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서 일할 때 입법기관·국회의원 중요성 깨달아
지역구 사무실, 지역구민에 '열린공간'으로 개방
선거운동 하루 5만 보 걸으며 지역주민과 소통
지역구 집값·교통 문제 해결 위해 '국토위' 희망
[서울=뉴시스] 한주홍 기자 =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의 경기 고양 덕양구 지역 사무실은 특별하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여느 지역구 의원의 사무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한 켠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이 준비돼 있고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아이들이나 엄마들이 근처에 갈 곳이 많지 않은데 열린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총선이 끝나자마자 4월16일부터 공사를 시작해 이제 거의 완성됐습니다."
새내기로 21대 국회 등원을 준비하는 한 당선인의 포부가 묻어나는 공간이다. 지역구에 대한 애정도 담겼다. 총선을 전후로 한 당선인은 완전한 '덕양 사람'으로 거듭났다. 하루 평균 5만보를 걸으며 지역구를 누볐다. 하도 걸어다녀 발가락에 티눈이 생길 정도였다.
총선 후에는 지역구 공부에 매진했다. 지역구 현안을 묻는 질문에도 기다렸단 듯 답이 쏟아져나왔다. 고양시의 숙제인 부동산,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희망 상임위원회도 국토교통위원회로 적어냈다.
"사실 숙명이라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나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를 가야겠지만 전반기 2년동안은 지역구 현안 해결을 위해 국토교통위원회에 가고 싶어요."
자신을 '부드럽지만 집요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한 당선인은 국회의원 임기 4년을 고양시 현안 해결에 집요하게 쓸 작정이다. 교통·집값 문제에 박탈감을 느끼는 '고양시민 소외감 해결'이 1번 숙제다.
지역구 현안 해결을 위해 개원 전부터 바쁘게 뛰고 있는 한 당선인을 21일 경기 고양을 그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한 당선인과의 인터뷰 요지.
-총선 후 한 달 여 넘는 시간이 흘렀다.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떤가.
"지역 현안과 관련해 세웠던 공약들을 어떻게 이행할지 시, 공무원, 시장 등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은평구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은평구와도 만나야 하고, 현안인 지하철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도 나간다. 지역 현안에 가장 많이 시간을 쓰고 있다. 또 최근 원내대표 선거를 비롯해 국회의장 선거도 예정돼 있고 당내 현안이 많다. 선배들이 가끔 만남을 주선해 그런 모임에도 나간다."
"아이들이나 엄마들이 근처에 갈 곳이 많지 않은데 열린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총선이 끝나자마자 4월16일부터 공사를 시작해 이제 거의 완성됐습니다."
새내기로 21대 국회 등원을 준비하는 한 당선인의 포부가 묻어나는 공간이다. 지역구에 대한 애정도 담겼다. 총선을 전후로 한 당선인은 완전한 '덕양 사람'으로 거듭났다. 하루 평균 5만보를 걸으며 지역구를 누볐다. 하도 걸어다녀 발가락에 티눈이 생길 정도였다.
총선 후에는 지역구 공부에 매진했다. 지역구 현안을 묻는 질문에도 기다렸단 듯 답이 쏟아져나왔다. 고양시의 숙제인 부동산,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희망 상임위원회도 국토교통위원회로 적어냈다.
"사실 숙명이라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나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를 가야겠지만 전반기 2년동안은 지역구 현안 해결을 위해 국토교통위원회에 가고 싶어요."
자신을 '부드럽지만 집요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한 당선인은 국회의원 임기 4년을 고양시 현안 해결에 집요하게 쓸 작정이다. 교통·집값 문제에 박탈감을 느끼는 '고양시민 소외감 해결'이 1번 숙제다.
지역구 현안 해결을 위해 개원 전부터 바쁘게 뛰고 있는 한 당선인을 21일 경기 고양을 그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한 당선인과의 인터뷰 요지.
