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 잇는 428㎞ 경부고속도로 50주년
한국도로공사, 반세기 고속도로 변천사 정리
오토바이 달리던 시절…한강의 기적 원동력
[서울=뉴시스] 강세훈 기자 = 서울에서 부산을 잇는 428㎞의 경부고속도로가 7일 개통 50주년을 맞았다. 경부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도성장의 토대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현재 하루 77만대의 차량이 오가는 국가 대동맥이 됐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날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을 맞아 반세기의 고속도로 변천사를 정리했다.
◇삽과 곡괭이로 만든 고속도로에서 스마트 건설기술의 시대로
고속도로 건설을 시작할 당시 우리나라의 토목 기술력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경부고속도로는 순수 우리 기술로 완성됐다.
경부고속도로 최대 난공사 구간으로 꼽히는 당재터널 현장에서는 발파작업을 하면 토사가 쏟아져 내리는 낙반사고가 무려 13번이나 발생했으며, 지질상황에 따라 하루에 30㎝도 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전육교(연장 201m, 높이 35m)는 건설 당시 최고 높이의 교량이었으며,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커브형 아치교였다.
2001년 이후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근현대시기 대한민국 토목기술력이 집약된 상징성을 인정받아 건설 50주년을 맞은 올해 국가등록문화재 제783호로 등록됐다.
현재 대한민국의 토목 기술력은 지난 50년간 고속도로를 건설하며 축적한 노하우와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서해대교는 2000년 11월 개통 당시 총길이 7310m, 주탑 높이는 63빌딩과 비슷한 182m로 해상교량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착공부터 개통까지 7년 동안 연인원 220만 명과 장비 45만대가 동원됐다.
주탑을 세우기 위해 바다 한 가운데에 축구장 3개 크기의 우물통을 만들어 물을 퍼내는 국내 최대 규모의 '가물막이' 공법을 사용했으며, 각종 신기술을 적용해 초속 65m의 강풍과 리히터 규모 6.3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는 교량으로 건설됐다.
도로터널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세계에서도 11번째로 긴 터널인 서울양양고속도로 인제양양터널(총 연장 11㎞)은 터널 중간에 건설 장비가 들어가 동시에 굴착을 진행하는 '네 방향 동시 굴착방식'을 적용해 공사기간을 예상보다 2년 앞당겨 2017년 개통됐다.
◇유지관리의 기계화로 업무효율 제고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유지관리 경험이 전혀 없었다. 노면청소나 제설작업은 빗자루와 삽을 사용했으며, 시설물 점검도 망원경 외에는 육안에 의존하는 기초적 수준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지관리제도가 정착됐으며 1990년대 이후 점차 현대화·기계화 됐다.
안전순찰업무 역시 유지관리업무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개통 초기 주간에는 유지보수 담당자가 순찰업무까지 수행했으며, 야간에는 당직근무자가 순찰업무를 수행했다. 1970년 9월 시행된 도로법에 따라 한국도로공사 최초의 안전순찰원이 현장에서 근무를 수행하게 된다.
◇'종이 통행권'에서 '다차로 하이패스'까지
고속도로 수납의 역사는 1968년 경부고속도로 서울~오산 구간과 경인고속도로 서울~인천 구간이 개통되면서 시작됐다.
하루 평균 교통량이 9000여 대에 불과하던 시절, 고속도로 입구에서 종이 통행권을 구입해 출구에서 제출하는 식이었다. 운행 중 목적지를 변경할 경우 출구에서 추가요금을 내거나 잔여요금을 환불받아야 했다.
1980년대에는 차량을 4종(소형·보통·승합·버스 등)으로 분류했는데, 전국의 고속도로 영업소는 59개(1985년 기준)였기 때문에, 영업소 부스 하나에서 판매하는 통행권의 종류는 무려 230여 가지나 됐다.
게다가 영업소별로 각기 다른 통행권을 발행했기 때문에, 전국으로 따지면 무려 1만4000가지 통행권이 존재했다. 1982년 자동요금시스템 ATS(기계화 수납방식의 시초)를 도입했으나 차종 분류 기능의 한계로 확대되지 못했다.
1994년 8월16일 통행료 수납 기계화시스템(TCS)이 전면 도입되면서, 고속도로와 함께 탄생했던 종이 통행권은 사라졌다. 입구 유인 발매는 자동 발권기로 변경되고, 통행료 지불방식도 고속도로 카드 등으로 다양해졌다. 요금 징수방식의 대대적인 변화로 차량 1대당 수납시간은 기존 24초에서 14초로 크게 단축됐다.
하이패스는 2000년 6월 판교, 청계, 성남 3개소에서 시범 운영에 들어갔으며, 이후 단계적 확대를 거쳐 2007년 12월 전국 고속도로에 구축됐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유지관리 경험이 전혀 없었다. 노면청소나 제설작업은 빗자루와 삽을 사용했으며, 시설물 점검도 망원경 외에는 육안에 의존하는 기초적 수준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지관리제도가 정착됐으며 1990년대 이후 점차 현대화·기계화 됐다.
안전순찰업무 역시 유지관리업무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개통 초기 주간에는 유지보수 담당자가 순찰업무까지 수행했으며, 야간에는 당직근무자가 순찰업무를 수행했다. 1970년 9월 시행된 도로법에 따라 한국도로공사 최초의 안전순찰원이 현장에서 근무를 수행하게 된다.
◇'종이 통행권'에서 '다차로 하이패스'까지
고속도로 수납의 역사는 1968년 경부고속도로 서울~오산 구간과 경인고속도로 서울~인천 구간이 개통되면서 시작됐다.
