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계기로 남과 북이 판문점을 오갈 새로운 다리를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기존의 두 다리를 대체할 새로운 교량이다.
북측이 판문점에 이르려면 사천강을 건너야 한다. 이 강에는 다리가 둘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계인 군사 분계선을 가로지른다. 공동경비구역 서쪽에 있다. 1953년 휴전협정 체결 후 이 다리를 통해 포로를 송환했다. 포로가 한 번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돌아오지않는다리가 포로 송환용으로 쓰인 것은 1968년 석방된 푸에블로호 선원들이 우리나라로 건너온 때가 마지막이다.
1976년 8월 ‘북괴의 판문전 도끼 만행’이 빚어지기 전까지 북측은 주로 이 다리를 넘어 판문점으로 왔다. 도끼살인 사건 이후 국제연합 사령부(UNC)가 공동 경비구역에서도 군사 분계선을 구분하도록 하자 북측은 사흘 만에 판문점 서쪽 통일각 뒤에 공동경비구역 출입용 새 다리를 만들었고, 돌아오지않는다리는 방치됐다. 사흘, 즉 72시간 만에 급조했다고 해 ‘72시간 다리’로 불린다.
정상회담은 새로운 다리 건설로 이어질 수 있다. 1990년대 판문점에서 10년 간 근무한 판문점 남북회담사 전문가 김연철씨는 남북이 함께 ‘아리랑 다리’ 를 건립하자고 제안한다. 연장 140m, 폭 10m로 세울 경우 공사비는 최소 18억(PSC 빔), 최대 34억원(PF 빔)으로 예상된다.
김씨는 “판문점 북측에는 육각정(1964) 판문각(육각정 개축·1969) 통일각(1985), 남측에는 자유의집(1965), 구 평화의집(1980), 신 평화의 집(1989), 신 자유의집(구 평화의집·자유의집 헐고 신축·1998)이 있다. 좋은 이름은 다 썼다. 남은 것은 아리랑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아리랑은 미국도 존중한다. 1953년 7월27일 UN과 북측이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을 하고 나오자 우리나라와 북의 군악대들은 아리랑을 연주했다. 같은 곡을 연주하자는 사전 협의는 없었다. 남과 북이 동시에 아리랑을 연주하는 광경은 미군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전쟁까지 벌인 두 나라가 아리랑을 연주하는 모습은 아리랑이 사상과 이념을 아우르고 화해와 안식을 부르는 음악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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