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일주일]"입사 이래 가장 행복" vs "업무시간 빡빡"

기사등록 2018/07/08 11:11:27

당당하게 정시퇴근 직장인들 빠른 속도 확산

유연근무제로 아침·저녁 육아전쟁 부담 덜어

저녁회식 자제, 점심회식으로 대체하는 회사도

"빡빡해도 압축적으로 일해 효율성 더 높아져"

"일 집중해야 할 때 있는데 퇴근하라니" 불만도

"회사서 성과는 똑같이 요구" 간부급 실적 압박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직장인 황지연(35)씨의 지난 일주일은 최근 2년 간 가장 마음 편한 기간이었다. 황씨는 2015년 출산 후 다음 해 복직했다. 형편상 맞벌이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아이를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친정집에 맡겼다. 황씨와 남편 모두 야근이 잦고 퇴근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직장에 다니다보니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일이 포함된 출·퇴근 시간은 매번 전쟁이었다. 몸이 지치는 것은 물론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육아를 부모님께 맡겨놨다는 미안한 마음도 컸다.

 2일부터 황씨는 오후 4시에 퇴근해 아이를 집에 데려왔다. 오전 7시에 출근하는 직원들은 4시에 퇴근할 수 있게 하는 유연근무제를 회사가 도입했기 때문이다. 남편 또한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한다. 아이를 맡기는 건 남편이, 데리고 오는 건 황씨가 맡았다. 잠잘 때 외에 함께하는 시간이 평일 2시간이 채 안 됐던 황씨 가족은 이제 최소한 5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게 됐다. 황씨는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우니까 일도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7월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전격 도입되면서 일주일 사이에 직장인의 삶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업무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사 눈치를 보며 '퇴근 타이밍 잡기'에 들어가던 모습은 줄고 당당하게 정시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퇴근시간이 되자 부장님이 빨리 들어가라고 했다. 행복하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는 내용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이에 "이번 주는 눈치를 좀 봤는데, 다음주부터는 나도 칼퇴하고 운동을 다닐 것"이라는 식의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반대로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이 줄어들자 업무 강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졌다고 불평하는 직장인도 있다.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근무 시간만 줄어 점심시간과 흡연 시간도 줄여가며 일을 했다"는 말이 나온다. 시행 전부터 우려됐던 임금 감소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월급은 다소 줄었는데, 여가 시간만 늘면 뭐하나"라는 불만도 있다.

 실제로 직장인 대상 교육 전문 업체인 휴넷이 최근 직장인 942명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51.3%는 '근로시간이 줄어 삶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삶이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도 43.5%나 됐다. 아예 '관심 없다'고 답한 사람도 5.2%였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반씩 공존하는 모양새다.
◇"하루가 이틀이 된 것 같아요"

 직장인 5년차인 김대준(33)씨는 지난주 '점심 회식'을 처음 경험했다. 김씨가 다니는 회사는 회식이 업무의 연장일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웬만하면 저녁 회식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2주에 한 번은 꼭 있던, 밤 늦게까지 이어지던 회식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김씨는 홀가분하다고 했다. 평소 오후 9시 전후로 퇴근하던 김씨는 오후 6시에 퇴근할 수 있게 되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종은(29)씨가 다니던 IT회사는 야근이 일상인 곳이었다. 남들보다 늦은 오전 10시에 출근하지만 자정을 넘겨 일하는 날이 닷새 중 최소 사흘은 이어졌다. 이런 업무 환경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씨는 회사가 주 52시간 근무제 일환으로 지난주부터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자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 오후 4시30분에 퇴근하고 있다. 이씨는 "오랜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일하기보다는 빡빡하더라도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일하는 게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주중 인터넷 서점에서 책 10만원어치를 구입했다. 그는 "업무를 마치고 책을 읽을 시간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 하루가 이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긍정적으로 본 직장인들은 대체로 여가의 확대가 업무 효율의 증가로 이어질 거라고 내다봤다. 한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허모(36)씨는 "일은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하는 게 중요하다"며 "잘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리급인 최모(33)씨는 "업무 시간에 딴짓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그 시간에 얼른 일하고 빨리 집에 가는 게 정상적인 회사 생활"이라고 했다.
◇"일은 많은데, 퇴근만 일찍 하라고 하면…"

 일괄적인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이 오히려 비효율적인 상황을 만든다고 하소연하는 직장인도 있다.

 김모(32)씨가 다니는 회사는 지난주부터 오후 6시가 되면 사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게끔 했다. 새로 적용되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라는 지침의 일환이다.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된 김씨는 기존에 수행하던 업무는 물론 새 일의 내용을 숙지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야근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회사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이유로 추가 근무를 허락하지 않았다. 김씨는 "일과 여가의 균형도 중요하지만, 일을 할 때는 또 집중적으로 해야 하지 않느냐"며 "일 걱정에 오히려 퇴근 후 시간이 찝찝하고 불안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실적에 대한 부담감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차·부장급 직원들이 받는 부담감은 상대적으로 더 심해졌다. 야근을 시켜서라도 목표를 달성하던 이전 방식을 더이상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업무 효율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극적인 변화를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압박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부장으로 있는 한모(46)씨는 "'워라밸'을 맞춰야 한다는 데 공감은 한다"면서도 "회사가 당장에 줄어든 업무 시간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똑같은 성과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주일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는 단순히 일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잠시 차를 마시고 쉬면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팀워크를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직장인 권모(34)씨는 "담배 피우러 나가는 시간이나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일일이 체크해가며 정신없이 일할 것을 요구하는 게 과연 올바른 방향이냐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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