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순기능의 어떤 본보기, 정혜진 안무 '궁:장녹수전'

기사등록 2018/05/14 10:39:00

'궁: 장녹수전'
'궁: 장녹수전'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예술은 대상에 입체성을 부여한다. '조선의 악녀', '희대의 요부'인 장녹수(?∼1506)를 예술은 어떻게 재조명할 수 있을까.

정동극장이 7월31일까지 오후 4시 상설공연으로 선보이는 '궁: 장녹수전'(연출 오경택)은 조선 중기 연산군(1476~1506)의 귀염과 사랑을 받은 총희(寵姬) 장녹수를 예인(藝人)으로 톺아본다.

여느 문화 콘텐츠는 연산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장녹수의 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한국무용에 기반한 '궁:장녹수전'은 이러한 편견을 걷어낸다.

지금은 거의 잊힌 전통 서민 놀이문화인 정월대보름 답교놀이를 비롯해 장구춤, 한량춤, 교방무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기방문화가 장녹수를 재발견하게 만든다. 궁녀들이 꽃을 들고 추는 화려한 '가인전목단', 배를 타고 즐기는 '선유락' 등은 장녹수뿐 아니라 당대 여성 예술가들에 내재된 섬세하면서 힘찬 리듬을 찾아낸다.

안무가 정혜진(59) 전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의 공이 크다. 이화여대 무용과를 나와 중요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를 이수한 정 안무가의 고민이 녹아 들어 있다. 섬세한 감성과 기본에 충실한 안무가 좋은 비율로 섞이며 한국무용의 다채로운 면을 뽑아낸다.

정 안무가는 일찌감치 공연계에 기분 좋은 균열을 내왔다. 특히 서울예술단 시절 남성 중심의 서사 체계가 공고한 이 판을 건강하게 흐트러뜨렸다.'여자' 명성황후의 삶을 되짚어볼 수 있었던 '잃어버린 얼굴 1895', 애인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우고 아들 온조와는 백제를 건국한 소서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서노'가 대표적이다. 

안무가 정혜진
안무가 정혜진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는 권력을 지워 명성황후의 양면성을 보게 했고, '소서노'에서는 남성 영웅들 틈바구니에 가려진 헤로인을 조명했다.

'궁:장녹수전'에서는 춤과 의상의 시각적 황홀경에서도 장녹수의 기개를 꺼내 보인다. 수동적인 자세로 남자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아닌, 홀로서도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장녹수에 대해 엇갈리는 사후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다른 면을 보게 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힘이다.더구나 그 화법도 세련됐다. 지루하게 설파하는 것이 아닌, 뮤지컬 넘버처럼 다채롭게 펼쳐낸다. 이에 힘 입어 국내 관객은 물론중국, 일본 아시아, 그리고 유럽 등 외국인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한국 무용, 새삼 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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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순기능의 어떤 본보기, 정혜진 안무 '궁:장녹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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