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해동화식전
조선시대 부자가 될 권리를 주장한 경제경영서다. 조선 팔도의 물산을 정리한 물산기(物産記) 3편도 실렸다. 영·정조 시대 지식인 이재운(1721∼1782)이 부(富)의 미덕을 찬양하고 당대의 거부(巨富) 9명을 이야기한다. 이재운은 부를 추구하는 것이 하늘이 준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생업에 뛰어들어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벼슬보다 낫다는 주장을 펼친다. '안빈낙도'를 고집하며 가난을 미덕으로 칭송하던 조선에 정면으로 맞선 이재운은 명문가 서자 집안에서 태어나 토정(土亭) 이지함(1517~1578) 이래로 경제와 상업, 유통을 중시하는 가학 전통 속에서 자랐다. 탁월한 글솜씨에도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가 55세에 벼슬을 한 이재운은 붕당 갈등에 귀양을 갔다.
시전상인들이 장터를 돌아다니고 물산이 유통되던 조선 후기가 책의 배경이다. 이 시기에 경제와 민생 안정을 중시하는 책, 조선 팔도의 물산을 정리한 책이 널리 읽혔어도 유교 사회여서 사대부는 이윤 추구를 할 수 없고 상업은 천한 신분이 종사하는 것이었다. '해동화식전'은 유학이 내세우는 경제관을 뒤집고 밤낮으로 갖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욕망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 긍정했다. 가난하고 어진 삶이란 허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부유해야 너그럽고 어질 수 있다는 새로운 도덕관을 제시했다.
부유해지는 법으로 이재운은 자본의 많고 적음과 생업 귀천을 묻지 말고 부를 얻으려고 전심전력을 다할 것을 제안한다. 농사든 소 도살이든 국밥 장사든 당시 천대받던 일을 하는 사람 모두 신분은 낮아도 의지와 지혜, 용기와 정성, 신의를 끝까지 지켰기 때문에 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칭찬했다. 신분이 아닌, 능력과 덕성이 부자를 만들어준다는 관점은 당시 신분질서를 넘어 누구나 부유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사대부부터 거지까지 신분은 천차만별이라도 자수성가라는 공통점이 있는 상인들의 열전 9편에서는 부유함에는 신분이 필요없다는 이재운의 관점이 드러난다. 무역과 대부업으로 거부가 된 청년, 지독하게 아끼기로 유명한 자린고비 전설의 주인공, 신묘한 경영술로 집안을 다시 일으킨 부인, 충심으로 돈을 불려 주인에게 돌아간 노비, 신의를 지켜 중국까지 알려진 거지, 무일푼 고아끼리 만나 10년간 일해 부유해진 부부, 아껴서 부자가 된 평민, 대기근에도 아내 10명과 큰 마을을 이룬 남자, 벼슬만 바라보던 글공부를 그만두고 농사에 힘쓰며 이웃을 구제해 부자가 된 양반까지 다뤘다. 이재운은 이들 중에서 애써 부를 일군 사람들이야말로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안대회 옮김, 260쪽, 1만5000원, 휴머니스트
◇처칠, 끝없는 투쟁
독일의 숙적인 영국 지도자 윈스턴 처칠(1874~1965)을 다뤘다. 처칠의 전 생애와 양차 세계 대전으로 얼룩진 격동의 세계사를 압축하고, 해석하고, 처칠의 공과도 짚는다. 1940년과 1941년 처칠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거대 게르만 친위대 국가가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고 상찬하면서도 처칠은 파시스트에 가깝다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역사적 도판 53컷도 수록됐다.
