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 총기 참사에도 美총기 규제는 '글쎄'

기사등록 2017/10/15 05:30:00

최종수정 2018/01/01 04:48:53

【서울=뉴시스】이지예 기자 =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현지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총기 규제 강화 논의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오후 10시께 흥겨운 음악 축제가 열리고 있던 라스베이거스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돌변했다. 수천 명의 인파가 총알 소리가 빗발치는 가운데 필사적으로 거리를 내달렸다.

 총격범 스티븐 패독(64·사망)은 길 반대편의 '만달레이 베이 리조트 앤 카지노' 호텔 32층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그는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연장의 사람들을 향해 쉬지않고 총기를 난사했다.

 이번 참사로 58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다쳤다. 2007년 버지니아텍 총격(사망 32명), 2016년 올랜도 총기난사(사망 49명) 때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를 내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 총격범, 합법적으로 총기 구입해 치밀한 준비

 범인인 패독은 네바다주 출신의 백인 남성이다. 그는 은퇴한 회계사로 생전 풍요로운 생활을 했다. 도박을 즐기긴 했지만 범죄 전과나 뚜렷한 정신병력은 없었다. 국제 테러단체와 연계된 정황도 나타나지 않았다.

 패독이 총격 직후 자살한 탓에 범행 동기는 미궁에 빠졌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총기 수십 정과 탄약, 폭발물을 준비하고 머물던 객실과 축제장까지의 사정거리를 계산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는 점이다.

 패독은 총 47정의 총기를 합법적으로 사들여 보유 중이었다. 이 중 33정은 불과 1년 사이 구매했다. 그는 네바다, 캘리포니아, 유타, 텍사스 등 여러 주의 총기 판매점을 돌아다니며 총을 사들렸다. 

 패독은 보유 총기 가운데 10여 개에 총기 자동화 부품인 '범프 스톡'을 장착했다. 이 장비를 사용하면 반자동 소총을 자동화기로 개조해 1분에 400~800발을 쏠 수 있다. 이는 인명 피해 규모를 키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울=AP/뉴시스】라스베이거스 총격 용의자 스티븐 패독(64)의 동생 에릭이 AP통신에 공개한 스티븐 패독의 사진. 2017.10.01
【서울=AP/뉴시스】라스베이거스 총격 용의자 스티븐 패독(64)의 동생 에릭이 AP통신에 공개한 스티븐 패독의 사진. 2017.10.01
◇ 총기 규제 반대자들의 항변

 비영리단체 '총기 폭력 아카이브'(GVA)에 따르면 2015년 이래 미국에서 한 해 4만 명 이상이 총에 맞아 숨지거나 다쳤다. 올들어서도 현재까지 약 1만2000명이 총기로 사망했고 2만4000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민간인이 보유한 총기 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국제 무기거래 조사기관인 '스몰 암스 서베이'(SAS)는 2011년 기준 미국인 100명 가운데 평균 89명이 총기를 갖고 있다고 집계했다.

 미국에선 헌법이 개인의 총기 소지권을 보장한다. 건국 지도자들은 1791년 영국 식민지 독립 이후 이 권리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2조를 제정했다. 연방정부가 상비군을 동원해 각 주를 억압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잇단 총기 난사 사건으로 총기 규제 문제가 쟁점화될 때마다 떠오르는 총기 옹호론도 여기에 기반한다. 총기 소유는 미국의 건국 정신에 기반해 국민들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침해할 수 없는 권리라는 주장이다.

 찬성자들도 반대파처럼 '안전'을 이유로 든다. 총기가 없다면 일상생활의 위험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방어할 것이냐는 지적이다. 이들은 총기 폭력이 심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총기 소유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구멍 뚫린 규제와 단호한 총기협회

 미국에 총기 규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연방법상 18세 이상만 총기 구매가 가능하고 총기 판매점에서 제품을 살 때는 연방수사국(FBI)의 신원 및 전과 조회를 거쳐야 한다. 완전 자동 소총은 사용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총기 종류마다 규제 요건이 다른데다 개인 거래 등을 통해 신원 조회를 교묘하게 피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패독은 아무런 전과 기록이나 특이점이 없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총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 

 전미총기협회(NRA)의 입김도 막강하다. 남북 전쟁 이후 민간인 총기 보유 금지 움직임에 반발해 창설된 이 이익단체는 미 정계에서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력을 행사하는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총기 규제를 저지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우 임기 중 총기난사 사건이 잇달자 규제 강화를 추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정치자금줄인 NRA와 손잡고 실효성 있는 규제 도입을 좌절시켰다.

 라스베이거스 참사 이후 NRA는 범프 스톡 사용을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전면적 금지는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규제 강화는 절대 총기 범죄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2017.10.3.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2017.10.3.
◇ 트럼프의 총기 폭력 대책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총기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총기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백악관은 라스베이거스 사태 애도와 수습이 우선이라는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 소유권 옹호자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가능한 많은 사람이 무장해야 총기 피해자가 줄어든다는 논리를 폈다. 취임 직후엔 행정명령으로 오바마 시절 도입된 정신질환자 총기 구매 제한법을 폐기했다.

 트럼프는 과거엔 일정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2000년 저서 '우리에게 걸맞은 미국'에서 공격용 총기 금지, 총기 구매시 대기 기간 연장을 지지한다고 했다. 총기 규제는 연방 정부가 아닌 주 정부에 맡길 문제라는 모호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역시 NRA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는 4월 로널드 레이건 이래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34년 만에 처음으로 NRA 총회에서 연설을 했다. NRA는 트럼프의 선거 운동에 수천만 달러를 투입하며 전적으로 그를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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