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범 혀 절단은 정당방위"…이미 무죄 판례 있다

[서울=뉴시스] 조인우 기자 = 1964년 성폭력에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폭행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은 최말자(74)씨가 억울함을 풀어 달라며 56년 만에 재심 청구에 나서면서 성폭력 피해자의 방어권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30여년 전 유사한 사건에서 정당방위로 인정된 판결까지 있는 것으로 확인돼 최씨의 재심 결과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7일 법원에 따르면 1989년 1월 대구고등법원은 귀가 중인 여성이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는 남성의 혀를 물어 뜯은 사건을 두고,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1988년 2월26일 새벽, 경북의 한 읍내에서 발생했다.

젊은 남성 2명이 혼자 집에 가고 있는 피해 여성 A씨를 발견하고 뒤를 밟다가 골목길에 진입하자, 뒤에서 달려 들어 양팔을 붙잡아 꼼짝 못하게 한 뒤 넘어뜨리고 음부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한 사건이다.

A씨는 몸부림을 치며 저항하다가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는 남성 1명의 혀를 물어 뜯어 전치 4주의 설절단상을 입혔다.

당시 재판부는 이에 대해 "자신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상당한 행위로 형법상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피해 여성이 술을 마셨다거나, 식당을 운영한다거나, 밤 늦게 혼자 다녔다거나 하는 등의 사정은 정당방위의 성립을 저해하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당시 A씨를 추행한 남성 2명은 강간치상, 강제추행치상,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2년6개월에 4년 간의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리고 대법원 역시 같은해 8월 A씨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혀를 깨물어 설절단상을 입힌 피해 여성의 행위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고자 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목적 및 수단, 행위자의 의사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위법성이 결여된 행위"라고 판단했다.

한편 최씨는 지난 6일 부산지법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최씨를 조력하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최씨는 1964년 5월6일 강간 시도에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에 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졸지에 '상해 가해자'가 됐다.

가해자는 정작 성폭력 미수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최씨만 중상해죄가 인정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최씨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 구속돼 6개월 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재심청구서 제출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가해자의 서사에는 쉽게 동조하면서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며 폭력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사법기관의 모습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규탄했다.

이어 "56년 전 오늘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부당한 수사 과정과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일은 한 성폭력 피해자 삶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일 뿐 아니라 같은 상황에 놓인 다른 여성의 삶의 정의와 여성폭력을 부당하게 처리해 온 사법기관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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