하루 평균 교통량이 9000여 대에 불과하던 시절, 고속도로 입구에서 종이 통행권을 구입해 출구에서 제출하는 식이었다. 운행 중 목적지를 변경할 경우 출구에서 추가요금을 내거나 잔여요금을 환불받아야 했다.
1980년대에는 차량을 4종(소형·보통·승합·버스 등)으로 분류했는데, 전국의 고속도로 영업소는 59개(1985년 기준)였기 때문에, 영업소 부스 하나에서 판매하는 통행권의 종류는 무려 230여 가지나 됐다.
게다가 영업소별로 각기 다른 통행권을 발행했기 때문에, 전국으로 따지면 무려 1만4000가지 통행권이 존재했다. 1982년 자동요금시스템 ATS(기계화 수납방식의 시초)를 도입했으나 차종 분류 기능의 한계로 확대되지 못했다.
1994년 8월16일 통행료 수납 기계화시스템(TCS)이 전면 도입되면서, 고속도로와 함께 탄생했던 종이 통행권은 사라졌다. 입구 유인 발매는 자동 발권기로 변경되고, 통행료 지불방식도 고속도로 카드 등으로 다양해졌다. 요금 징수방식의 대대적인 변화로 차량 1대당 수납시간은 기존 24초에서 14초로 크게 단축됐다.
하이패스는 2000년 6월 판교, 청계, 성남 3개소에서 시범 운영에 들어갔으며, 이후 단계적 확대를 거쳐 2007년 12월 전국 고속도로에 구축됐다.
2016년에는 원톨링(재정·민자 통합정산)시스템이 시행돼 민자고속도로 본선에 위치하던 중간정산 요금소가 사라졌으며, 2018년에는 2~3개 차로를 하나로 묶어 통과속도가 더 빠르고 안전한 다차로 하이패스가 도입됐다.
◇이용자 중심의 편의시설 구축
1971년 1월 개장한 추풍령휴게소는 경부고속도로 중간지점에 위치한 최초의 휴게소다. 화물차량의 증가로 1974년에는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에 고속도로 최초의 숙박시설인 '운전사의 집'이 설치되었다.
한 끼를 때우고 잠시 쉬다가던 휴게소는 화장실 문화개선, EX화물차 라운지, 알뜰주유소 등 지속적으로 고객서비스를 개선하고 있으며, 청년창업매장과 공유주방 등 상생을 실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또한 휴식뿐만 아니라 문화와 여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테마 휴게소'로 쉼 없이 진화하고 있다.
◇고속도로, 한강의 기적을 이끈 원동력
대한민국은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경제 발전과 함께 급증하는 교통수요에 맞춰 전국 간선도로망을 구축해왔다. 그 결과 2012년 고속도로 연장 4000㎞를 돌파한 데 이어 5000㎞ 시대를 앞두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시간이 10시간 가까이 단축되자 국가 수송체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고속도로는 여객은 물론 화물 수송수단을 철도에서 도로 중심으로 전환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과 수출 중심으로 근대화했고, 1977년 수출 100억 달러와 국민소득 1000달러 달성 등 국내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9번째,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2번째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한 세계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재화의 빠른 이동을 가능하게 한 공공 인프라를 갖추게 됐기 때문이다.
◇1972년에는 오토바이도 고속도로 달렸다
경부고속도로의 대표 관문인 서울 톨게이트는 개통 당시 서울시 원지동에 있었으나, 교통난 해소를 위해 1987년 성남시 궁내동으로 이전했다. 본래 톨게이트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의 만남의 광장 휴게소가 생겼다.
1972년까지 250㏄ 이상의 오토바이와 삼륜차는 고속도로 통행이 가능했다. 현재는 안전을 위해 자동차 이외의 다른 교통수단의 통행은 허용되지 않으며, 당연히 사람이 걸어 다닐 수도 없다.
경부고속도로는 지금까지 건설된 고속도로 중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짧은 공사기간에 가장 적은 공사비를 투입해 완성한 고속도로다. 일본 최초의 고속도로인 메이신(名新) 고속도로는 9년 만에 개통됐는데, 경부고속도로는 완전개통까지 정확하게 2년 5개월 7일이 걸렸다.
당시 경부고속도로의 총건설비는 약 429억원(1㎞당 약 1억원)이 소요됐는데, 2018년 기준 4차로 신설고속도로의 ㎞당 평균단가는 443억원으로 물가상승을 고려해도 경부고속도로 공사비가 매우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초기 경부고속도로는 식수대(植樹帶)가 중앙분리대의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월담을 통한 충돌사고로 인해 1980년대부터 높이 81㎝의 콘크리트 방호울타리와 헤드라이트 불빛을 막는 방현망을 함께 설치했다. 현재는 높이 127㎝의 중앙분리대가 설치된다.
◇고속버스도 등장...1970년 서울~부산 1600원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더불어 고속버스가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1970년 당시 서울~부산 구간 고속버스 요금은 성인 기준 1600원이었다.
이 시절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을 꼽으라면, 고속버스 기사와 안내양이 뽑힐 정도로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1990년대에 들어 자가용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고속도로 지정체가 심각해졌다. 정부는 1994년 경부고속도로 서울 양재에서 대전 신탄진에 이르는 134㎞ 구간에서 버스전용차로제를 시범운영하고, 1995년 2월 주말과 공휴일을 대상으로 버스전용차로제를 본격 시행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