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 메시지 실종된 北 신년사…文대통령 '평화 구상' 어디로

기사등록 2020/01/01 18:07:23

금강산 재개 의사 밝힌 지난해와 대조…남측 언급 '의도적 생략' 분석

중러 결의안 계기 '관계 회복' 기대감에 찬물…靑 "협상 실마리는 여전"

전문가 "북미-남북 관계 연동 인식 벗어나야…북미 대화 기다려선 안돼"

[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3일째인 30일에도 진행되었고 이날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7시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정형과 국가건설, 경제발전, 무력건설과 관련한 종합적인 보고를 하였다"고 31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2019.12.3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3일째인 30일에도 진행되었고 이날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7시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정형과 국가건설, 경제발전, 무력건설과 관련한 종합적인 보고를 하였다"고 31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2019.12.3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북한이 1일 밝힌 새 대외정책 기조 속에서 대남(對南) 메시지를 생략한 것은 지난해 제자리 걸음, 또는 후퇴했던 남북 관계와 직결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중심의 제재 틀에 갇힌 문재인 대통령의 한계를 확인한 만큼 더이상 기대를 걸지 않겠다는 실망의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관측이 제기된다.

북한의 '의도적 무시'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 마련에 고심 중인 문 대통령이 외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좁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향후 해법 마련에 적잖은 고민을 안겨줬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북한은 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과를 공개하는 것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육성 신년사를 대신했다. 북한이 내부 정치 행사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를 대체한 것은 1987년 이후 두 번째다. 201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신년사를 생략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은 대신 김 위원장 주재로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 간 진행된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과를 상세히 밝히는 것으로 경제·군사·대외정책 등 분야별로 취할 새해 전략 노선을 분명히 제시했다.

현재 북미 비핵화 협상을 둘러싼 정세를 '자력갱생 대(對) 제재봉쇄'의 대결구도로 규정하고, 미국과의 장기 대립을 불사한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지난해부터 강조해온 '새로운 길'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윤곽을 밝힌 셈이다.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3일회의가 30일에 계속 진행 되었다고 31일 보도했다. 조선로동당 김정은 위원장이 1일회의, 2일회의에 이어 보고를 계속했다고 방송했다. 2019.12.31. (사진=조선중앙TV 캡쳐)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3일회의가 30일에 계속 진행 되었다고 31일 보도했다. 조선로동당 김정은 위원장이 1일회의, 2일회의에 이어 보고를 계속했다고 방송했다. 2019.12.31. (사진=조선중앙TV 캡쳐) [email protected]
김 위원장은 "우리는 결코 파렴치한 미국이 조미(북미) 대화를 불순한 목적 실현에 악용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당은 봉착한 난관들 앞에서 정확한 자기의 령도력을 발휘할 것이며,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꿋꿋이 뻗치고 서서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적대 세력들에게 계속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한 지난해부터 재개한 단거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는 물론, 자위권 차원의 핵미사일 시험까지 나설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로 읽힌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며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국가 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 개발을 중단 없이 계속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김 위원장이 충돌과 전쟁 대신 평화와 번영을 선택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CBS 인터뷰에선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약속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3일회의가 30일에 계속 진행 되었다고 31일 보도했다. 조선로동당 김정은 위원장이 1일회의, 2일회의에 이어 보고를 계속했다고 방송했다. 2019.12.31. (사진=조선중앙TV 캡쳐)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3일회의가 30일에 계속 진행 되었다고 31일 보도했다. 조선로동당 김정은 위원장이 1일회의, 2일회의에 이어 보고를 계속했다고 방송했다. 2019.12.31. (사진=조선중앙TV 캡쳐) [email protected]
북미 강대강 대치 상황이 장기 국면으로 고착화 될 경우 문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북미 대화 수준에 따라 남북 관계 복원을 추진하겠다는 기존의 소극적 기조를 계속 유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혀 호응이 없는 북한을 상대로 새로운 제안을 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북한과의 무리한 협상에 나설 수 없고, 김 위원장 역시 정면돌파를 선언하면서 비핵화 협상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이 대남 메시지를 생략한 것은 남북관계 회복을 모색 중인 문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지점이 아닐 수 없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이 최근 강조한 '동북아 철도공동체', '평화 경제' 구상은 모두 남북 관계 진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제출한 것에 대해 정부가 실낱 같은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은 그나마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었던 때까지만 유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지난해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에 대한 철거를 지시한 데에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잃었고, 그러한 분위기가 이번 전원회의 결과로 이어졌다고 풀이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조건없는 재개 의사를 신년사에서 언급했던 것과 올해 전원회의 결과는 대조적이다.

김 위원장이 '9·19 평양 공동선언'의 이행을 믿고 금강산 관광·개성공단에 대한 조건 없는 재개 의사를 밝혔지만, 미국의 반대에 한 발자국도 못 거둔 상황을 보면서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거두게 된 계기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나흘째 회의가 지난 12월31일에 계속 진행 되었다고 1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2020.01.0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나흘째 회의가 지난 12월31일에 계속 진행 되었다고 1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2020.01.01.  [email protected]
이를 반영하듯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대체한 올해 전원회의에서 남측을 향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동안 북한 매체에서 우리 군 당국을 겨냥해 비판해 했던 한미 연합훈련과 F-35A 스텔스 전투기 등 전략자산 도입도 미국을 비판하는 소재로 등장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크고 작은 합동군사연습들을 수십 차례나 벌려놓고 첨단 전쟁장비들을 남조선에 반입해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했다"며 "십여 차레의 단독 제재 조치들을 취하는 것으로써 우리 제도를 압살하려는 야망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세계 앞에 증명해 보였다"고 말했다.

우선은 '하노이 노딜'에 대한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는 것을 통해 내부적으로 정면돌파의 명분을 삼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신년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대남 메시지가 사라진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 연구소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북한이 전원회의 결과에서 남북 관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남측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평양 공동선언의 이행을 믿고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나섰다가 실패한 사례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특히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적대세력들에게 계속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주목했다. 남측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추종하는 적대세력'이라는 표현을 통해 우회적으로 문재인정부에 경고메시지를 제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DB). 2019.03.04.
[서울=뉴시스]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DB). 2019.03.04.
그는 "정부는 북한의 '추종하는 적대세력'이라는 표현에서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동일한 방향으로 연동돼 움직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북미 대화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갈 상상력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전원회의에서 대남 정책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것은 북한이 더이상 남북 관계를 현 정세의 주요 변수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며 "통미봉남(通美封南) 기조의 확정이라기보다는 향후 대미·대중관계 변화에 따라 대남정책 조정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 판단된다"고 풀이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단절을 선언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미국의 입장에 따라 자신들의 노선을 결정하겠다고 한 것은 여전히 북미 협상의 실마리를 남겨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대남 메시지 실종된 北 신년사…文대통령 '평화 구상' 어디로

기사등록 2020/01/01 18:07:23 최초수정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