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까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
![[서울=뉴시스] 차지연. (사진 = 우란문화재단, 프로젝트그룹 일다제공) 2020.03.31. realpaper7@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3/31/NISI20200331_0000503712_web.jpg?rnd=20200331080745)
[서울=뉴시스] 차지연. (사진 = 우란문화재단, 프로젝트그룹 일다제공) 2020.03.3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블루'로 대변되는 파란하늘 끝에 매달린 회색 점 하나.
지난 14일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한국 초연의 막을 올린 모노극 '그라운디드(GROUNDED)'는 삶의 무한한 가능성과 절망을 동시에 품어낸 수작이다.
뮤지컬배우 차지연이 홀로 전투복 한 벌과 의자 하나에만 의지한 이 연극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의 씨줄과 날줄을 90분 안에 빛나게 압축해놓았다.
미국 극작가 조지 브랜트(George Brant)의 대표작. 에이스급 전투기 조종사가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라스베이거스의 크리치 공군기지에서 군용 무인정찰기(드론)를 조종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최근 공연계에는 단순한 여성 중심의 '여성 서사'를 너머 '포스트 여성 서사', 즉 '여성 서사 너머'로 향해가고 있는데 '그라운디드'는 그 절정에 놓일 만하다.
여성 전투기 조종사의 고민이 아닌 인간으로서 고뇌가 읽힌다. 가장 신선했던 점은 초반에 이 여성 조종사가 그간 남성 중심의 이야기에서 보여줬던 전형적인 남성 캐릭터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의지대로 전투기를 조종해 미사일로 목표물을 격추했을 때 쾌감을 느끼고, 섹스에 거리낌이 없으며, 거친 말도 툭툭 잘 내뱉는다.
그런데 차지연과 오경택 연출은 이것을 여성 배우와 여성 캐릭터가 재현을 해도 괴리감이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이런 점은 시작에 불과하다. 배우의 개인적 삶과 작품 속 인물이 겹쳐질 때의 시너지가 특히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을 '그라운디드'는 입증한다.
조종사는 임신, 결혼, 출산, 육아 때문에 한동안 하늘을 나는 일을 포기한다. 이후 복귀하지만 직접 파란 하늘을 날지는 못한다. 대신 라스베이거스 사막 한 가운데 놓인 트레일러에서 자신이 조종하는 드론을 통해 송출되는 회색 스크린을 보며 매일 12시간 동안 적을 감시할 뿐이다.
지난 2016년 아이를 출산한 이후 무대에 복귀한 여성 배우에게 공연계는 전쟁터와 같다. 스타 남성 배우들은 나이가 들어도 같은 배역의 주인공을 맡는데, 그의 상대 배역은 과거의 여성 배우가 아닌 젊은 여성 배우로 대물림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차지연을 비롯한 몇몇 30, 40대 여성 배우는 치열하게 자신의 존재성을 증명해오고 있다.
더구나 차지연은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출연을 앞둔 직전인 지난해 4월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활동을 쉬었다. 지난 1월 갈라쇼 출연해 복귀를 타진했고 2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뮤지컬 콘서트에서 국내 여성 뮤지컬배우로는 처음으로 유다를 맡아 건재를 과시한 뒤 '그라운디드'로 본격적인 복귀식을 치르고 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괴물 가창력'(세간의 화제였던 '복면가왕'의 '캣츠걸'이 그녀였다)을 버리고 오로지 연기력만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는 셈이다.
지난 14일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한국 초연의 막을 올린 모노극 '그라운디드(GROUNDED)'는 삶의 무한한 가능성과 절망을 동시에 품어낸 수작이다.
뮤지컬배우 차지연이 홀로 전투복 한 벌과 의자 하나에만 의지한 이 연극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의 씨줄과 날줄을 90분 안에 빛나게 압축해놓았다.
미국 극작가 조지 브랜트(George Brant)의 대표작. 에이스급 전투기 조종사가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라스베이거스의 크리치 공군기지에서 군용 무인정찰기(드론)를 조종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최근 공연계에는 단순한 여성 중심의 '여성 서사'를 너머 '포스트 여성 서사', 즉 '여성 서사 너머'로 향해가고 있는데 '그라운디드'는 그 절정에 놓일 만하다.
여성 전투기 조종사의 고민이 아닌 인간으로서 고뇌가 읽힌다. 가장 신선했던 점은 초반에 이 여성 조종사가 그간 남성 중심의 이야기에서 보여줬던 전형적인 남성 캐릭터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의지대로 전투기를 조종해 미사일로 목표물을 격추했을 때 쾌감을 느끼고, 섹스에 거리낌이 없으며, 거친 말도 툭툭 잘 내뱉는다.