-총선 후 한 달 여 넘는 시간이 흘렀다.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떤가.
"지역 현안과 관련해 세웠던 공약들을 어떻게 이행할지 시, 공무원, 시장 등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은평구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은평구와도 만나야 하고, 현안인 지하철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도 나간다. 지역 현안에 가장 많이 시간을 쓰고 있다. 또 최근 원내대표 선거를 비롯해 국회의장 선거도 예정돼 있고 당내 현안이 많다. 선배들이 가끔 만남을 주선해 그런 모임에도 나간다."
-당선 후 가족들의 반응이 어땠나.
"아내는 당연히 좋아했다. 총선 당일 오후 10시께 당선이 거의 확정됐다. 감사인사를 드리려고 사무실에서 인사를 하는데 아내가 제 손을 꽉 잡더라. 첫째 아이가 고3, 둘째 아이가 고1인데 사실 아이들은 제가 선거에 출마한지도 몰랐다. (총선 후인) 16일 저녁에야 큰 아이가 '아빠, 국회의원 됐어요?' 하더라. 선거 기간에는 전혀 말을 안 했다. 우리가 하는 일 때문에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싫었다. 고3 담임 선생님인 아내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학교로 돌아갔다. 가족들은 선거에 전혀 개입 못하게 했다. 아버지, 남동생, 여동생도 선거 때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공천을 늦게 받아 상대적으로 선거운동 기간이 짧았다. 어땠나.
"3월 첫 주에 전략공천을 받고 6주를 뛰었다. 저는 일산에서만 16년 살았지만 덕양구에 전략공천을 받았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거부감 해소와 현역이었던 정재호 의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홍보 활동을 일주일간 일절 하지 않았다. 이후 정 의원님께서 저를 간접 지지해주셨고 그 이후 시·도의원들에게 연락하고 선거캠프에 합류해달라 부탁드렸다. 3월16일에야 정식 출마 선언을 해서 실제로는 4주를 뛰었다."
-민심은 어떻던가.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선거를 위해서는 향우회 모임 같은 곳에 가야 하는데 그런 만남은 최소화했다. 늦게 뛰어들다 보니 주민들을 최대한 만나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지역을 걸었다. 많이 걸을 때는 하루에 5만보까지 걸었다. 때문에 티눈이 생겨 선거가 끝나고 치료를 받을 정도였다. 행주내동과 행주외동을 걸어서 두 번 넘을 정도였다. 5만보 이상 걸으면서 주민 만나기에만 매진했던 게 선거에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지역구를 돌면 지금ㄷ 과일가게 분들, 분식집 사장님들이 반가워하신다. 그런 데서 호감도가 좀 있지 않았나 싶다."
-방송사에서 16년간 근무했다. 이후 청와대 생활도 했고 이력이 다양한데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세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MBC 노조 활동을 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있었다. 미디어법 (통과) 때문에 파업을 하고 국회 난입도 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있는 게 없더라. 그때 정치가 굉장히 중요하구나, 입법기관의 힘이 중요하구나 생각했다. 두 번째는 회사를 나와서 청와대 들어갔을 때다. 청와대에 있으면서 행정기관 수장으로서 만들어진 법을 운용하는 묘미도 느꼈지만 입법의 중요성을 더 세게 느꼈던 것 같다. '정치를 직접 해봐야겠다'고 고민하게 된 건 지난해 6, 7월 몇몇 국회의원 선배들이 권하면서부터다. 당시 '정치가 무엇이냐'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치는 서비스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치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시각의 변화가 생겼고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치를 해보자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이후 지난해 12월 당에서 정치에 뜻이 있느냐고 제안이 와서 이번 총선까지 오게 됐다."
-청와대 행정관으로도 일했는데 입법 부분에서 한계나 갈증을 느꼈던 건가.
