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시스】구길용 기자 =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학살 책임자로 지목받는 전두환(88)씨가 11일 광주 법정에 섰지만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광주와의 질긴 악연을 끊기 위해 진실의 역사 앞에 사죄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전씨는 진정성 없는 자세로 분노를 자아냈다.
전씨가 이날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 명예훼손)로 광주지법 법정에 선 것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지 39년 만이다.지난 1996년 내란죄 혐의로 법정에 선 이후로는 23년만이다
전씨는 지난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유공자인 고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조 신부를 가리켜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그동안 공판과정에서 알츠하이머병 등을 이유로 두 차례 재판 연기신청을 내기도 했지만 결국 광주 법정에 섰다.
전씨가 공식적으로 광주를 처음 찾았던 것은 제11대 대통령 취임 사흘 뒤인 1980년 9월4일 전남도청을 방문했을 때로 알려져 있다.
80년 5·18 당시에도 보안사령관 신분으로 광주를 찾았었다는 군 관계자들의 증언이 잇따라 논란이 되기도 했다.
5·18 당시 2군사령관(대장)이었던 진종채 장군은 지난 1995년 검찰조사에서 “날짜와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5월18일부터 27일 사이에 전두환·노태우 등이 광주 비행장에 따로따로 내려와 전교사사령관, 505보안부대장을 만나고 갔다는 사실을 2군사령부 참모부에서 보고받았다”고 진술했다.
5·18 당시 전교사 작전참모 백남이 대령은 "1980년 5월26일 오전 10시30분∼11시께 광주 공군비행장에 전두환 사령관이 와있는데, 사령부에도 갈지 모르니 왕래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연락을 비행장 상황실 근무자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전씨가 당시 광주를 방문해 주요 상황을 보고받고 결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던 대목이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지난 1987년 제68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까지 총 18차례 광주·전남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과정에서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상무대 전두환 범종이나 망월묘역 입구에 박힌 담양 고서 민박기념비 등을 남기기도 했다. 또 광주를 방문했을 때는 어김없이 '5·18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시민군'을 '폭도'로, '학살'을 '자위권 발동'으로 언급해 공분을 샀다.
이날 재판정에 선 이유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39년 동안 5·18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은폐와 궤변으로 일관하다 결국 자신의 회고록이 부메랑이 돼 광주의 법정에 섰다.
변한 건 없었다. 역사의 진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시민들을 뒤로 한 채 전씨는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변호인은 검찰의 공소장 내용이 사자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정에 들어설 때 기자들에게는 "왜 이래"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법정에서는 무책임하게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광주시민들은 "전씨가 지금이라도 5·18의 진실을 밝히고 진심어린 사죄를 하기를" 바랐지만 그의 모습은 '전통' 시절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