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거부→환자 거짓말→백병원폐쇄' 악순환…"의료환경 개선해야"

기사등록 2020/03/09 20:41:36

거주지 숨기고 입원 60대 여성 탓에 백병원 기능마비

확진자 거짓말 문제지만…병원 진료거부도 이유 있어

당국, 병원폐쇄 등 조치…"메르스 트라우마 재현된 듯"

핵심 원인 보건당국에…"처벌보다 의료환경 개선부터"

"진료 거부 병원·거짓말 환자·서울백병원 다 안타까워"

【세종=뉴시스】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세종=뉴시스】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서울=뉴시스] 이인준 기자 = 최근 대구 거주 사실을 숨기고 인제대 서울백병원에 입원했다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가 나와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환자의 거짓된 말 한 마디가 서울시 최중심부에 있는 상급의료기관의 기능을 일시에 마비시켰다.

서울백병원은 현재 외래 및 응급실, 병동 일부가 폐쇄된 상태다. 이 병원을 이용하는 외래환자만 일평균 718명(연간 26만2099명·2015년 기준), 병상수는 294명(같은 해)에 달해 환자들의 불편과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한 상태다.

하지만 이 환자는 보건당국의 역학조사에서 대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니던 병원에서 진료거부를 당해 부득이 하게 거짓말을 했다고 밝혀 또다른 논란을 낳았다.

지난 2016년 메르스 백서를 통해 "병원 내 감염관리를 강화하고 국민 건강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 메르스의 경험이 희망의 씨앗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던 보건당국의 다짐은 5년째 현재 진행형이다.

◇거짓말은 기본, 조사 훼방까지…역학조사 과잉 논란 '오죽하면'

9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역학조사 진행에 가장 큰 걸림돌은 대상자의 비협조적인 태도다. 

이번 서울백병원 확진자는 대구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긴 채 서울백병원 소화기내과에 방문했고, 병원측은 환자 방문 당시와 입원기간 동안 대구 방문 여부를 수차례 확인했으나 A씨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하지만 환자가 병실에서 여러 차례 대구 관련 이야기를 언급하자 의료진은 진단검사를 실시했고, 여기서 양성 판정이 나오고 나서야 이 확진자는 실제 자신의 거주지가 대구라는 사실을 시인했다.

"역학조사는 확진자가 아닌 거짓말과의 싸움"이라는 게 방역당국의 가장 큰 고충이다.

특히 신천지와 관련해서는 첩보기관을 방불케 하는 수싸움도 벌어진다.

신천지 교인들이 신분을 숨긴 채 활동하거나 동선을 거짓으로 밝히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구 문성병원에서 확진자 집단 발생 사태도 병원의 주차관리 직원이 신천지 교인임을 숨기고 있다가 바이러스가 병원 내 퍼진 이후에나 확인됐다.

그는 보건당국의 역학조사에서는 신천지 교인임을 숨겼으나 나중에 그의 아내가 신천지 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야 인정했다.

코호트 격리된 대구 한마음아파트에서 확진된 입주자 중 신천지 신도 1~2명이 자가격리 수칙을 어기고 이탈하는 등의 문제도 잇따르고 있다.

또 자가격리를 요청받고도 해외 여행을 떠난 국립발레단 단원이나, 마스크를 사러 우체국에 방문한 사례 등이 속속 보고 되면서 방역의 허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부지만 난동을 부리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문제도 나왔다. 신천지 대구교회 신도 67세 여성은 경북대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되던 도중 간호사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등 1시간 가량 난동을 피워 논란이 일었다. 지난달 28일에는 확진 판정을 받은 20대 여성이 병원 이송 과정에서 보건소 직원에게 침을 뱉기도 했다.

현재 감염병 환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자가격리 지침을 위반할 경우 최대 3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오는 4월5일부터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수위가 높아질 예정이다.

다만 확진자나 진단검사 대상자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과잉 대응 문제도 늘상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산하 부산인권사무소는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방역 당국의 동선 공개로 사행활이 침해당했다'는 취지로 진정을 넣어 이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제34조의 2에 따라, 방역당국은 국민 건강에 위해가 되는 감염병 확산 시 감염병 환자의 이동 경로, 이동 수단, 진료 의료기관, 접촉자 현황 등을 국민에게 신속히 공개하고 있다.

다만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언급해 감염에 이은 2차 피해를 유발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확진자의 동선만 보고 대상의 직업을 특정하거나 외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등의 행태로 확진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정은경 본부장은 "(의심환자가 역학조사에 대한 편견을 갖게 돼) 은폐하거나, 숨거나 회피하게 되면 감염증이 오히려 전파될 수 있기 때문에 정보를 잘 제공할 수 있는 분위기와 좀 더 선진적인 조사방법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그 부분은 계속 보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구 출신 안 받아요" 병원은 왜 진료를 거부하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행법상 진료거부는 불법이다.

의료법 제15조 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없이 거부하지 못하게 돼 있다.