"한계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광주형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해도 부처나 기업의 움직임이 따라오지 못한다. 정부의 정책이나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뒤따라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법의 문제에서 걸리는 것들도 많았다. 빨리 입안돼 처리돼야 하는데 법사위에 막혀서 못 올라가는 것들도 많았다. 어떤 문제를 매개해서 풀어나가는 사람들이 입법기관의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청와대에서 소통수석실에 있었으니 가짜뉴스 대책, 언론 독립성 강화 방안, 대한민국 K-콘텐츠, 미디어 진흥 등을 (위에서) 주문하는데 부처에서 이런 걸 만들어내지 못하더라. 입법의 중요성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아내는 당연히 좋아했다. 총선 당일 오후 10시께 당선이 거의 확정됐다. 감사인사를 드리려고 사무실에서 인사를 하는데 아내가 제 손을 꽉 잡더라. 첫째 아이가 고3, 둘째 아이가 고1인데 사실 아이들은 제가 선거에 출마한지도 몰랐다. (총선 후인) 16일 저녁에야 큰 아이가 '아빠, 국회의원 됐어요?' 하더라. 선거 기간에는 전혀 말을 안 했다. 우리가 하는 일 때문에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싫었다. 고3 담임 선생님인 아내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학교로 돌아갔다. 가족들은 선거에 전혀 개입 못하게 했다. 아버지, 남동생, 여동생도 선거 때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공천을 늦게 받아 상대적으로 선거운동 기간이 짧았다. 어땠나.
"3월 첫 주에 전략공천을 받고 6주를 뛰었다. 저는 일산에서만 16년 살았지만 덕양구에 전략공천을 받았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거부감 해소와 현역이었던 정재호 의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홍보 활동을 일주일간 일절 하지 않았다. 이후 정 의원님께서 저를 간접 지지해주셨고 그 이후 시·도의원들에게 연락하고 선거캠프에 합류해달라 부탁드렸다. 3월16일에야 정식 출마 선언을 해서 실제로는 4주를 뛰었다."
-민심은 어떻던가.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선거를 위해서는 향우회 모임 같은 곳에 가야 하는데 그런 만남은 최소화했다. 늦게 뛰어들다 보니 주민들을 최대한 만나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지역을 걸었다. 많이 걸을 때는 하루에 5만보까지 걸었다. 때문에 티눈이 생겨 선거가 끝나고 치료를 받을 정도였다. 행주내동과 행주외동을 걸어서 두 번 넘을 정도였다. 5만보 이상 걸으면서 주민 만나기에만 매진했던 게 선거에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지역구를 돌면 지금ㄷ 과일가게 분들, 분식집 사장님들이 반가워하신다. 그런 데서 호감도가 좀 있지 않았나 싶다."
-방송사에서 16년간 근무했다. 이후 청와대 생활도 했고 이력이 다양한데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세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MBC 노조 활동을 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있었다. 미디어법 (통과) 때문에 파업을 하고 국회 난입도 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있는 게 없더라. 그때 정치가 굉장히 중요하구나, 입법기관의 힘이 중요하구나 생각했다. 두 번째는 회사를 나와서 청와대 들어갔을 때다. 청와대에 있으면서 행정기관 수장으로서 만들어진 법을 운용하는 묘미도 느꼈지만 입법의 중요성을 더 세게 느꼈던 것 같다. '정치를 직접 해봐야겠다'고 고민하게 된 건 지난해 6, 7월 몇몇 국회의원 선배들이 권하면서부터다. 당시 '정치가 무엇이냐'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치는 서비스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치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시각의 변화가 생겼고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치를 해보자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이후 지난해 12월 당에서 정치에 뜻이 있느냐고 제안이 와서 이번 총선까지 오게 됐다."
-청와대 행정관으로도 일했는데 입법 부분에서 한계나 갈증을 느꼈던 건가.
