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로 주목 '대나무 숲'…"익명 보장에 고발 상승 작용"

기사등록 2018/03/06 14:26:25

【서울=뉴시스】페이스북 '대한민국 고2 대나무숲' 화면 캡처.
【서울=뉴시스】페이스북 '대한민국 고2 대나무숲' 화면 캡처.
대학 중심 익명게시판 대나무숲 통해 '#미투' 이어져
특정 집단 이용하는 커뮤니티이지만 '익명성'에 용기
'방관자' 탈피해 처지 공감하며 추가 폭로로 이어져
"허위 신고·악성 댓글은 과도기적으로 보이는 현상"
"익명 공간서도 자정작용 생겨 미투 물결 더 커질것"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 각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SNS(사화관계망서비스)에서 이용되는 '대나무숲'이라는 익명게시판이 주목받고 있다.

 2012년께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대나무숲'은 특정집단이 이용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 계정이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다. 동종 업계에 있거나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불만이나 애환을 토로하며 공감을 나누는 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대나무숲 미투' 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은 대학가다. 지난 21일 서울예술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이나 성년의날 등 때 음란행위를 강제하는 문화를 고발하는 글이 게시됐다. 세종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지난 학기까지 박병수 영화예술학과 전 겸임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한양대학교와 명지대학교,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등 다양한 학교의 대나무숲에는 교수와 선배, 교직원 등으로부터 당한 성추행·성폭행 사실을 토로하는 글들이 나오고 있다.

 특정 연령대가 모인 대나무숲에서도 '#미투'글이 올라왔다. '대한민국 고2 대나무숲'의 한 이용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영어과외 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최근에는 학교 구성원에 의한 성폭력 피해 제보를 받는 '스쿨미투' 페이지가 개설됐다. 학생, 교사, 교직원 등 학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곳으로 학내 각종 성폭력·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나무숲에서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글이 잇따르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측면에서 신분이 노출되기를 극도로 꺼리는 피해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지지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개적으로 미투 선언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도 '꽃뱀 아니냐', '합의한 것 아니냐'는 등의 시선이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서 피해자가 자신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이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로서 신원은 숨긴 채 피해를 공개하는 데 대나무숲이란 공간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익명이지만 연령대나 장소 등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 참여하는 '대나무숲'의 특징에 주목했다.

 임 교수는 "각 대나무숲은 같은 학교, 같은 연령대, 같은 직업 등 비슷한 사람들이 사용한다고 믿어지는 커뮤니티"라며 "피해자가 비슷한 피해 사례에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공간에서 피해를 공개하고, 지지 댓글 등의 반응이 오면 울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등 심리적으로 '정서적 정화작용'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대나무숲에서의 폭로가 더 많은 폭로를 부르고 해결 움직임을 일으킨다는 분석도 있다.

 임 교수는 "성범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방관자 효과'인데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감하는 것은 물론, '나도 당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있다"며 "실제 경찰 수사가 이뤄지는 등 변화가 나타나자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렇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 책임연구원은 "대나무숲을 통해 모아진 피해사례들로 자체적으로 수업 거부 운동을 한다든가 소속 단체 차원에서 진상조사에 나서는 등 후속 조치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일각에서 벌어지는 익명성으로 인한 허위신고 등 부작용이 있을지라도 '대나무숲'을 통한 '#미투' 물결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 전망했다.

 임 교수는 "허위신고나 악의적 댓글 등은 문제지만 이는 대나무숲을 이용하는 데 생기는 과도기적 상황"이라며 "온라인이 익명의 공간이긴 하지만 실제 경찰이 수사를 착수하면 로그인 정보 등으로 작성자 특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정작용이 생기면서 더 큰 미투 물결이 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책임연구원도 "이미 온라인상에서도 허위로 의심 받는 글에 대해서는 '사실인지 확인해보자'는 움직임이 있고 악성 댓글을 제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익명의 공간 안에서도 자정 활동이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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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8/03/06 14:26:25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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