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호 속 불황 닥치자 날개없는 추락
회사를 ‘아메바’처럼 나눠 권한과 책임 부여
뉴시스가 오는 28일 서울 중구 소공로 더 플라자 그랜드볼룸에서 ‘뉴시스 일본 포럼’을 개최한다. 여기서는 '일본 기업의 혁신과 구조조정'을 주제로 강연이 있으며, 이어 일본항공(JAL)의 우에다 히데쓰구(植田英嗣) 총무·법무·홍보 총괄 임원이 '일본항공의 부흥 비결'을 주제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다. 이에 앞서 일본 기업 회생의 대표로 꼽히는 JAL의 몰락과 부활 스토리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도쿄=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 경제의 이른바 ‘잃어버린 20년’과 이후 부활의 시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이 바로 일본항공(JAL)이다.
JAL의 급격한 추락과 재도약의 반전(反轉)은 한편의 드라마같다. 여기에는 일본 경제의 문제점과 저력이 고스란히 압축돼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고공비행하다 어느 날 직원의 3분의 1을 해고하고 도쿄 증시에서도 쫓겨나는 수모를 겪으면서 곤두박질 친 JAL은 불과 2~3년 만에 화려한 재기의 날개짓으로 비상한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JAL은 1951년 설립됐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처리를 매듭지은 샌프란시스코조약이 체결된 해로 일본의 전후 시대가 본격 개막할 때였다. 1954년 JAL이 처음 취항한 국제노선도 하네다-호놀룰루-샌프란시스코 노선이었다. 이어 1967년에는 아시아 항공사로는 처음으로 세계일주 노선을 실현했다. 일본의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듯한 급속한 성장이었다.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JAL은 1983년 운송 실적에서 미국의 팬암, 영국의 브리티시에어, 프랑스의 에어프랑스를 제치고 마침내 세계 1위 항공사로 등극했고 이는 5년이나 이어졌다.
그러나 절정의 순간에서 위기는 잉태되기 시작했다. 반관반민(半官半民)으로 출범했던 JAL은 1987년에 완전 민영화됐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정부와 관료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의 버블(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JAL도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1991년 1월에 발발한 걸프전쟁도 해외 여행자를 줄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호텔 등에 대한 무리한 투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고, 강경 노조의 임금 투쟁 역시 경영을 옥죄었다.
일본 경제가 깊은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세계 경제도 불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다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그 여파가 몰아닥치면서 JAL은 맥없이 추락하고 만다.
2010년 1월 19일 JAL은 법정관리(파산보호)를 신청하게 된다. 사실상 파산한 것이다. 당시 JAL의 부채는 2조 3000억엔(약 23조원)에 달했고, 자본은 완전잠식 상태였다. 기업회생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보유 항공기의 3분의1에 해당하는 95기를 매각했다. 국내외 노선 45개도 폐쇄했다. 직원도 3분의1에 달하는 1만 6천명을 줄여야 했다. 희망퇴직을 실시했지만 신청자가 부족했다.
2010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JAL 조종사와 승무원 165명에게 해고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회사 경영 사정으로 이튿날인 2011년부터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강제해고였다. 이들은 법원에 해고무효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JAL은 도쿄 증시에서도 상장이 폐지됐다. 기업으로서의 생명이 사실상 끝난 것이었다.
전후 일본의 화려한 부활을 상징하면서 젊은이들의 최고 선망 직장이던 JAL의 몰락은 충격적이었다. 국내외 경기 침체가 JAL 몰락의 한 이유로 꼽혔지만 주된 이유는 될 수 없었다. 정부 지원과 보호에 의존하는 안일한 경영과 위기의 한가운데서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무사태평이 추락의 근본원인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다시한번 반전이 일어났다. 2년여 뒤 JAL이 기록한 경영 성적표는 기적이었다.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결산에서 2049억엔(약 2조 49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이다. 당초 목표했던 757억엔을 훨씬 넘은,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이었다. 2012년 9월에는 도쿄 증시에 당당히 재입성했다.
