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 전 고위급회담 미국 요구 북한이 묵살
상대방에 대한 양측 압박 갈수록 수위 높아져
【서울=뉴시스】강영진 기자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최근 매일같이 이번 주말로 예정된 북미고위급회담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반복되는 그의 언급은 6일 실시되는 미 중간선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핵문제를 선거전에 유리한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까지 나서 목청을 높이는 제재 해제 요구를 일축함으로서 북한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미국과 북한이 미 중간선거를 목전에 두고 이처럼 기싸움을 벌이면서 중간 선거 결과가 주말의 고위급회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 역시 미 중간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제재해제를 요구하는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의 복리 증진과 발전을 가로막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굴복시켜 보려고 악랄한 제재 책동에만 어리석게 광분"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제재 해제를 언급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지난달 초 폼페이오 장관과 면담에서 제재 해제를 직접 요구했음을 대내 외에 알리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하루 뒤 "미국이 거듭되는 요구를 제대로 가려 듣지 못하고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경제 건설 총집중' 노선에 다른 한 가지가 추가돼 '병진'이라는 말이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권정근 외무성 미국연구소 소장 명의 논평을 내보냈다.
북한은 지난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 회의에서 '핵·경제 건설 병진' 노선을 중단하고 '경제 건설 총력 집중'이라는 새 전략 노선을 채택한 바 있다.따라서 "병진"이라는 말이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는 말은 핵개발 재개 가능성을 위협한 것이다. 간접적이지만 비핵화 협상국면을 깨고 다시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히는 강도높은 대미 압박이다.
이처럼 북한의 압박이 심해지는 것과 관련해 폼페이오 장관은 4일(현지시간) 미 폭스뉴스에 출연해 "온갖 말들이 떠돌지만 (나는) 협상 상대가 누구고 그들의 입장이 무엇인지 잘 안다"면서 평가절하했다. 그는 "우리가 최종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경제 제재 완화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번 주 만나는 북한 파트너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임을 공개했다. 이틀 전까지 '북한의 2인자'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회담 상대자가 김영철임을 시사한데서 한발 더 나아가 명확히 공개한 것이다.
한편으로 북한의 압박을 무시하면서 고위급회담에 대해서는 한발씩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는 폼페이오 장관의 모습은 협상을 앞둔 기싸움인 동시에 북미 협상이 성과를 내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4일 CBS 방송에도 출연, "주말에 김영철을 만나며 비핵화의 중대 진전을 이룰 미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북한은 미군 유해를 돌려줬다"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있은) 지난 6월 이후 불과 몇 달 사이에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상황은 잘 진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번 주말 뉴욕에서 진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북한과 핵협상에서 성과를 냈다고 조목조목 과시한 것이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를 보여주기 전까지 경제제재 해제는 없다는 미국의 입장이 계속 유지되느냐"는 질문에는 "완전한 비핵화만이 아니라 비핵화가 이뤄졌다는 것을 우리가 검증하는 것이 경제 재재 해제의 전제조건"이라고 답했다. 미국이 북한에 양보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하는 반응이다.
그는 이틀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북한의 2인자와 이번주 회담할 것"이라고만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중순 북한과 고위급회담을 10월중에 갖게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과 회담 일정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중간선거일 뒤인 이번주 후반으로 늦춰졌다. 이처럼 회담 일정이 자꾸 늦춰지는 것도 제재 해제를 둘러싼 북미 사이의 기싸움이 겉보기보다 치열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미국이 북한과 핵협상을 중간선거에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북한은 이를 견제하면서 대미 압박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북미 고위급회담이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 압박하고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 대한 사찰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제재 해제가 먼저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 살인사건, 이번 주 이란 제재 발표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중간선거에도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달 말 열릴 예정이던 한미 국무·국방 회담 일정을 취소하면서까지 지난 주 내내 캔자스주 지사 선거 지원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일 이어지는 그의 북한 관련 언급은 이런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면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합의했다고 밝혔고, 김정은이 직접 일부 시설에 대한 사찰을 허용했음을 공개했었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절차는 계속 지연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직접 스티브 비건 국무부 특별대표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 실무협상을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북한은 이를 외면했다. 지난달 말 고위급회담을 개최할 것이라고 공개했지만 이마저도 이번주 선거일 뒤로 연기됐다. 폼페이오-김영철 회담 날짜조차 7일인지 8일인지 여전히 확정되지 않고 있다.
중간 선거 결과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나오면 폼페이오-김영철 회담은 상당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커보인다. 반면에 선거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면 회담이 겉돌거나 심지어 불발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의 중간선거 역사상 이례적으로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짐에 따라 북미 핵협상도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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