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국토부 충돌 하루 이틀 일 아냐
행안부-기재부도 서울시에 막강 영향력
인사와 재정 상당 부분 중앙정부에 있어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른바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놓고 갈등을 빚은 것은 비단 서울 집값 급등 책임 공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사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오래된 주도권 다툼에서 찾아야 한다.
박 시장이 지난 26일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발표와 추진은 현재의 엄중한 부동산 시장 상황을 고려해 주택시장이 안정화될 때까지 보류하겠다"고 선언하기까지 국토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서울시를 압박했다.
김 장관은 지난달 23일 국회에 출석해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작심 비판했다. 김 장관은 "여의도와 용산을 중심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며 박 시장을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했다.
급기야 이번 달 3일에는 손병석 1차관 등 국토부 고위 공무원들이 '국토부-서울시 정책협의체'라는 명목으로 서울시청을 직접 찾아와 시 공무원들을 압박했다.
손 차관은 당시 "주택시장의 안정과 주거복지의 강화는 정부나 지자체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오랫동안 경험해왔다.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서 공동의 정책을 시행하고 시장에 일관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우회적이긴 했지만 박 시장의 행보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국토부가 엄포를 놓은 뒤 박 시장은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보류를 선언했다. 박 시장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서울 주택시장의 이상 과열'을 보류 이유로 대긴 했지만 국토부의 전방위적 압박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지우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박 시장은 김 장관과 국토부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시장은 보류 발표 전날인 지난 25일 내부 비공개 회의에서 국토부가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서울 집값 급등 원인으로 지목된 데 대해 불쾌함을 드러냈다고 한다.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문재인 정부에 협력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속이 편치는 않았던 것이다.
사실 박 시장과 김 장관, 서울시와 국토부 간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 후 서울시가 강남 아파트 재건축을 잇따라 허가하면서 국토부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4월에는 국토부가 정부부처 건축물을 용산공원에 잔류시키는 내용으로 '용산공원 보전 건축물 활용방안'을 발표하자 박시장이 직접 나서 반대하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져 왔다. 또 지난달에는 서울시가 국토부의 표준지 공시지가 결정권을 광역자치단체에 이양해야 한다고 건의해 국토부를 자극하기도 했다.
박 시장 취임 전에도 서울시와 국토부의 갈등은 있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야당 소속이던 이명박 시장과 그 뒤를 이은 오세훈 시장이 용산공원 개발과 강남 재건축 용적률, 각종 규제 완화 여부 등을 놓고 건설교통부와 충돌했었다.
따라서 이번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둘러싼 서울시와 국토부의 갈등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오랜 힘겨루기가 표면화된 것일 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시 등 지자체는 좀 더 많은 권한과 자율성을 부여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중앙정부는 이를 거부해왔다. 중앙정부는 1995년 지방자치제도 시행 후에도 여전히 지자체의 인사권과 재정권을 쥐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지금도 권한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국토부보다 더 입김이 센 정부부처는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다.
행안부는 서울시 고위직(행정·경제부시장 등 1~2급 공무원) 인사권을 놓지 않고 있다. 행안부는 시청 고위직 공무원 임사검증을 거친 뒤 청와대에 추천한다. 부시장 인사권이 서울시장이 아닌 행안부와 대통령에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새 사업을 하기 위해 조직·정원을 늘리고 싶어도 행안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서울시 살림살이 역시 기획재정부가 상당 부분 틀어쥐고 있다. 시 예산 중 국비예산 부분은 기재부가 편성한 뒤 국회에 심의를 요구한다. 현재 8대2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 탓에 기재부는 서울시 사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의 지지 속에 지방분권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 역시 허울뿐이라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지방분권을 주창하고 있지만 해당 부처 공무원들은 권한을 나눠줄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현 정부 들어 추진하던 헌법개정에 지방조직권 확대, 지방재정권 확대 등 내용이 포함됐지만 이 역시 불발되면서 지방분권은 한층 더 멀어지는 분위기다.
이같은 상황 탓에 이번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사태와 같은 광역지자체장의 '굴욕'은 앞으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사태로 체면을 구긴 박 시장이 향후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건이다.
박 시장으로선 명예회복을 위해 더 강도 높은 지방분권을 요구하며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 박 시장은 이번 달 14일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돼 광역지자체장 대표로 지방분권을 진두지휘할 수 있다. 박 시장은 지방분권 기치를 내걸고 광역지자체장들의 중지를 모아 중앙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
실제로 박 시장은 당시 수락사에서 "민생문제와 함께 주택·복지·교통 등 시급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기준인건비 내에서 부단체장과 실국장 수를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기존의 8대 2에서 6대 4로 조정해 지방세 이양을 획기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박 시장이 지나치게 강하게 지방분권을 요구했다간 차기 대선 가도에 불리한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2020년 총선거에서 친(親) 박원순계를 국회에 진입시켜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선 공천권을 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게 박 시장 앞에 놓인 가혹한 현실이다. 그러니 정부 여당이나 청와대와 섣불리 각을 세울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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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의 본질은 사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오래된 주도권 다툼에서 찾아야 한다.