무엇이 이런 대반전을 가능하게 했을까. 전문가들은 처절한 구조조정과 체질개선, 그리고 구성원들의 의식개혁을 꼽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뛰어난 경영리더의 추진력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JAL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당시 일본 민주당 정권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세계적인 전자·정보기기 회사인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명예회장에게 경영을 부탁했다. 당시 78세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이나모리 회장은 무보수로 JAL 회장직을 수락했다. 그는 마쓰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혼다 소이치로( 本田宗一郎)와 더불어 일본의 3대 경영인으로 꼽히며,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2010년 2월 1일 취임하자마자 마라톤 회의를 열고, 현장을 찾아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JAL의 문제점을 구석구석 파악했다. 당시 JAL의 한 간부는 “이나모리 회장은 취임 이튿날 아침부터 밤까지 회의에 참석했다. 내가 브리핑을 하던 밤 10시쯤 사람들은 녹아떨어졌으나 이나모리 회장 혼자만 볼펜을 들고 설명을 빠짐없이 듣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끝없이 던졌다”고 기억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나모리 회장이 내린 진단은 명료했다. JAL은 경영철학도 목표와 전략도 없는 부실 덩어리 자체라는 것이었다. 영업과 운항 등 각 부문마다 제 목소리를 내기 바쁘고, 정치권 입김에 경영이 좌지우지되며, 임직원들은 적자의 모든 원인을 경제불황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모든 것을 기초부터 다시 다져 나가야겠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임직원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과 목표의식, 가치관, 판단 기준을 공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경영진을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을 실시했다. 그의 교육은 사업하는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 인간의 삶에 있어 신뢰와 진정성, 용기 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등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기업 경영자들에게는 한가롭기 그지없는 내용이라 반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나모리 회장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인간으로서 올바른 행동이나 태도 같은 확고한 기준을 갖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기업인으로서 어떠한 상황에 부닥쳐도 정도(正道)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영철학과 함께 이나모리 회장은 자신이 교세라를 창립해 키우면서 경영원칙으로 삼아온 ‘아메바 경영’을 JAL에 도입했다. 아메바 경영은 기업을 작은 조직으로 세분화해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면서 인사, 자금, 기술 등 모든 자원 배분의 결정권을 소집단에 맡기는 분권적 경영시스템이다.
그는 회사 조직을 ‘아메바’라 불리는 5~10명 단위의 팀으로 나누고 각 팀이 하나의 작은 회사처럼 운영되도록 했다. 직원들은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되면서 단순한 종업원이 아닌 기업가라는 마인드가 생겼고 의사결정도 빨라졌다.
각 부서간 수익을 책임지는 구조로 조직이 개편되면서 부문별로 더 작은 단위의 아메바들이 생겨났다. 월말마다 서로 수지 개선을 비교해 팀별 승패를 측정했다. 영업부문 직원들은 매출 극대화에 노력했고, 생산부문은 경비절감을 넘어 수익 창출에도 나서게 됐다. 직원들은 이를 마치 스포츠처럼 즐기기도 했다. 이 덕분에 연간 800억엔(약 8천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게 됐다.
직원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내 세탁소를 없애고 직원들이 직접 유니폼을 빨아 입는가 하면, 종이컵 대신 머그잔을 사용했고, 기름때 묻은 장갑을 빨아가며 사용했다. 영업이익이 늘어날수록 수익을 높이려는 직원들의 노력과 의식은 더욱 고조됐다. 회사 차원의 치열한 구조개혁도 병행됐다. 자회사는 절반 가까이 매각했고, 인건비는 20%, 퇴직연금은 30% 정도씩 줄였다.
이런 노력 끝에 JAL은 비상에 성공하고 이나모리 회장은 2013년 3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나모리 회장은 퇴임후 한국의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2014년 9월)에서 자신의 경영철학과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생각한 '아메바 경영'은 저와 같은 경영자 의식을 가진 사원을 한 명이라도 더 만들고 싶은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점점 커져 수천 명, 수만 명이 되면 경영자인 저 혼자서는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회사 조직을 작게 나눠 책임자를 두고 그 사람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아메바 경영'입니다.”
