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도 못 알아볼 아버지”…4·3희생자 유족 마르지 않는 '눈물'

기사등록 2019/04/03 15:15:34

71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3일 제주시 봉개동 평화공원 일원서 봉행

“결혼 앞둔 큰형님 끌려가 행방불명되기도…정부가 적극 나서줬으면”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71주년 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지에 희생자 유족이 찾아와 표지석을 닦고 있다. 2019.04.03.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71주년 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지에 희생자 유족이 찾아와 표지석을 닦고 있다. 2019.04.03. [email protected]

【제주=뉴시스】배상철 기자 =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사진이라도 남아있었으면 기억했을 텐데 집이 불에 타면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꿈에서 만나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제주시 외도동에 사는 문옥선(77) 할머니는 3일 오전 제주 4·3평화공원 묘역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표석을 쓰다듬으며 눈물지었다.

문 할머니가 세 살 무렵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아버지는 괴한들에게 영문도 모르고 끌려갔다고 했다. 괴한들은 문 할머니의 아버지를 배에 태워 바다에서 던져버렸고 그 뒤로 아버지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문 할머니는 “아버지가 그때 산에 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면 살아 있었을 텐데”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문 할머니의 어머니와 친척들도 같은 해 괴한들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후 괴한들은 집에 불을 질렀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들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문 할머니의 손가락 사이로 사라졌다.

문 할머니는 “살아 있지만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몸도 아프고 다리를 수술해 언제까지 아버지를 만나러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면서 “유족들을 위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제주시 이도동에서 온 전춘자 할머니(74)도 4·3 당시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를 잃었다.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71주년 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지에 희생자 유족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19.04.03.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71주년 4·3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지에 희생자 유족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19.04.03. [email protected]


전 할머니는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행방불명이다. 우리 아버지의 유해는 찾았지만 생전의 모습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아버지의 표석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고 매년 찾아오고 있다”며 슬픔에 잠겨 말했다.

전 할머니와 함께 온 남편 최익한 할아버지(74)는 “유족들 모두 마음에 상처가 남아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무신 할아버지(75·용담2동)는 결혼을 며칠 남기지 않은 형이 4·3 사건으로 행방불명되면서 어머니까지 화병으로 돌아가시는 비극을 겪었다.

김 할아버지는 “내가 4살 무렵 큰 형님은 20살쯤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혼을 앞두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형은 4·3 당시 괴한들에게 납치당했다”며 “큰형이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화병으로 힘들어하시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둘째였던 누님은 큰형을 찾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역시 행방불명 됐다”면서 “4·3으로 가족을 잃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고 했다.

김 할아버지는 “정부에서 우리 유족들에게 배·보상을 해주겠다고 하지만 우리보다 힘든 어린아이들을 도와줬으면 한다”면서 “부모님과 형님, 누님이 돌아가시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어린 시절을 다른 아이들은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추념식에는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한 봉사활동의 손길도 끊이지 않았다.

묘역 한편에서 따뜻한 차를 나눠주던 이순일(68)씨는 “저도 작은 시아버님이 행방불명된 유족”이라며 “살아계셨으면 좋았지만 이렇게라도 위로를 해줄 수 있어서 예전보다는 나은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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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도 못 알아볼 아버지”…4·3희생자 유족 마르지 않는 '눈물'

기사등록 2019/04/03 15:15:34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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