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적 비핵화 넘는 일괄타결 방안 제시한듯
【서울=뉴시스】강영진 기자=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이 북미관계 개선의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7일 평양을 방문한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3시간반에 걸쳐 대화를 나눴다. 오찬을 하기 전 2시간 동안 긴 회담을 했고 이어서 한시간반 동안 오찬을 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미국 장관과 이처럼 '격의 없이' 회담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미국이 아무리 세계 최강국이라고 해도 통상적인 의전 관례나 격식을 크게 벗어난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을 떠난 뒤 김정은 위원장과 나눈 대화에 대해 비교적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내용을 거의 공개하지 않으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생산적 대화를 나누었고 한발 내딛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표현이 그가 한 말의 전부다.
다만 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을 접견한 뒤 청와대는 "북한과 미국이 실무협상단을 구성해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 등을 빠른 시일 내에 협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폼페이오 장관이 문대통령에게 "북한이 취하게 될 비핵화 조치들과 미국 정부의 참관 문제 등에 대해 협의가 있었다"며 "미국이 취할 상응조치에 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이어 미 국무부는 김정은 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 해체를 검증하기 위해 미국 사찰단을 초청했다고 발표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상당히 세부적인 내용까지 논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상당한 진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8일 오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과 작별인사에서 "조만간 제2차 조미(북미)수뇌회담과 관련한 훌륭한 계획이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어 "김 위원장이 (북미) 양국 최고수뇌들 사이의 튼튼한 신뢰에 기초하고 있는 조미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앞으로도 계속 훌륭히 이어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과 나눈 대화에 대해 크게 만족했음을 누누히 강조했다.
TV에 중계된 화면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오찬장에 들어서면서 폼페이오 장관에게 "좋은 회담 후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쁘다. 양국의 좋은 미래를 약속하는 매우 좋은 날"이라고 직접 강조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처럼 북한이 이번 폼페이오 방북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이룰 결정적 계기가 될 것처럼 대대적으로 환영하는데 비해 미국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모습이다. 폼페이오 장관과 동행한 국무부 관리도 갈 길이 아직 멀다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성급한 낙관을 경계했다. 다만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곧 보게될 것"이라고 밝혀 미국측 인사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처럼 북한은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이나 된 듯이 환호하는데 비해 미국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분위기여서 그 배경이 궁금해진다.
우선 북한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을 격식을 넘어 환대한 것을 보아도 북한이 큰 기대를 걸고 있음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중간 선거를 앞둔 지금 시점이 미국과 담판을 벌이기에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일 수 있다. 미국과 획기적으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다.
김정은 위원장이 과거 6자회담 등에서 '행동 대 행동'의 단계적 비핵화 논의가 실패했음을 고려해 비핵화와 북미수교를 단번에 해결하는 일괄타결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관계의 도박판에서 올인(all in)에 준하는 통 큰 베팅을 하는 셈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김정은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느냐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분위기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북한이 언제든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우려를 벗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의 유혹에 넘어가 농락당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을 경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김정은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예전의 북한과 미국 지도자들에 비해 이 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북한이 비핵화 논의에서 불신을 받는 것은 김정일 시대의 유산이다. 이에 비해 김정은 위원장이 나선 현재의 비핵화 논의는 부정적 평가를 받을 대목이 아직 거의 없다. 이에 비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북미 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북미관계는 다시 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김정은 위원장의 올인 베팅에 트럼프 대통령이 콜(call)을 하고 나설 것인지 앞으로 며칠,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