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돈의동 쪽방촌…좁은 골목 이어진 방 한칸
가족 있지만 "죽었나 살았나" 모를 정도로 소원
"쉬는 날 많고 돈은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냐"
사람 사는 집보다 빈집 많은 중계본동 백사마을
"평생 홀로 명절 맞아…자식 안본지 30년 넘어"
자녀 길러내고 남은 노부부…"명절은 그냥 둘이"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이창환·남정현 수습기자 = 모처럼 긴 연휴다. 고속도로는 귀성·귀경차량으로 가득 찼고, 공항은 훌쩍 떠나 휴가를 즐기려는 이들까지 더해지며 전국 300만명이 넘는, 역대 최대 이용객 수가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누군가는 가족과 둘러앉아 회포를 풀고 낯선 곳에서 여유를 만끽할 때, 어떤 이는 서너 평 남짓한 방에서 외로운 명절을 보낸다. 들뜬 연휴 분위기를 비껴간 이들이 있는 곳,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과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을 지난 1일 찾았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김시환(62)씨는 덤덤했다. '설날을 혼자 보낸 지 얼마나 됐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김씨는 "설날에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며 "그저 어디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올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에게 만날 가족이 없는 건 아니다. 김씨는 육남매 중 셋째다. 젊은 시절 형과 함께 가구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한 명 한 명 연락이 끊겼다. 김씨는 "지금은 다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홀로 있는 명절이 익숙해졌다고 해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설 쇠러 가야하는데, 마음이 아프죠. 나도 조카가 있어요. 보고 싶어요. 차 타고 30분 거리에 살거든요. 그래도 갈 수가 없으니…"
김씨는 말끝을 흐렸다.
돈의동에서 만난 또 다른 주민 표모(81)씨는 근처 절에서 반찬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표씨는 "매주 받아온다"고 했다. 이번 연휴에는 그의 '설 음식'이 될 터였다.
이처럼 누군가는 가족과 둘러앉아 회포를 풀고 낯선 곳에서 여유를 만끽할 때, 어떤 이는 서너 평 남짓한 방에서 외로운 명절을 보낸다. 들뜬 연휴 분위기를 비껴간 이들이 있는 곳,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과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을 지난 1일 찾았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김시환(62)씨는 덤덤했다. '설날을 혼자 보낸 지 얼마나 됐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김씨는 "설날에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며 "그저 어디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올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에게 만날 가족이 없는 건 아니다. 김씨는 육남매 중 셋째다. 젊은 시절 형과 함께 가구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한 명 한 명 연락이 끊겼다. 김씨는 "지금은 다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홀로 있는 명절이 익숙해졌다고 해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설 쇠러 가야하는데, 마음이 아프죠. 나도 조카가 있어요. 보고 싶어요. 차 타고 30분 거리에 살거든요. 그래도 갈 수가 없으니…"
김씨는 말끝을 흐렸다.
돈의동에서 만난 또 다른 주민 표모(81)씨는 근처 절에서 반찬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표씨는 "매주 받아온다"고 했다. 이번 연휴에는 그의 '설 음식'이 될 터였다.
표씨에게는 긴 연휴가 오히려 고통이다. 표씨는 "한달에 기초수급비 60만원 정도 받고 거기서 방세 24만원을 내고 남는 돈으로 생활한다"고 밝혔다.
"쉬는 날은 많지, 돈은 없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에요."
두 사람이 지나가면 꽉 차는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진 이 곳에 표씨가 둥지를 튼 건 2002년이었다. 아내와 이혼 후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나마 연락이 되는 딸이 있지만 "언제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교류가 없어진 지 오래다.
"만나면 싸우니까. 서로 만나면 좋은 소리 못하고 비참해지니까...여기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요."
표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백사마을에서 만난 한인섭(76)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22년째 이곳에서 홀로 명절을 맞는 한씨는 "평생을 그렇게 (명절을) 보냈다"고 했다. 자식들이 있지만 "안 본 지 30년이 넘었다"고도 했다.
특별한 설 계획도 없다. 한씨가 무심히 말했다.
"뭐 TV 보고 누웠다가 일어나고 하겠지."
"쉬는 날은 많지, 돈은 없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에요."
두 사람이 지나가면 꽉 차는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진 이 곳에 표씨가 둥지를 튼 건 2002년이었다. 아내와 이혼 후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나마 연락이 되는 딸이 있지만 "언제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교류가 없어진 지 오래다.
"만나면 싸우니까. 서로 만나면 좋은 소리 못하고 비참해지니까...여기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요."
표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백사마을에서 만난 한인섭(76)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22년째 이곳에서 홀로 명절을 맞는 한씨는 "평생을 그렇게 (명절을) 보냈다"고 했다. 자식들이 있지만 "안 본 지 30년이 넘었다"고도 했다.
특별한 설 계획도 없다. 한씨가 무심히 말했다.
"뭐 TV 보고 누웠다가 일어나고 하겠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은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았다. 대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집 입구를 판자나 스티로폼으로 막아 놓은 곳도 있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는 이곳을 조정수(69)씨는 아내와 함께 30여년째 지키고 있다. 조씨는 "아이들이 조그만 아이였을 때부터 여기 살았다"며 "1988년 서울올림픽 전이었다"고 말했다.
길러낸 자녀들은 부모의 품을 떠났고 이제는 조씨 부부만 남았다. 조씨는 "뇌경색이 와 왼쪽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며 "몸도 안 좋은데 어디를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자녀들을 본 지도 오래됐다.
조씨는 "자식들도 명절에 일하고 경제적으로 힘들다"며 "명절은 둘이 그냥 보낸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는 이곳을 조정수(69)씨는 아내와 함께 30여년째 지키고 있다. 조씨는 "아이들이 조그만 아이였을 때부터 여기 살았다"며 "1988년 서울올림픽 전이었다"고 말했다.
길러낸 자녀들은 부모의 품을 떠났고 이제는 조씨 부부만 남았다. 조씨는 "뇌경색이 와 왼쪽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며 "몸도 안 좋은데 어디를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자녀들을 본 지도 오래됐다.
조씨는 "자식들도 명절에 일하고 경제적으로 힘들다"며 "명절은 둘이 그냥 보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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