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모 집 한 채 사준 게 적폐냐?"…8·2대책에 분통터진 소급 적용 대상자

기사등록 2017/08/25 05:50:00

【서울=뉴시스】26일 서울 강동구 상일동 187번지에 오픈한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 견본주택을 찾은 방문객들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2017.05.26. (사진=롯데캐슬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26일 서울 강동구 상일동 187번지에 오픈한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 견본주택을 찾은 방문객들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2017.05.26. (사진=롯데캐슬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민기 기자 = "흙수저로 태어나 애 3명 어린이집에 맡기고 맞벌이로 8년간 일하다가 겨우 돈 모아 이번에 분양 한 번 받았는데, 노부모를 위해 집 한 채 산 것 때문에 중도금 대출도 못 받는 적폐 세력 다주택자가 됐다."(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 분양계약자)

 "7월에 4만원짜리 주차위반 딱지 끊었지만 8월 2일부터 6만원으로 바뀌었고 아직 통지서를 발부하지 않았으니 4만원이 아닌 6만원을 내라는 것과 똑같다."(청와대 국민 청원의 한 댓글)

 8·2대책의 부작용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특히 대책 발표 전 분양 계약을 맺었지만 아직 중도금 대출 계약을 하지 않아 규제를 적용받게 된 다주택자들이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대책 발표 이전의 분양계약에도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에 철회해야한다는 것이다. 철회가 안 된다면 수천만원에 달하는 계약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퇴로를 만들어 달라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다주택자에 대해선 대출 규제에 예외를 두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중도금 대출을 받고 싶으면 기존 주택을 처분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8·2대책이 소급 적용된 단지는 용산 효성 해링턴, 고덕 센트럴 푸르지오, 인덕 아이파크, 신정아이파크위브, 구로 항동 중흥 S클래스, 힐스테이트 세종 리버파크, 고덕 센트럴 아이파크, 고덕 배네루체, 현대힐스테이트 세종 2차 등이다.

 이들 단지들은 8·2 대책 전 입주자공고를 내고 청약을 해 분양계약을 마쳤지만 아직 중도금대출에 관한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8·2 부동산 대책의 규정을 받게 됐다.

 앞서 정부는 서울 전역과 세종시에 대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40%로 낮췄다. 강남구, 성동구, 마포구 등 '투기지역' 내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1가구 1건'으로 제한했다.

 이에 기존에 집이 있고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낸 사람은 분양에 당첨됐다고 하더라도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억울함을 느낀 수분양자들이 다수 민원을 냈다. 그러자 금융위는 '중도금대출 당시 무주택자이며 분양권도 없는 경우', 1'세대에 주택담보대출이 1건 있는 경우 그 주택을 중도금대출을 받은 주택 등기 후 2년 내 처분하는 조건(일시적 2주택자인 경우)'에 한해 예외를 허용했다.

 하지만 이들 단지의 피해자들은 '8·2대책 소급 적용으로 인한 피해자 모임'이라는 네이버 카페를 만들어 대책을 논의 중이다. 이미 가입자는 1800명을 넘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8·2 부동산 대책 소급적용은 부당하다'는 내용의 국민청원도 올렸다.

 지난 20일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다주택자 20여명이 금융위원회를 방문해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했다. 오는 25일께 다시 항의 방문 할 계획이다.

 ◇다주택자들, 선의의 피해자 구제할 '퇴로' 만들어 달라

 소급 적용을 받게 된 다주택자들은 정부의 정책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의 일관성 없는 발표로 정책이 소급적용 돼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해결을 해줘야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들은 이미 계약금인 분양가의 10%를 건설사에 지불한 상황이라 분양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갑자기 중도금을 구하기도 힘들어 이도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계약금의 경우 단지마다 차이가 있지만 적게는 1~2000만원에서 많게는 8~9000만원에 달한다.

【서울=뉴시스】26일 서울 강동구 상일동 187번지에 오픈한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 견본주택을 찾은 방문객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17.05.26. (사진=롯데캐슬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26일 서울 강동구 상일동 187번지에 오픈한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 견본주택을 찾은 방문객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17.05.26. (사진=롯데캐슬 제공) [email protected]
소급 적용된 단지의 건설사와 계약한 A씨는 "분양 전에 중도금 대출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애초에 분양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건설사들 역시 중도금 60%는 정부 규제 후에도 대출이 될 것처럼 홍보했고 이를 믿고 계약했는데 지금은 계약금 7000만원을 날리고 이혼할 위기다"고 말했다.

 다급한 소급 적용 대상자들은 건설사 현장소장에게 "중도금 대출이 나오지 않고 돈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분양을 취소할 테니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계약금 반환이 힘들면 중도금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건설사들이 미리 중도금을 일부 대납해주고 잔금시점에 갚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도 진행 중이다.

 실제 2007년 강남이 투기 지역으로 지정 되면서 6억원 초과 고가아파트의 분양이 부진에 빠지자 건설사들이 총부채상환비율(DTI)에 걸려 대출이 불가능한 중도금 40% 정도를 연 8%의 이자를 받고 잔금으로 유예시켜주기로 했다.

 하지만 건설사들 역시 "정부가 다주택자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데 우리가 먼저 나서서 계약금을 돌려주고 대출을 해주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도금 대출의 경우 계약 해지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다주택자의 요구를 거절했다.

 중도금 대출을 받기 위해 기존에 있는 주택을 팔려는 다주택자들도 있다. 하지만 정부 규제로 거래 절벽이 심각해 매도가 잘 되지 않거나 노부모를 위해 수도권 외곽에 집을 사놓은 터라 집이 팔리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8·2대책 피해자 모임 카페의 한 누리꾼은 "2015년에 부모님 노후에 사시라고 친정 지방에 미분양 아파트 분양권 하나를 샀고, 동생 결혼자금 빌려주려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는데 지금은 적폐세력 다주택자가 됐다"면서 "지방 아파트 분양권은 처분하고 싶어도 산다는 사람이 없어 마이너스 피로 내놓을 지경"이라고 밝혔다.

 ◇시장 혼란 가중, 정부도 추가 대응책 놓고 '고심'
 
 정부 입장에서도 이러한 8·2 부동산 대책 부작용 대상자들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고 있지만 섣불리 대책을 내놓기는 곤란한 상황이다.

 금융위나 국토부 모두 다주택자들이 기존 집을 파는 것 이외에는 별도의 구제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거래 절벽으로 기존 집을 팔수도 없고 중도금이 막혀 수천만원의 계약금을 날릴 위기에 처한 서민들이 늘어나고 시장 혼란이 가중되면 추가 보완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들이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보고 있어 이들에 대해 강력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예외 규정을 늘릴 경우 공정성이나 형평성 부분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정책 효율성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투기지역의 경우 다주택자 규제는 예외를 두기 힘들다"면서도 "다주택자들을 어느 수준까지 보호해줄 것인지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건설사들도 분양자들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다주택자에 대한 여론도 좋지 못하고 먼저 나서서 이들을 구제해주다가 정부에 미운털이 박힐까봐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A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먼저 가이드 라인을 주거나 장관이 나서서 구제 방안에 대해 시그널을 주지 않는 이상 건설사가 먼저 나서긴 쉽지 않다"면서 "우리 역시 계약금을 돌려주면 다시 분양자를 모집해야하고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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