의료 거부 적발 시 1차 위반은 면허·자격정지 2개월, 2차 위반은 면허·자격정지 3개월, 3차 위반은 면허·자격 취소 처분이 내려지는 등 강력한 제재가 내려진다. 특히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에는 특히 메르스, 코로나19 등 감염병 의심 등을 이유로 응급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2개월 면허정지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 때 병원장도 의료진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3000만원 이하 벌금형 처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같이 신종 감염병 발생 시 이 같은 처벌 조항을 적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의 진료 접근권 보장과 의료기관의 감염 차단이 서로 상충돼서다.

특히 지난달 경기 성남시와 경기도 의사회간의 충돌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경기 성남시는 지난 1월30일 "일부 의료기관에서 중국을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진료 요청을 거부한다는 환자들의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며 민원 발생 시 행정처분과 고발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대응지침에 따르면 의사환자(확진환자의 접촉자 중 유증상자)가 아닌 단순 유증상자의 경우 진단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일반 의료기관에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 의사회는 "감염병 관리기관도 아니고 선별진료소도 갖추지 않은 일반 의료기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의심환자를 무분별하게 진료하다가 방역에 실패할 경우 성남시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라며 반발했고 결국 성남시는 철회했다.

의료계가 감염병 의심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메르스 트라우마'라고 설명한다.

보건당국은 감염병 확진 환자가 나온 의료기관에 병원 폐쇄를 조치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메르스와 같이 병원이 감염병의 '수퍼 전파자' 역할을 하는 사례가 있어서다. 실제로 이번 서울 은평성모병원 등에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나오자 보건당국은 병원을 전면 폐쇄 조치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9일 브리핑에서 "현재 병원 폐쇄 등에 관한 지침은 메르스 때 기준에 따르는 것으로 매우 강하다"고 밝혔다.

병원 입장에서는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 '사회적 낙인'이 찍혀 경영난에 처할 수도 있다는 공포도 있다.

실제로 이번 코로나19 3번째 확진자가 나온 명지병원의 경우 환자수가 40%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서울백병원 같은 사례의 경우에는 의료진이 환자의 거짓말을 판별하기 위한 수사력까지 갖춰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병원 입장에서 확진자 발생은 그야말로 '불의의 일격'"이라면서 "메르스 당시의 경험에 비쳐 모두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당국도 이 같은 의료계의 불안을 인지하고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병원 폐쇄 등 일부 지침을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하기로 한 상태다.

김 1총괄조정관은 "환자가 발생한 병원 등 의료기관을 일시적으로 폐쇄하는 조치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전문가 협의를 거쳐 조율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채찍 쥐고도 '전전긍긍'…전문가들 "누구더러 처벌 운운이냐"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로 실력 행사에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심 중이다.

김강립 1총괄조정관은 "서울지역 대형병원들을 중심으로 대구시 환자들을 받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은 문제"라면서도 "충분히 합리적으로 진료를 제한하거나 아니면 별도 방법으로 진료를 유도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은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환자의 거짓말도 처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김 1총괄조정관은 “역학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역학조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방해하는 행위가 일부 보고됐는데, 이에 대해서는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면서도 "특정 지역 환자들의 경우 적절하게 치료받기 어렵고 병원감염을 우려해 의료기관에서 제대로 환자를 받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밝혀 환자의 거짓말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이번 사태를 두고 정부가 원인을 제공하고, 처벌 대상은 병원과 환자에서 찾고 있다고 지적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병원이 진료거부한 것도 문제고, 확진자가 거짓말을 한 것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가장 큰 원인은 병원과 환자 모두에게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지 못한 보건당국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엄 교수는 "정부가 메르스 사태 이후에 환자들이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대구 지역 환자가 거짓말을 하고 서울에서 병원을 다니더라도)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보건당국으로서는 이번 사태와 같은 환자들의 일탈이 나타나더라도 병원이 대응할 수 있도록 감염병 관련한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다"면서 "여전히 다인실 병상 현황, 환자 1인당 의료인력 부족 등 여전히 감염병에 취약한 의료 환경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반적인 의료환경의 개선이 신종 감염병 발생 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우주 교수도 "근본적인 문제는 대구·경북 지역의 의료 과부하가 생기면서 중증 환자를 우선적으로 진료하겠다고 경증 환자를 포함한 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리니 발생한 문제"라면서 "환자의 거짓말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보건당국이 대구·경북 지역 내 의료기관 폐쇄와 진료체계 전환 등에 따른 2차 피해도 감안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증 환자를 생활치료센터에 수용해 관리하기로 했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증 환자의 불안감은 전혀 고려가 되지 않았다"면서 "진료거부한 병원도 안타깝고, 거짓말한 환자도 안타깝고, 확진자가 나온 백병원도 안타깝다"고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진료거부→환자 거짓말→백병원폐쇄' 악순환…"의료환경 개선해야"

기사등록 2020/03/09 20:41:36 최초수정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