"한계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광주형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해도 부처나 기업의 움직임이 따라오지 못한다. 정부의 정책이나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뒤따라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법의 문제에서 걸리는 것들도 많았다. 빨리 입안돼 처리돼야 하는데 법사위에 막혀서 못 올라가는 것들도 많았다. 어떤 문제를 매개해서 풀어나가는 사람들이 입법기관의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청와대에서 소통수석실에 있었으니 가짜뉴스 대책, 언론 독립성 강화 방안, 대한민국 K-콘텐츠, 미디어 진흥 등을 (위에서) 주문하는데 부처에서 이런 걸 만들어내지 못하더라. 입법의 중요성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여당이 180여석의 압승을 거둘 거라고 생각했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선거에 뛰던 당사자인데 내가 지면 의석 한 석이 사라지니까 어떻게든 당선돼야 한단 생각밖에 없었다. (선거운동을 시작하고) 첫 2주는 150석을 넘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선거를 본격적으로 뛰면서 반응이 좀 왔다. 특히 사전투표 기간이 끝난 뒤 선거운동을 하면서 전국 단위에서 큰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겠다 싶었다. 접전지는 사실 줄다리기 같은 거잖나. 마지막에 어디로 끌려가는지가 중요한 건데 우리 쪽으로 끌려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제가 캠프 식구들에게도 '당겨지는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이기겠다, 이길 수 있겠다 하는 확신이 들었다."
-180석이 주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기일전하라는 의미가 큰 같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난 한준호씨를 모르지만 어쨌든 찍을 거다. 그러니까 빨리 (문제를) 해결해서 국민들을 다시 잘 살수 있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 제가 잘나서 당선됐다기보다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과제를 주신 걸 제가 일부분 떠안았다고 본다."
-어느 상임위원회에 가고 싶나.
"국토교통위원회를 1지망에 썼다. 제 지역구가 창릉 3기 신도시 지역이다. 3기 신도시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전체 246만 평인데 가용면적의 40%인 41만평이 자족용지라고 해서 판교의 2배 크기로 조성된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런 걸 지키기 위해서 국토 현안을 살피고 있다.
방송사에서 오랫동안 일했기 때문에 과방위나 문체위 가는 게 숙명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 가서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는 지역 현안에 몰입하고 나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그래야 그쪽 일을 열심히 할 때도 지역구민의 불편함이 없지 않겠나. 지역 현안에 1, 2년 열심히 매진하고 이후에 당직도 맡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과방위나 문체위에서 하고 싶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선거에 뛰던 당사자인데 내가 지면 의석 한 석이 사라지니까 어떻게든 당선돼야 한단 생각밖에 없었다. (선거운동을 시작하고) 첫 2주는 150석을 넘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선거를 본격적으로 뛰면서 반응이 좀 왔다. 특히 사전투표 기간이 끝난 뒤 선거운동을 하면서 전국 단위에서 큰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겠다 싶었다. 접전지는 사실 줄다리기 같은 거잖나. 마지막에 어디로 끌려가는지가 중요한 건데 우리 쪽으로 끌려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제가 캠프 식구들에게도 '당겨지는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이기겠다, 이길 수 있겠다 하는 확신이 들었다."
-180석이 주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기일전하라는 의미가 큰 같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난 한준호씨를 모르지만 어쨌든 찍을 거다. 그러니까 빨리 (문제를) 해결해서 국민들을 다시 잘 살수 있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 제가 잘나서 당선됐다기보다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과제를 주신 걸 제가 일부분 떠안았다고 본다."
-어느 상임위원회에 가고 싶나.
"국토교통위원회를 1지망에 썼다. 제 지역구가 창릉 3기 신도시 지역이다. 3기 신도시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전체 246만 평인데 가용면적의 40%인 41만평이 자족용지라고 해서 판교의 2배 크기로 조성된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런 걸 지키기 위해서 국토 현안을 살피고 있다.