시골귀족이었던 처칠 가문을 고위귀족으로 끌어올린 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1650~1722)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150년간 역사책에서 종적을 감췄던 처칠 가문을 다시 일으킨, 처칠의 아버지 랜돌프 처칠(1849~1895)도 소개한다. 랜돌프 처칠은 30살에 혜성처럼 정치무대에 등장해 6년 만에 보수당을 다시 집권당으로 만들었으나 부총리에 취임한 지 4달 만에 스스로 모든 관직을 내던졌다. 7살부터 12년간 영국식 기숙학교에서 매질을 당하면서도 배움을 완강히 거부했던 처칠은 21살에 환골탈태한다. 훗날 당시를 "알라딘 기적의 동굴처럼" 세계가 자신 앞에 열렸다고 회고한 바 있다. 저자는 처칠을 '전쟁의 사람'이라 자주 부른다. 청년 처칠은 쿠바, 인도, 수단, 남아프리카에서 잇달아 터진 전쟁에 뛰어들면서 인생 대반전을 맞았다. 특히 남아프리카 보어전쟁에서 기관차를 탈취해 부상자들을 구하고,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는 모험을 통해 처칠은 '국민 영웅'으로 급부상한다. 군사적 재능과 필력으로 신랄한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비며 세상의 주목을 받다가 1900년 10월 25살에 국회에 입성했다.
정치인 처칠은 언제나 권력 중심에 있었다.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다시 보수당으로 철새처럼 옮겨 다니며 60년 동안 하원의원, 장관, 총리를 섭렵했다 저자는 처칠을 아웃사이더이자 기회주의자라는 이중적 처신으로 권력을 좇았지만, 당대 영국 천재 정치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1863~1945)와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1869~1940)에 비해 정치인으로서는 하수라고 지적한다. 급기야 처칠이 반(反)파시스트라기보다는 파시스트에 가깝다고 평한다. 평생 반볼셰비키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처칠은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 성공과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노동당 부상을 분노에 차서 지켜보다가 파시스트가 주도하는 반혁명 붐애 반색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정치적으로 처칠보다 유능하고 유연했던 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이 실패하고, 처칠의 무시무시한 전쟁 결심이 세계를 구원한 것은 반대편 파트너가 '히틀러'라는 특수한 존재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저자는 1940~41년 처칠이 없었다면, 지금도 히틀러가 대서양부터 우랄산맥에 이르는, 그 이상까지도 미치는 게르만 친위대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처칠의 투쟁을 마냥 빛난 것으로 그리지 않았다. 처칠의 말년은 빛나는 승리 다음에 찾아온 그늘에 싸여 있었다. 처칠은 우울증, 무료함과 싸우며 소멸해 갔다. 1965년 1월24일 졸수(卒壽)에 생을 마친 처칠의 90년간 투쟁도 막을 내린다.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335쪽, 1만6000원, 돌베개
◇매천 황현 평전
국망에 자결한 지식인 매천(梅泉) 황현(1856~1910)의 삶과 정신을 돌아봤다. 지식인은 국운을 가름할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지식인만 깨어 있으면 위정자가 타락해도 국가 쇠망을 막을 수 있는데, 대한제국 시대 지식인들은 부패되고 시대의식의 결여돼 무능한 정부를 견제하지 못해 망국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매천과 같은 소수 지식인이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매천은 '절명시'에 '난작인간 식자인(難作人間 識字人)'이라 썼다. 즉, '글 아는 사람의 구실이 가장 어렵다'는 뜻이다. 자결을 앞두고 지은 이 시는 유언이기도 하지만 매천이 평생을 지킨 책임의식의 주제어였다. 국치 소식에 음독자결한 것도,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무겁게 느꼈기 때문이다. 한 선비의 죽음으로 망국의 국치를 씻기는 어렵고 자결이 유일한 길은 아니었지만 매천의 죽음은 큰 울림을 남겼다. 매천은 일제강점기 백성들에게 정신적 의지가 됐고, 기회주의적 사대주의, 권력지향의 지식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다.
저자는 매천의 생이 역동적이고 정열적이지는 않았지만 끝없이 관찰·기록하며 세태를 분석하고 비판해 앞길을 밝히는 등불 같았다며, 뒤편에 숨어 펜만 굴리는 나약한 지식인이 아닌 국난을 타개하고자 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평했다. 김삼웅 지음, 360쪽, 1만8,000원, 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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