2012년 이후 계속 영업 흑자를 기록한 JAL은 2017 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 결산에서는 1745억엔(약 1조 745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일본 젊은이들의 2019년 취업 선호 기업 4위로도 뽑혔다. 추락의 쓰라린 경험과 그걸 극복해 낸 의지가 JAL의 가장 소중한 자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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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뉴시스】 조윤영 특파원 =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 경제의 이른바 ‘잃어버린 20년’과 이후 부활의 시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이 바로 일본항공(JAL)이다.
JAL의 급격한 추락과 재도약의 반전(反轉)은 한편의 드라마같다. 여기에는 일본 경제의 문제점과 저력이 고스란히 압축돼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고공비행하다 어느 날 직원의 3분의 1을 해고하고 도쿄 증시에서도 쫓겨나는 수모를 겪으면서 곤두박질 친 JAL은 불과 2~3년 만에 화려한 재기의 날개짓으로 비상한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JAL은 1951년 설립됐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처리를 매듭지은 샌프란시스코조약이 체결된 해로 일본의 전후 시대가 본격 개막할 때였다. 1954년 JAL이 처음 취항한 국제노선도 하네다-호놀룰루-샌프란시스코 노선이었다. 이어 1967년에는 아시아 항공사로는 처음으로 세계일주 노선을 실현했다. 일본의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듯한 급속한 성장이었다.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JAL은 1983년 운송 실적에서 미국의 팬암, 영국의 브리티시에어, 프랑스의 에어프랑스를 제치고 마침내 세계 1위 항공사로 등극했고 이는 5년이나 이어졌다.
그러나 절정의 순간에서 위기는 잉태되기 시작했다. 반관반민(半官半民)으로 출범했던 JAL은 1987년에 완전 민영화됐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정부와 관료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의 버블(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JAL도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1991년 1월에 발발한 걸프전쟁도 해외 여행자를 줄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호텔 등에 대한 무리한 투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고, 강경 노조의 임금 투쟁 역시 경영을 옥죄었다.
일본 경제가 깊은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세계 경제도 불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다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그 여파가 몰아닥치면서 JAL은 맥없이 추락하고 만다.
2010년 1월 19일 JAL은 법정관리(파산보호)를 신청하게 된다. 사실상 파산한 것이다. 당시 JAL의 부채는 2조 3000억엔(약 23조원)에 달했고, 자본은 완전잠식 상태였다. 기업회생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보유 항공기의 3분의1에 해당하는 95기를 매각했다. 국내외 노선 45개도 폐쇄했다. 직원도 3분의1에 달하는 1만 6천명을 줄여야 했다. 희망퇴직을 실시했지만 신청자가 부족했다.
2010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JAL 조종사와 승무원 165명에게 해고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회사 경영 사정으로 이튿날인 2011년부터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강제해고였다. 이들은 법원에 해고무효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JAL은 도쿄 증시에서도 상장이 폐지됐다. 기업으로서의 생명이 사실상 끝난 것이었다.
전후 일본의 화려한 부활을 상징하면서 젊은이들의 최고 선망 직장이던 JAL의 몰락은 충격적이었다. 국내외 경기 침체가 JAL 몰락의 한 이유로 꼽혔지만 주된 이유는 될 수 없었다. 정부 지원과 보호에 의존하는 안일한 경영과 위기의 한가운데서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무사태평이 추락의 근본원인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다시한번 반전이 일어났다. 2년여 뒤 JAL이 기록한 경영 성적표는 기적이었다.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결산에서 2049억엔(약 2조 49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이다. 당초 목표했던 757억엔을 훨씬 넘은,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이었다. 2012년 9월에는 도쿄 증시에 당당히 재입성했다.
