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한미회담 차 출국…북미 비핵화 대화 재개 중대 분수령
한미, 비핵화 출구·로드맵엔 공감대…'비핵화 입구'엔 인식 차
文, 트럼프 설득 관건…'굿 이너프 딜' '조기 수확' 중재 총력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 입구 찾기라는 풀기 어려운 숙제를 안고 워싱턴 순방길에 오른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 간 비핵화 입구를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에 향후 북미대화 재개 여부도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오는 10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한다. 현지시각으로 같은 날 오후 워싱턴에 도착한 뒤, 하루 뒤인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취임 후 7번째인 한미 정상회담의 우선적인 목적은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를 조속히 재개하는 데 있다. 지난 2월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이 확인한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인식차를 좁히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9일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지난 6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화 동력을 조속히 되살리기 위해 한미 간 협의가 중요하다는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개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장에서 이미 한 차례 등을 돌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만들기 위한 중간 과정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라 할 수 있다. 한미→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첫 단추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의 의견을 수렴해 그 사이에서 절충안을 마련하고, 다시 북미 양측을 설득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양측으로부터 받고 있는 신뢰가 중재 노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28일 귀국 비행기 안에서 이뤄진 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통화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를 통해 그 결과를 자신에게 알려주는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약 2주 동안 가용한 모든 외교채널을 모두 가동하며 북미 양측의 판단에 대한 정보를 끌어모았다. 협상 결렬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마련했다.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제재 해제라는 미국과 북한의 요구가 근본적으로 충돌했기 때문에 합의문 서명에 실패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다.
비록 미국의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이라는 협상전략 때문에 마침표를 찍지 못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종전선언 ▲북미 상호연락사무소 개설 ▲북한 경제보장 등의 상호 조건을 확인한 긍정적 부분도 없지 않았다고 청와대는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을 골자로 한 이른바 '굿 이너프 딜(충분히 좋은 거래)'라는 절충안을 마련했다.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미국의 '빅 딜'과 단계적 보상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스몰 딜' 사이에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미가 비핵화의 모든 프로세스가 담긴 로드맵을 작성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담은 포괄적 합의를 먼저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 단계별로 관련 상응조치를 교환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청와대가 고안해 낸 '굿 이너프 딜'이다.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우선은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의 포괄적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에 합의토록 견인해 내고, 그런 바탕 위에서 '스몰 딜'을 '굿 이너프 딜'로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북한의 '살라미 전술'을 경계하는 미국을 감안해 모든 비핵화 단계를 잘개 쪼개는 것이 아니라 크게 1~2단계로 나눠 비핵화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 중재안의 핵심이다.
이 고위 관계자는 "비핵화의 의미있는 진전을 위해서는 한 두 번의 연속적인 조기 수확, 즉 '얼리 하비스트(early harvest)'가 필요하다"며 "이런 것을 통해 북미간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구축된 신뢰를 바탕으로 최종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미 간에는 비핵화의 최종 단계(end state)라는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기본 인식에 전혀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미 간에는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인 2021년 이전까지 비핵화의 최종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과 그러한 목표를 역산으로 추산한것을 바탕으로 도출한 비핵화의 전반적인 로드맵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다만 하노이 회담의 결렬 과정에서 확인했듯 본격적인 비핵화 시작 단계 즉, 비핵화 입구에 북미가 각각 어떤 조치들을 배열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다.
로이터 등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은 하노이 협상장에서 ▲북한의 핵무기·핵물질 미국으로 반출 ▲모든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포괄적 신고·검증·폐기 ▲핵관련 활동 중단 및 핵 인프라 제거 ▲핵 과학자 상업활동 전환 등이 담긴 비핵화 방안을 제시했다.
외신 보도가 맞다면 북한이 보유한 과거핵·현재핵·미래핵을 한 꺼번에 내놓으라는 것이 미국의 요구였다.
이는 과거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린 리비아식 해법과 구 소련의 붕괴 과정에서 시도한 우크라이나식 해법을 모두 합친 것으로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달 15일 평양 기자회견에서 "어디에 기초한 회담 계산법인지, 우리가 지금 이런 회담에 정말 의미를 둬야 하는지 다시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미국의 무리한 요구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 부상에 따르면 북한은 영변 내 핵시설의 완전한 폐기를 조건으로 유엔 대북 제재결의안 제2270호, 제2321호, 제2371호, 제2375호, 제2397호 가운데 민생과 직결된 일부 제재의 해제를 요구했다.
최소한 '영변 폐기+α(플러스 알파)' 요구한 미국과 영변 외의 폐기는 없다는 북한이 비핵화 입구 단계에서 충돌하며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즉, 북미가 비핵화를 각각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에 극명한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고민 지점도 여기에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비핵화의 일반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유를 하고 있지만 비핵화에 대한 '운영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어떤 상태를 북한의 핵활동의 중단 상태로 볼 것인지, 어떤 시설을 해체해야 북한이 핵능력을 잃었다고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개념 규정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고위 관계자는 "이것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지난 30년간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다"며 "따라서 운영적 정의에 대한 합의를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의 큰 과제"라고 말했다.
비핵화에 개념 정의, 각 단계별 조치·보상 배치 방식 등 비핵화 입구에 대한 합의는 북미 정상 간의 정치적 결단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북미 정상 간 정치적 결단을 돕는 게 문 대통령의 역할이기도 하다. 한미가 '톱 다운' 방식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이번 워싱턴 순방에서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해서는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며 "따라서 톱 다운 방식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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