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치밀, 범행은 허술'…어설픈 기부금 도둑들의 말로

기사등록 2019/12/31 20:15:27

8시간 잠복 후 30초 만에 기부금 박스 훔쳐 도주

시민 결정적 제보로 4시간여 만에 덜미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30일 오전 10시께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인근에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을 한 남성이 훔쳐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사진=전북경찰청 제공)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30일 오전 10시께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인근에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을 한 남성이 훔쳐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사진=전북경찰청 제공)
[전주=뉴시스] 윤난슬 기자 = 전북 전주시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수천만원의 성금을 훔쳐 달아난 30대 피의자들은 사전에 범행을 계획하며 '완전 범죄'를 꿈꿨지만 어수룩한 범행 수법과 시민 제보로 덜미를 잡혔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31일 특수절도 혐의로 A(35)씨와 B(34)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전날 오전 10시 40분께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뒷편 희망을 주는 나무 주변에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6000여만원이 담긴 기부금 박스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30초 만에 수천만원 담긴 기부금 박스 훔쳤지만…어설픈 도둑들의 모습

이 2인조 도둑들, 나름 범행 준비는 열심히 했지만 진행 과정은 어설펐다.

우선 A씨와 B씨는 지난 28일부터 사흘간 주거지인 충남 논산과 노송동 주민센터를 오가며 잠복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A씨 등은 범행 전날인 30일 자정 무렵 논산에서 출발해 오전 2시께 주민센터에 도착한 뒤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난 오전 10시까지 8시간 동안 차량 안에서 기다렸다.

이들은 또 전주에 오기 전 휴게소 화장실에 들러 화장지에 물을 적셔 번호판을 모두 가리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이후 오전 10시 3분께 천사로 추정되는 남성이 박스를 두고간 것을 확인한 B씨는 머리와 얼굴을 가린채 곧장 '희망을 주는 나무' 공간으로 달려갔다.

기부금 박스를 훔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0초. 이들은 30초 만에 6000여만원이 들어있는 종이박스를 빨간색 직사각형 모양의 가방에 넣고 범행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처럼 '완전 범죄'를 꿈꿨으나 평소 동네에서 보지 못한 차량이 주민센터 인근에 주차된 점을 수상히 여기고 예의주시한 주민의 제보로 덜미를 잡혔다. A씨 등은 범행 전 전주에 답사할 때 번호판을 가리지 않았던 것.

이 주민은 수사에 나선 경찰에게 용의 차량 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넸고, 이는 범인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제보자는 "평소 동네에서 보지 못한 차량이 며칠 전부터 주민센터 인근에 주차돼 있었다"면서 "아침에 은행에 가는데 차량 앞뒤 번호판이 모두 흰 종이로 가려져 있어 의심스러워 번호를 적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 차량을 곧바로 수배했고 용의자들이 충남지역으로 이동한 것을 확인, 충남경찰과 공조 끝에 4시간여 만에 A씨와 B씨를 긴급체포했다. 또 현금 6000여만원이 든 기부금 박스도 회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에게 동종전과는 없고 수법이 여느 지능범들처럼 치밀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훔친 금액이 비교적 많고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처음 해보는 범죄…도대체 왜?

이들은 논산 지역 선후배 사이로, B씨는 A씨 고교 1년 후배 동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논산에서 컴퓨터 수리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무직인 B씨에게 먼저 범행을 제안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 휴대전화에서 '노송동 주민센터'를 검색한 인터넷 기록을 확인했다. 또 범행에 사용된 차량도 A씨 소유인 것으로 드러났다.

A씨 등은 경찰에서 "유튜브를 통해 '얼굴 없는 천사'가 이 시기에 오는 것을 알았다"라며 "컴퓨터 수리업체를 한 곳 더 열기 위해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범행 4시간여 만에 덜미를 잡히면서 A씨가 어설프게 맛본 사업 확장의 기회는 물건너 갔다.

결국 이들은 돈 한푼 만져보지도 못한 채 특수절도 혐의로 철장 신세를 지게 됐다.

경찰 관계자는 "용의자들이 도주 과정에서 붙잡혔기 때문에 훔친 돈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면서 "현금 6000여만원이 든 성금 박스와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세요'라고 적힌 편지 모두 그대로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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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9/12/31 20:15:27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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