무엇이 이런 대반전을 가능하게 했을까. 전문가들은 처절한 구조조정과 체질개선, 그리고 구성원들의 의식개혁을 꼽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뛰어난 경영리더의 추진력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JAL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당시 일본 민주당 정권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세계적인 전자·정보기기 회사인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명예회장에게 경영을 부탁했다. 당시 78세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이나모리 회장은 무보수로 JAL 회장직을 수락했다. 그는 마쓰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혼다 소이치로( 本田宗一郎)와 더불어 일본의 3대 경영인으로 꼽히며,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2010년 2월 1일 취임하자마자 마라톤 회의를 열고, 현장을 찾아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JAL의 문제점을 구석구석 파악했다. 당시 JAL의 한 간부는 “이나모리 회장은 취임 이튿날 아침부터 밤까지 회의에 참석했다. 내가 브리핑을 하던 밤 10시쯤 사람들은 녹아떨어졌으나 이나모리 회장 혼자만 볼펜을 들고 설명을 빠짐없이 듣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끝없이 던졌다”고 기억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나모리 회장이 내린 진단은 명료했다. JAL은 경영철학도 목표와 전략도 없는 부실 덩어리 자체라는 것이었다. 영업과 운항 등 각 부문마다 제 목소리를 내기 바쁘고, 정치권 입김에 경영이 좌지우지되며, 임직원들은 적자의 모든 원인을 경제불황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모든 것을 기초부터 다시 다져 나가야겠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임직원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과 목표의식, 가치관, 판단 기준을 공유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경영진을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을 실시했다. 그의 교육은 사업하는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 인간의 삶에 있어 신뢰와 진정성, 용기 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등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기업 경영자들에게는 한가롭기 그지없는 내용이라 반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나모리 회장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인간으로서 올바른 행동이나 태도 같은 확고한 기준을 갖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기업인으로서 어떠한 상황에 부닥쳐도 정도(正道)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영철학과 함께 이나모리 회장은 자신이 교세라를 창립해 키우면서 경영원칙으로 삼아온 ‘아메바 경영’을 JAL에 도입했다. 아메바 경영은 기업을 작은 조직으로 세분화해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면서 인사, 자금, 기술 등 모든 자원 배분의 결정권을 소집단에 맡기는 분권적 경영시스템이다.
그는 회사 조직을 ‘아메바’라 불리는 5~10명 단위의 팀으로 나누고 각 팀이 하나의 작은 회사처럼 운영되도록 했다. 직원들은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되면서 단순한 종업원이 아닌 기업가라는 마인드가 생겼고 의사결정도 빨라졌다.
각 부서간 수익을 책임지는 구조로 조직이 개편되면서 부문별로 더 작은 단위의 아메바들이 생겨났다. 월말마다 서로 수지 개선을 비교해 팀별 승패를 측정했다. 영업부문 직원들은 매출 극대화에 노력했고, 생산부문은 경비절감을 넘어 수익 창출에도 나서게 됐다. 직원들은 이를 마치 스포츠처럼 즐기기도 했다. 이 덕분에 연간 800억엔(약 8천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게 됐다.
직원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내 세탁소를 없애고 직원들이 직접 유니폼을 빨아 입는가 하면, 종이컵 대신 머그잔을 사용했고, 기름때 묻은 장갑을 빨아가며 사용했다. 영업이익이 늘어날수록 수익을 높이려는 직원들의 노력과 의식은 더욱 고조됐다. 회사 차원의 치열한 구조개혁도 병행됐다. 자회사는 절반 가까이 매각했고, 인건비는 20%, 퇴직연금은 30% 정도씩 줄였다.
이런 노력 끝에 JAL은 비상에 성공하고 이나모리 회장은 2013년 3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나모리 회장은 퇴임후 한국의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2014년 9월)에서 자신의 경영철학과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생각한 '아메바 경영'은 저와 같은 경영자 의식을 가진 사원을 한 명이라도 더 만들고 싶은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점점 커져 수천 명, 수만 명이 되면 경영자인 저 혼자서는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회사 조직을 작게 나눠 책임자를 두고 그 사람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아메바 경영'입니다.”
2012년 이후 계속 영업 흑자를 기록한 JAL은 2017 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 결산에서는 1745억엔(약 1조 745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일본 젊은이들의 2019년 취업 선호 기업 4위로도 뽑혔다. 추락의 쓰라린 경험과 그걸 극복해 낸 의지가 JAL의 가장 소중한 자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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