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위원장 전례없이 '태양절 참배' 생략하자
'새로운 전략무기'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한
미서 신변이상설 흘려 북 반응 살폈을 가능성
북미간 갈등 미묘하게 높아져 빚어진 일인 듯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태에 빠졌다는 보도들이 잠시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청와대가 김위원장 신변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강원도 원산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확인함으로서 신변이상설 보도로 인한 파장은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다.
김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대해 북한이 확인하지 않은 시점에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사실무근이라고 밝히는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이 발끈할 수도 있고 김위원장의 소재 추적을 힘들게 만들 새로운 조치를 취할 수도 있는 등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김위원장 건강이상설을 가라앉히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청와대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정부는 여전히 애매한 입장이다. 미 CNN이 속보로 김정은 중태설을 보도한 뒤 미 백악관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좌관은 "김위원장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며 지켜봐야 한다"고 확실히 부인하지 않는 듯이 반응했다.
그가 이같은 발언을 한 시점은 청와대가 신변이상설을 적극 부인한 시점보다 반나절 이상 뒤에 있은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오브라이언 보좌관의 발언이 있은 뒤에 "김위원장이 위독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서도 '아직 모르며 지켜봐야 한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그러면서 김위원장이 "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김위원장 신변이상설에 대한 한미 당국의 대응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청와대는 적극 부인하는 입장인데 비해 미 백악관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한 것이다. 이같은 차이가 왜 생기는 지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를 알기 위해 이번 파문의 전말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문이 일어나게 된 1차적인 배경은 김위원장이 지난 15일 '태양절 참배'를 생략한 일이다. 김위원장은 지난 11일 정치국회의를 주재한 뒤 22일 현재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태양절은 북한이 최대 명절이라고 하는 김일성 전 주석의 생일(4월15일)이다. 이 날과 함께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생일(2월16일)은 '광명성절'이라는 이름으로 두번째로 중요한 명절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011년 말 권력을 승계한 이래 두 명절에 김일성과 김정일 참배를 빠트린 적이 없다. 그런데 올해는 광명성절 참배는 했지만 중요한 태양절 참배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위원장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심들이 나오고 시작했고 급기야 '심장질환 시술 뒤 중태에 빠졌다'는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의 보도가 지난 20일 밤늦게 나왔다.
데일리NK의 보도는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미국의 CNN 방송이 다음날 오전 미 정부소식통을 인용하는 듯이 밝히면서 '김정은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속보를 냈다.
수많은 세계적 특종을 한 CNN의 보도는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청와대가 파장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듯이 서둘러 CNN 보도를 부인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CNN의 보도가 한반도 상황 안정을 뒤흔들 가능성을 우려하는 듯하다.
코로나 19, 여당의 압도적 총선 승리 등 현 시점은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전환점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는 시점이다. 그런데 사실도 아닌 CNN의 오보로 인해 북한이 발끈하고 나선다면 그런 기대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청와대와 뉘앙스가 다른 미 백악관의 입장은 여러가지 추측을 불러 일으킨다.
우선 미국은 정보 사안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정책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정책은 거의 예외가 없이 적용돼왔다. 따라서 이번 사안도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선을 고수하느라 일부러 애매하게 답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런 입장은 대체로 '정보 사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간접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번에는 보다 직접적인 '모른다'는 답변이 나왔다는 점이 평소와 다르다.
CNN은 첫 보도를 하면서 미국 정부 소식통을 간접 인용했다. 미 정부 또는 정부와 밀접한 소식통임을 암시한 것이다.
따라서 미 정부 관계자가 김정은의 신변이상설을 언론에 유출시켜서 북한을 반응을 살펴보려고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신변이상설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북한의 반응을 살펴보려고 유출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북미 사이가 최근 미묘하게 갈등 조짐을 보이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초 북미는 스웨덴에서 핵실무협상을 가졌었다. 지난 6월말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극적으로 회동한 뒤 미국이 북한을 졸라서 열린 회담이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어떻게든 핵협상에 돌파구를 만들어보려고 시도했지만 북한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모든 수준에서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지 않으면 핵문제는 협상조차 하지 않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후 북한은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면서 공개적으로 미국을 압박했지만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러자 김위원장이 연말에 노동당 중앙회의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선언하면서 "멀지 않아 (중략)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런데 김위원장이 공언한 새 전략무기는 4월이 다 지나가도록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자신의 최대 외교적 업적으로 내세워 왔다. 그런데 김위원장이 새 전략무기를 선보이면 그같은 업적은 물거품이 될 뿐아니라 오히려 선거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위원장 앞으로 수시로 친서를 보내 친분을 과시하면서 북한이 행동에 나서는 것을 막아보려 시도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노력에 시큰둥하다. 지난해 연말 트럼프의 친서가 '시간끌기'에 불과하다고 에둘러 비난하기 시작(작년 11월18일자 김계관 외무성 고문 담화)했다.
김계관 고문은 1월 11일자 담화에서도 트럼프-김위원장 사이에 친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김위원장이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인 관계로 국사를 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 3월에는 김위원장의 친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나서서 특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온 사실을 공개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친분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이 시간끌기를 한다고 비난하는 한편 친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강해지는 길을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김위원장으로부터 '따듯한 친서'를 받았다고 밝히자 북한은 바로 다음날 김위원장이 친서를 보낸 적이 없다고 면박을 주고 나섰다.
이의 친서와 관련된 북한의 반응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여왔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이 트럼프 대통령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위원장이 보내지도 않았다는 친서가 있는 것처럼 공개한 것도 초조함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미국은 올들어 북한 주변 상공에 수시로 정찰기를 띄우면서 북한이 '새로운 전략무기'를 공개하는지를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다.
이처럼 북미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던중 김위원장이 태양절 참배에 불참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인 것이다. 미국으로선 '새로운 전략무기'를 선보이는 시점이 임박한 것이라는 우려가 커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긴 셈이다.
미측이 김위원장 신변이상설을 CNN에 흘려 북한의 반응을 떠보려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는 배경이다. 음모론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김위원장 신변이상설을 청와대가 강하게 부인하는데 비해 백악관이 여전히 애매한 입장을 유지하는 이유를 어느정도 설명하기도 한다.
음모론적 추측을 배경으로 정세를 전망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 정세가 탈없이 흘러가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19로 경제적 타격이 심해지고 북한 주민들의 민심이 흉흉해진다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최근에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일들은 북한이 '새로운 전략무기를 선보이는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징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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