약점으로 꼽혔던 외교·안보 경험 부족을 상쇄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됐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러닝메이트 공식 발표 전부터 바이든 당선인과 여러 차례 통화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당내 경선 과정에선 공개적으로 바이든 당선인을 지지하진 않았었다.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침묵을 지키면서, 공개 지지를 바란 바이든 당선인 측이 불만을 품었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나왔었다.
이후 양당 후보가 확정된 후엔 오바마 전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바이든 당선인 지원을 펼쳐왔다. 지난 21일 이번 대선 주요 경합 주 중 한 곳인 펜실베이니아에서 공개 유세에 등판했으며, 유세 때마다 "내 친구 바이든"을 외쳐왔다.
비극적 가족사…'눈물의 정치인' 단골 이미지로
바이든 당선인을 거론할 때면 빠지지 않는 요소가 '비극적 가족사'다. 특히 46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장남 보 바이든 스토리는 그가 연설에 나설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보 바이든은 바이든 당선인과 그 전처 닐리아 소생의 첫아들이다. 투자회사 등에서 일해온 차남 헌터 바이든과 달리 정치의 길을 걸어 바이든 당선인과 더욱 유대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에서 파병 생활을 했고 델라웨어 주법무장관을 지냈다. 당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선이 치러지던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직접 연설 무대에 올라 아버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 2015년 뇌암 투병 끝에 사망한 보 바이든은 이듬해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불출마 선언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한때 보 바이든이 유언으로 대선 출마를 권유했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바이든 당선인은 결국 가족들의 심중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보 바이든 사망 이후 부통령 자격으로 "그(보)는 완벽한 명예로 우리 가족의 롤 모델이 됐다. 부모는 자식이 자신보다 나은 일을 할 때 성공을 깨닫는다는 내 아버지의 말씀을 표상했다"라는 성명을 냈었다. 그는 아직도 공개 연설 자리에서 보 바이든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자주 내비친다.
이 밖에도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1972년 교통사고로 첫 배우자와 한 살배기 딸 나오미를 잃었다. 그가 첫 상원의원 선거에서 이긴 직후다. 바이든 당선인은 당시 의원직 사임을 고려했으나, 당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마이크 맨스필드가 만류했다고 한다.
현재 배우자인 질 바이든과는 지난 1975년 연이 시작돼 1977년 결혼했다. 둘 사이에 딸 애슐리 바이든이 있다.
세 번의 도전…첫 본선行에 결국 승기 거머쥐어
지난 1972년 상원의원 선거로 주류 정치 생활을 시작한 바이든 정치인은 올해까지 정치 경력만 50년이 넘는다. 델라웨어 지역구를 토대로 미 연방 상원 정치 생활을 이어왔다.
지난 1988년과 2008년 이미 두 차례 대권에 도전한 이력이 있다. 1988년엔 중도적 이미지, 상원 법사위원장으로서 경륜과 인지도 면에서 꽤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선거 캠프 내 불화와 연설 표절 논란 등으로 결국 중도 사퇴했다.
2008년 대선 경선에선 자신의 외교 경륜과 오랜 정치 경험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펼쳤다. 그러나 당시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비해 이목을 끌지 못했고, 첫 투표 대결이었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4%로 5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둔 뒤 하차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결국 백악관 입성 티켓을 거머쥔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4년 동안 걸어온 반(反)다자주의 행보를 비롯한 다양한 외교 기조에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간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돼온 대북 외교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일각에선 바이든 당선인이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반복하며 사실상 북핵 방치 기조를 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만 그간 교착을 겪어온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속도가 붙고, 주한미군 지위가 보다 안정되리라는 기대도 나온다.
상원 외교위원장 재직 시절엔 의회 내 외교통이자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이슈에 풍부한 경험을 쌓아온 지한파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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