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승주 기자 = 3·1절을 앞두고 보험업계에서 독립운동에 공헌했던 교보생명 일가가 주목받고 있다.
교보생명은 27일 역대 창업주 일가의 신예범과 신용국, 신용호씨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고 밝혔다.
교보생명에 따르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조부 신예범씨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야학을 열어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운 인물이다. 그는 일본인 지주의 농민수탈에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큰 아들 신용국씨도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 스무살 때 3·1 만세운동에 뛰어들었고 호남지방 항일운동을 이끌다 감옥살이를 한적도 있다. 출옥한 뒤에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객지를 떠돌았다.
전남 영암의 대표적 농민항일운동 '영암 영보 형제봉 사건'에서 일본 소작인 응징과 항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반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11월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집에서 독학으로 초·중·고교 과정을 마쳤다고 들었다"며 "당시 100권 책을 정독하고 시장 부두 관공서를 둘러보는 현장학습으로 세상을 깨우친 것으로 알려졌다"고 회상했다.
신창재 회장의 부친 대산 신용호씨는 스무살에 중국으로 넘어온 뒤 사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독립운동가를 뒷받침했고 특히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던 시인 이육사를 만나면서 애국에 눈을 떴다.
그는 1940년 베이징에 '북일공사'를 설립해 곡물 유통업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를 바탕으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아Q정전 작가 루쉰의 영향을 받은 시인 이육사가 경술국치 이전에 벌어진 일을 상세히 거론하며 사업가의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그에게 열변을 토한 일화는 유명하다"면서 "이를 계기로 민족자본가의 꿈을 키운 끝에 교육보험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의 교보생명을 설립했다"고 전했다.
신창재 회장은 지난 1996년 서울대 의대 교수에서 교보생명으로 자리를 옮겼다. 암 투병 중이던 부친의 설득의 힘이다. 2000년에는 대표이사에 올랐다.
교보교육재단과 함께 리더십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교보문고를 확대 운영했다. 1999년부터 광화문 교보생명 건물벽에 걸었던 광화문 글판의 명맥도 이어왔다. 신용호 창업주가 1996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뒤로부터 22년만인 2018년 정부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기업인이지만 문학과 예술 두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면서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 보험업계 일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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