그런데 차지연과 오경택 연출은 이것을 여성 배우와 여성 캐릭터가 재현을 해도 괴리감이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이런 점은 시작에 불과하다. 배우의 개인적 삶과 작품 속 인물이 겹쳐질 때의 시너지가 특히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을 '그라운디드'는 입증한다.
조종사는 임신, 결혼, 출산, 육아 때문에 한동안 하늘을 나는 일을 포기한다. 이후 복귀하지만 직접 파란 하늘을 날지는 못한다. 대신 라스베이거스 사막 한 가운데 놓인 트레일러에서 자신이 조종하는 드론을 통해 송출되는 회색 스크린을 보며 매일 12시간 동안 적을 감시할 뿐이다.
지난 2016년 아이를 출산한 이후 무대에 복귀한 여성 배우에게 공연계는 전쟁터와 같다. 스타 남성 배우들은 나이가 들어도 같은 배역의 주인공을 맡는데, 그의 상대 배역은 과거의 여성 배우가 아닌 젊은 여성 배우로 대물림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차지연을 비롯한 몇몇 30, 40대 여성 배우는 치열하게 자신의 존재성을 증명해오고 있다.
더구나 차지연은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출연을 앞둔 직전인 지난해 4월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활동을 쉬었다. 지난 1월 갈라쇼 출연해 복귀를 타진했고 2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뮤지컬 콘서트에서 국내 여성 뮤지컬배우로는 처음으로 유다를 맡아 건재를 과시한 뒤 '그라운디드'로 본격적인 복귀식을 치르고 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괴물 가창력'(세간의 화제였던 '복면가왕'의 '캣츠걸'이 그녀였다)을 버리고 오로지 연기력만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는 셈이다.
![[서울=뉴시스] 모노극 '그라운디드' 포스터. 2020.05.17 (사진= 우란문화재단 제공)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0/05/17/NISI20200517_0000528534_web.jpg?rnd=20200517124547)
[서울=뉴시스] 모노극 '그라운디드' 포스터. 2020.05.17 (사진= 우란문화재단 제공) [email protected]
'그라운디드'는 개인적 맥락에서 사회적 맥락으로 한발 더 나아간다. 주인공이 스크린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전장을 감시하며 적들을 공격하는 한편, 퇴근 후에는 가족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괴리에 점차 혼란을 느끼게 된다는 점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 과정에서 '파놉티콘'(원형감옥)의 진화된 형태인 감시 카메라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우리는 항상 감시 받는 삶을 살고 있고, 그녀가 적군의 2인자인 '예언자'를 드론으로 감시하고 있는 와중에도 또 다른 누군가가 그녀를 감시했다.
작품은 전쟁 같은 우리의 삶에서 윤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차량 안에서 절대 나올 거 같지 않던 적군의 2인자는 자신의 차량을 아이가 쫓아오자 결국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조종사는 미사일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아이가 자신의 딸과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대신 카메라가 달린 드론의 배를 하늘로 치켜 올린다. 하지만 비극은 막을 수 없다. 자신을 감시하던 드론이 그녀가 해야할 역할을 대신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소홀히 한 대가로 지하 벙커에 갇힌다. '현실에 기반을 둔'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극의 제목 '그라운디드(grounded)'는 군사용어로 '비행이 금지된'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가득한 대신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모래가 쏟아진다. 무한대의 파란 하늘은 회색빛 점으로 으스러진다. 러닝 타임은 쏜살같이 흐르고 객석 곳곳에서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앉아서 온 세계를 경험한 듯한 기분이 몰려든다.
세상에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뽐내던 인간은 결국 자신이 얼마나 약한지를 온 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래서 위로를 받는다. 우리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는 나의 것만이 아닌 우리의 것이니까.
'그라운디드'는 영상 하나 없이 차지연의 연기와 무대 연출로만 모든 세상을 만든다. 결정적 순간에 무대 뒤 가림막이 상승한 뒤 객석을 향해 쏟아지는 눈부신 빛을 비롯해 조명, 음향만으로 세계를 재현해냈다.
'그라운디드'는 올해 우란시선 첫 번째 기획 공연이다. 우란문화재단과 다년간 파트너십을 맺어 온 프로젝트그룹 일다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작년 국내 초연돼 역시 호평을 들었던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이은 두 번째 모노극이다. 이제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을 '모노극의 새로운 성지'로 명명해도 이의를 달 관객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24일까지 공연한다.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은 소극장인데다 마니아들이 몰려 평소에도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객석 의자를 띄어 놓아 자리가 더욱 줄어들었다.
티켓은 매진됐고 소셜 미디어에는 '양도 표를 구한다'는 글이 점철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문진표 작성, 발열 체크,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