방송사에서 오랫동안 일했기 때문에 과방위나 문체위 가는 게 숙명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 가서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는 지역 현안에 몰입하고 나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그래야 그쪽 일을 열심히 할 때도 지역구민의 불편함이 없지 않겠나. 지역 현안에 1, 2년 열심히 매진하고 이후에 당직도 맡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과방위나 문체위에서 하고 싶다."
-지역구 최대 현안은 뭔가.
"교통과 발전, 기피시설에 대한 소외감을 해소하는 문제다. 고양시 집값 문제가 발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교통 문제다. 차가 막히면 여의도 가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린다. 일산, 파주에서 넘어오니 (대중교통을 타면) 앉아서 가는 분들이 아무도 없다.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신분당선, 5호선을 끌어오는 문제가 중요하다. 또 고양시 전체에서 덕양구가 발전에 뒤쳐져 있다. 다행히 창릉 3기 신도시 지역이라 이걸 잘 만들어내야 한다. 국회의원으로서 '영업'을 열심히 해 좋은 기업을 많이 유치하는 게 고양시를 살리는 마지막 보루다. 마지막으로 저희 지역구 인접 지역에 열병합발전소, 난지물재생센터, 음식물처리장 등 유해시설들이 들어와 있다. 여기에 대한 해결 문제도 있다.
고양시에서 가장 하고 싶은 건 소외감 해소다. 발전, 교통, 기피시설 등에 대한 지역구민의 소외감이 크다. 이런 것을 해결하는 데 4년간 집중하고 싶다."
-초선의원으로서 21대 국회 의정활동 포부는 무엇인가.
"저를 뽑아주고 기회를 준 당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국민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국정운영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할 것인가, 대한민국이 나아가기 위해 어떤 것을 고쳐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제 역할을 찾을 거다.
지역에서 저를 뽑아주신 것이기 때문에 (지역구민의) 소외감, 불만감을 해소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전반기는 지역 현안에 집중하고, 후반기에는 당과 여당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지역 현안 집중을 위해 연구모임도 최소화하려고 한다. 연구모임 등 활동을 줄이면 지역 활동에 더 시간을 쓸 수 있지 않나.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활동만 집중적으로 하고, 다른 활동들은 전반기에는 안 하려고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교통과 발전, 기피시설에 대한 소외감을 해소하는 문제다. 고양시 집값 문제가 발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교통 문제다. 차가 막히면 여의도 가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린다. 일산, 파주에서 넘어오니 (대중교통을 타면) 앉아서 가는 분들이 아무도 없다.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신분당선, 5호선을 끌어오는 문제가 중요하다. 또 고양시 전체에서 덕양구가 발전에 뒤쳐져 있다. 다행히 창릉 3기 신도시 지역이라 이걸 잘 만들어내야 한다. 국회의원으로서 '영업'을 열심히 해 좋은 기업을 많이 유치하는 게 고양시를 살리는 마지막 보루다. 마지막으로 저희 지역구 인접 지역에 열병합발전소, 난지물재생센터, 음식물처리장 등 유해시설들이 들어와 있다. 여기에 대한 해결 문제도 있다.
고양시에서 가장 하고 싶은 건 소외감 해소다. 발전, 교통, 기피시설 등에 대한 지역구민의 소외감이 크다. 이런 것을 해결하는 데 4년간 집중하고 싶다."
-초선의원으로서 21대 국회 의정활동 포부는 무엇인가.
"저를 뽑아주고 기회를 준 당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국민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국정운영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할 것인가, 대한민국이 나아가기 위해 어떤 것을 고쳐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제 역할을 찾을 거다.
지역에서 저를 뽑아주신 것이기 때문에 (지역구민의) 소외감, 불만감을 해소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전반기는 지역 현안에 집중하고, 후반기에는 당과 여당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지역 현안 집중을 위해 연구모임도 최소화하려고 한다. 연구모임 등 활동을 줄이면 지역 활동에 더 시간을 쓸 수 있지 않나.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활동만 집중적으로 하고, 다른 활동들은 전반기에는 안 하려고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