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역설 '우정의 무대'

기사등록 2019/06/08 11:50:23

최종수정 2019/06/09 18:54:16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19' 개막공연

【철원=뉴시스】이재훈 기자 = 앙상한 콘크리트 골조의 3층 러시아식 건물 앞에 서자 아직도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나는 듯했다.

7일 오후 강원 철원 옛 조선노동당사.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조선노동당이 지은 것이다. 철원이 북한 땅이었던 때다.
이후 6·25 동란이라는 비극을 거치는 동안 수만개의 총탄이 오가며 민족을 좌절과 비탄에 빠지게 했던 곳 중 하나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19'의 개막공연 '군가(軍歌), 빅밴드 그리고 춤-우정의 무대'를 통해 이날 이곳에 다시 군가가 울려 퍼졌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군인의 입에서 나온 진중가요가 아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라는 김해원의 재지한 보컬을 이어 받아 "추풍령아 잘 있거라"고 읊조리는 김사월의 몽환적인 보컬은 호전적인 군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밴드 '빌리카터' 보컬 김지원이 부른 '사나이 한 목숨'에서는 아련함과 강단이 동시에 배어났다. '조국이 있다'를 부른 백현진의 절규하는 목소리는 아득한 한을 떠올리게 했다. 미술가이기도 한 백현진은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것에 대해 반기를 들어왔는데 이날도 국가라는 글씨에 X표가 그어진 흰색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김해원, 김사월, 김지원, 백현진, 이 개성 넘치는 네 보컬이 합창한 '빨간 마후라' '예비군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안무가 겸 무용수 김보람이 이끄는 현대무용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익살스러우면서 구조적인 춤이 더해지면서 그로테스크한 정경이 펼쳐졌다.

생명을 담보로 한 노래인 광포한 군가는, 휴전의 시간을 보내면서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갖게 됐다. 이날 군가는 갑옷이 아니었다. 브라스, 콘트라베이스가 포함된 빅밴드 연주에 적합하게 편곡된 군가는 세련됐고 그루브가 배어 있으며 몸을 살랑거리게 했다.

그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우정의 무대'의 연출자 장영규가 의도한 이 이질감은 군가의 재현이 아닌, 분단 이전 한반도 평화의 재림을 소망하게 하고 상기시켰다. 영화와 공연을 넘나드는 장 감독은 "노동당사에서 군가를 부르는 이 공연은 역설적으로 전쟁의 폭력성을 지워내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시멘트의 골조에 전쟁의 상흔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노동당사는 평화를 염원하는 곳이 됐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해를 꿈꾸며'(1994)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장소로 유명한 이곳은 문화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나가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우정의 무대'가 그 방법론을 보여줬다.  

한편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9일까지 펼쳐진다. 미국의 전위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 오리지널 멤버 존 케일과 밴드 '새소년'의 황소윤, 덴마크의 아트펑크 밴드 '아이스에이지', 중국 로큰롤의 아버지로 불리는 뮤지션 최건, 사회성 짙은 한국적 포크를 추구해온 포크뮤지션 부부 정태춘·박은옥도 나온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잔나비, 혁오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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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역설 '우정의 무대'

기사등록 2019/06/08 11:50:23 최초수정 2019/06/09 18: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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