박 시장이 지난 26일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발표와 추진은 현재의 엄중한 부동산 시장 상황을 고려해 주택시장이 안정화될 때까지 보류하겠다"고 선언하기까지 국토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서울시를 압박했다.
김 장관은 지난달 23일 국회에 출석해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작심 비판했다. 김 장관은 "여의도와 용산을 중심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며 박 시장을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했다.
급기야 이번 달 3일에는 손병석 1차관 등 국토부 고위 공무원들이 '국토부-서울시 정책협의체'라는 명목으로 서울시청을 직접 찾아와 시 공무원들을 압박했다.
손 차관은 당시 "주택시장의 안정과 주거복지의 강화는 정부나 지자체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오랫동안 경험해왔다.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서 공동의 정책을 시행하고 시장에 일관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우회적이긴 했지만 박 시장의 행보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국토부가 엄포를 놓은 뒤 박 시장은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보류를 선언했다. 박 시장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서울 주택시장의 이상 과열'을 보류 이유로 대긴 했지만 국토부의 전방위적 압박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지우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박 시장은 김 장관과 국토부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시장은 보류 발표 전날인 지난 25일 내부 비공개 회의에서 국토부가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서울 집값 급등 원인으로 지목된 데 대해 불쾌함을 드러냈다고 한다.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문재인 정부에 협력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속이 편치는 않았던 것이다.
사실 박 시장과 김 장관, 서울시와 국토부 간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 후 서울시가 강남 아파트 재건축을 잇따라 허가하면서 국토부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4월에는 국토부가 정부부처 건축물을 용산공원에 잔류시키는 내용으로 '용산공원 보전 건축물 활용방안'을 발표하자 박시장이 직접 나서 반대하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져 왔다. 또 지난달에는 서울시가 국토부의 표준지 공시지가 결정권을 광역자치단체에 이양해야 한다고 건의해 국토부를 자극하기도 했다.
박 시장 취임 전에도 서울시와 국토부의 갈등은 있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야당 소속이던 이명박 시장과 그 뒤를 이은 오세훈 시장이 용산공원 개발과 강남 재건축 용적률, 각종 규제 완화 여부 등을 놓고 건설교통부와 충돌했었다.
따라서 이번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둘러싼 서울시와 국토부의 갈등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오랜 힘겨루기가 표면화된 것일 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시 등 지자체는 좀 더 많은 권한과 자율성을 부여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중앙정부는 이를 거부해왔다. 중앙정부는 1995년 지방자치제도 시행 후에도 여전히 지자체의 인사권과 재정권을 쥐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지금도 권한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국토부보다 더 입김이 센 정부부처는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다.
행안부는 서울시 고위직(행정·경제부시장 등 1~2급 공무원) 인사권을 놓지 않고 있다. 행안부는 시청 고위직 공무원 임사검증을 거친 뒤 청와대에 추천한다. 부시장 인사권이 서울시장이 아닌 행안부와 대통령에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새 사업을 하기 위해 조직·정원을 늘리고 싶어도 행안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서울시 살림살이 역시 기획재정부가 상당 부분 틀어쥐고 있다. 시 예산 중 국비예산 부분은 기재부가 편성한 뒤 국회에 심의를 요구한다. 현재 8대2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 탓에 기재부는 서울시 사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의 지지 속에 지방분권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 역시 허울뿐이라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지방분권을 주창하고 있지만 해당 부처 공무원들은 권한을 나눠줄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현 정부 들어 추진하던 헌법개정에 지방조직권 확대, 지방재정권 확대 등 내용이 포함됐지만 이 역시 불발되면서 지방분권은 한층 더 멀어지는 분위기다.
이같은 상황 탓에 이번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사태와 같은 광역지자체장의 '굴욕'은 앞으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사태로 체면을 구긴 박 시장이 향후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건이다.
박 시장으로선 명예회복을 위해 더 강도 높은 지방분권을 요구하며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 박 시장은 이번 달 14일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돼 광역지자체장 대표로 지방분권을 진두지휘할 수 있다. 박 시장은 지방분권 기치를 내걸고 광역지자체장들의 중지를 모아 중앙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
실제로 박 시장은 당시 수락사에서 "민생문제와 함께 주택·복지·교통 등 시급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기준인건비 내에서 부단체장과 실국장 수를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기존의 8대 2에서 6대 4로 조정해 지방세 이양을 획기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박 시장이 지나치게 강하게 지방분권을 요구했다간 차기 대선 가도에 불리한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2020년 총선거에서 친(親) 박원순계를 국회에 진입시켜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선 공천권을 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게 박 시장 앞에 놓인 가혹한 현실이다. 그러니 정부 여당이나 청와대와 섣불리 각을 세울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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