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왜 그래 풍상씨’는 막을 내렸지만, ‘이풍상’의 모습이 짙게 드리웠다.
“머리도 짧게 잘랐는데 풍상이로 보이느냐? 지금도 동생들이 보고 싶고 ‘간분실’(신동미) 여사가 내 옆에 있는 것 같다. 방송 전 손톱 때 분장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시선이 손으로 가더라. ‘촬영용으로 분장했다’고 일일이 다 어떻게 말하느냐. 나도 모르게 손을 숨기게 됐다. 문영남 작가님도 첫 대본 리딩 때 ‘풍상이 이미 불쌍한데 손톱 보니까 더 불쌍하다’면서 울컥하더라. 이상하게 손톱 다 지우고 간 날은 항상 작가님께 지적 받았다. 아내(탤런트 홍은희)가 ‘손톱 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하더라.”
동생 ‘화상’(이시영), ‘진상’(오지호), ‘정상’(전혜빈), ‘외상’(이창엽)은 ‘등골 브레이커’라고 불릴 만큼 풍상을 힘들게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부인 분실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유준상은 “다른 생각은 안 했다. ‘동생들이 잘 돼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어느 순간 동생들의 가장이 된 느낌이 들더라”고 몰입했다. 그러면서도 “분실과 딸 ‘중이’(김지영)에게 가장 미안했다”며 “풍상이 딴에는 동생들을 챙기는 게 가족을 챙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 동생들이 그렇다면 나도 부모처럼 하지 않았을까.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고 돌아봤다.
첫 회부터 마지막 20회(1·2부 포함 40회)까지 대본 연습 없는 날이 없었다. 유준상을 필두로 연기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연습하곤 했다. 촬영장에서 NG가 나는 법도 없다. 오지호(43)가 ‘누가 제발 NG 좀 내달라’고 할 정도다. 첫 회 풍상네 아버지의 장례식 장면은 극본 5장이 넘는 분량이었지만, 한 번에 촬영이 끝났다. 진형욱 PD는 ‘연극 보는 줄 알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첫 방송 전 1~4회 대본 연습할 때, 유준상은 문영남(59) 작가로부터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해?’라며 꾸중을 듣자 오기가 생겼다. “공연 끝나고 뉴욕 가는 일정이 있었는데, 작가님을 3시간 붙잡고 개인 교습을 받았다. 녹음 해 비행기 타고 가는 내내 연습했다”며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지호도 대본 리딩하다가 운 적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그만큼 다들 몰입해서 연기했다”고 털어놓았다.
유준상은 문 작가가 ‘사회에서 가장 절박한 상황에 몰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때 어떻게 헤쳐 나오는지 보여주고 싶어 했다’고 분석했다. 막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면서 “나도 작가님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이 작품을 선택했는데, 시청자들이 계속 막장이라고 해 힘들었다. 알아줄 날이 오지 않을까 했지만, 조금 늦게 20회에 왔다”며 웃었다.
풍상이는 ‘우리 가족 같이 밥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우리 가정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많이 던졌다.
“촬영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더니 진상이한테 ‘어이 진상이~ 내가 진상이야. 근데 우리 진상이 너무 멋있어!’라고 하더라. ‘나도 진상처럼 살았어’라고 하면서 진상이한테 힘을 실어주고 가는데 확 와닿았다. 진상과 화상이 미움을 많이 받았지만,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드라마가 옛날 정서라고 하는데, 요즘도 가족들이 집에서 TV 아니면 컴퓨터, 핸드폰 하고 서로 이야기도 거의 안 하지 않느냐. 이전의 감정을 끄집어 내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간 얘기는 우리가 먼저 했다”며 “스태프들이 ‘저쪽(하나뿐인 내편) 간을 받아서 풍상이 주라’고 하더라. 작가님 외 감독님은 물론 KBS 관계자, 제작사 대표까지 누가 풍상에게 간을 줄지 아무도 몰랐다. 간암 사실을 알고 밥을 안 먹고 촬영에 임했다. 점점 핼쑥해져 스태프들도 안타까워 하더라. 친척 형이 실제로 간암 투병을 해서 어떤 증상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가족에 대한 생각이 확실히 달라졌다. 나도 옛날 사람이라서 아이들에게 가끔씩 회초리 들고 혼도 많이 냈다. 풍상이 한 대사 ‘서로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답이 나와’가 중요한 말 같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이해되고 화가 덜 난다. 대사를 곱씹어 보면서 내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다. 반 백살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는데, 연기자든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되지 않느냐. 그런 의미로 정말 좋다. 동갑인 진형욱 감독과 농담 삼아 ‘이제 우리 새로운 한 살’이라고 얘기했다. ‘왜 그래 풍상씨’는 새로운 한 살을 시작하는 나에게 축복같은 선물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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