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이어 초콜릿 비스킷 성공...롯데그룹 기틀 다져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국내로 눈돌려 투자
123층 월드타워로 관광보국 ‘숙원’이뤘지만 해임당하는 ‘치욕’
[서울=뉴시스] 박미영 기자 =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은 껌 하나로 시작해 롯데를 국내 재계 5위로 성장시킨 ‘자수성가형 거인’이다.
신 명예회장은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인 1941년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와세다대학교 화학과에서 학업을 마쳤다. 당시 얻은 이름이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다.
고인은 당시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면서 껌이 인기를 끌자 껌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지은 회사명이 ‘롯데’다.
껌은 없어서 못팔 정도로 성공해 당시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세우고 회사 이름을 '롯데'로 지었다. 당시 문학에 빠져있던 신 명예회장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왔다고 전해진다.
이후 1961년 일본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가 초콜릿으로 대체되자 초콜릿 만들기로 결심하고 초콜릿 산업에 뛰어들어 또다시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사탕,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 잇따라 손을 댔고 모두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롯데그룹을 건설했다.
1959년 롯데상사, 1968년 롯데물산, 1969년 롯데 오리온스 구단, 1972년 롯데리아, 1988년 롯데냉과 등 계열사들을 설립하던 고인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 정부의 투자 요청을 받고 1967년 4월 국내에 롯데제과를 세우고 껌을 생산하며 진출했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춘 롯데는 관광과 유통, 화학과 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신 명예회장은 1998년에 호텔롯데 대표이사 회장과 롯데쇼핑 대표이사 회장, 2009년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 2011년 롯데그룹 총괄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롯데그룹을 이끌어 왔다.
그는 1980년대부터 관광보국의 꿈을 가지고 롯데월드타워를 계획, 2017년 4월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오픈하며 30년 숙원사업을 이뤄내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그룹을 자산 100조원의 한국 재계 순위 5위까지 성장시켰다.
그러나 2015년 7월 불거진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면서부터 신 명예회장은 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직서 해임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이후 2017년 법원에서 한정 후견인을 지정받으면서 신 명예회장의 경영활동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