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 이야기] <상> 맛 좋은 귀족 어류 '은어'···조선시대 진상품으로 대접

기사등록 2017/07/17 07:00:00

지난해 2월 19일 안동시 민속박물관 인근에서 열린 '안동 장빙제'에서 안동도호부 현감으로 분장한 김명호 안동장빙제추진위원장이 은어를 저장하기 위해 석빙고로 향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지난해 2월 19일 안동시 민속박물관 인근에서 열린 '안동 장빙제'에서 안동도호부 현감으로 분장한 김명호 안동장빙제추진위원장이 은어를 저장하기 위해 석빙고로 향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일반 백성들 잡지 못하도록 관청서 관리
한번 장부에 등재되면 무조건 진상해야

【봉화=뉴시스】김진호 기자 = 매년 7월 말이면 경북 봉화군과 영덕군, 전남 강진군 등에서 은어축제가 열린다. 
 
 뉴시스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보다 즐겁고 의미있는 은어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은어와 관련된 역사적 에피소드를 <상>, <하> 2회에 걸쳐 알아본다. 

 "벗꽃 잎 떨어져 강물에 흐를 쯤 되면 바다에 나갔던 어린 은어가 태어난 고향의 여울로 돌아옵니다. 세찬 물살을 거스르고 험한 여울 턱을 넘어 상류로 오르지만 알을 낳은 후에는 모두 죽는 슬픈 물고기입니다."

17일 이하상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은어(銀魚)의 생애를 이렇게 정의한다. 은빛을 띠어 은어, 또는 은구어(銀口魚)라고도 불리는 이 민물고기는 길이가 대략 15~20cm 정도이다. 산란기는 9~10월로 모래와 잔자갈이 깔린 곳을 찾아 알을 낳는다.

 예전부터 우리나라는 은어가 전국 곳곳에 서식했다. 대체로 영남에서 나는 것은 크고, 강원도 것은 작았다. 1530년 이행(李荇 1478~1534), 홍언필(洪彦弼 1476~1549) 등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증보해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은어 특산지로 8도 109개 지역이 서술돼 있다.

지난해 2월 19일 안동시 민속박물관 인근에서 열린 '안동 장빙제'에서 잡은 은어를 안동석빙고에 저장하는 과정이 재현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지난해 2월 19일 안동시 민속박물관 인근에서 열린 '안동 장빙제'에서 잡은 은어를 안동석빙고에 저장하는 과정이 재현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이 중 경상도는 봉화현, 안동대도호부, 예천군, 상주목 등 42개소(전체의 38.5%)가 거론될 만큼 단연 최고의 은어 서식지였다. 지금은 생태가 변하면서 울진 왕피천, 영덕 오십천, 봉화 내성천, 전남과 경남을 흐르는 섬진강, 산청의 경호강, 합천의 황강, 강진의 탐진강 등에서 발견된다.

 낙동강 1300리 상류에 위치한 봉화는 내성천을 비롯해 운곡천, 낙동강천에서 은어가 많이 잡혔다. 그러나 1977년 안동댐이 준공된 이후부터는 바다에서 회귀하지 못해 댐에서 부화돼 올라오는 일명 '육봉은어'가 많다.

 "낙동강 줄기인 안동시 예안면 하천에는 모래사장이 좋아 은어가 많았어요. 봄이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수박 냄새나는 은어 떼로 강물이 번쩍번쩍 빛났지요."

 이재춘 안동문화원장은 안동댐으로 막히기 전에는 안동에 은어가 많았다고 회상한다. 안동 석빙고(보물 제305호)는 은어를 저장하는 얼음창고였다. 안동 은어를 임금께 진상하기 위해 1737년(영조 13) 현감 이매신(李梅臣)이 예안면 서부동에 축조했다. 지금도 안동에서는 음력 섣달이면 낙동강에서 얼음을 채빙해 석빙고에 보관하는 장면이 시연된다.

  ◇안동석빙고는 진상품 은어 수송용 얼음 저장창고
 
지난해 7월 경북 봉화군 내성천 일원에서 열린 '봉화은어축제' 중 반도잡이 행사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내성천에서 은어를 잡고 있다. (사진= 봉화군 제공)
지난해 7월 경북 봉화군 내성천 일원에서 열린 '봉화은어축제' 중 반도잡이 행사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내성천에서 은어를 잡고 있다. (사진= 봉화군 제공)
조선 초 문신 김수온(金守溫 1409~1481)은 "은어 한 마리 값어치가 천금인데/정녕코 향기로운 물고기라 임금님께 바칠만하이"라고 노래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낚시바늘에 걸려든 은어 50마리를/강가 어부의 집에서 보내왔네./(중략)/앙상한 마른 폐가 참깨 마늘 냄새 맡으니/입가에서 흘러내린 군침을 자주 닦네"라며 선물 받은 귀한 은어에 대해 입맛을 다셨다.

 '속동문선(續東文選)'에서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은 "흰쌀이 처음 고소할 때 은어가 한창 맛있다"라며 벼 수확기인 가을이 가장 맛있는 제철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 주민들과 학자들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가을보다는 세찬 물살을 헤치고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봄철에 은어 맛이 제일 좋다고 입을 모은다.

 은어는 조선 왕실의 제사상에 올랐다. 제사 이외에도 왕실에서 식용으로 다량 사용하면서 지방에서 공물로 거둬들이거나 진상품으로 받아들였다. 은어가 특산물로 지정됐다는 것은 해마다 중앙에 정해진 양을 공물과 진상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물(貢物)은 중앙관서와 궁중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어려 군현에 부과해 바치게 하는 특산물로 일종의 현물세였다. 진상품(進上品)은 국가의 기념일과 경사 때 중앙과 지방의 책임자가 국왕에게 축하의 뜻으로 선물한 토산물이다. 따라서 법으로 정해 일반인들은 잡지 못하도록 전담관청을 두고 관리했다.

 왕실의 소비 규모가 커지면서 범위가 점차 확대된 진상은 일종의 공물 성격을 띤 세금으로 제도화 됐다. 각 주현(州縣)에서 모든 진상 물품을 분담하면서 여기에 관계되는 관리들의 협잡이 심해 백성들이 겪는 폐혜가 너무 컸다. 하지만 이를 감독하고 채집해서 한양까지 이송해야 했던 관리들의 고통도 백성들 못지않았다.

  ◇'은어 진상'에 시달린 곡성·남원 백성들 40~50% 도망

바다에서 은어가 회귀해 올라오는 길목인 울진군 왕피천에 은어 모형의 다리가 야간조명을 받으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2017.07.17 kjh9326@newsis.com
바다에서 은어가 회귀해 올라오는 길목인 울진군 왕피천에 은어 모형의 다리가 야간조명을 받으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2017.07.17 [email protected]
진상의 대상이 되는 은어 관련 품목이 대부분 부패하기 쉬워 까다로운 법칙이 뒤따랐다. 특히 일단 은어 진상 지역으로 나라의 장부에 오르면 그 지역에서 은어가 생산되든, 그렇지 않든 매년 때가 되면 반드시 은어를 구해 바쳐야 했다.

 조선 중기 대학자 조임도(趙任道 1585~1664)는 자신의 증조부가 30㎝ 크기의 생은어를 선물 받은 일화를 이렇게 기록했다. "단성(지금의 경남 산청) 군수가 은어 2마리를 보내왔다. 크기가 1자 남짓하고 얼음에 채워 말로 실어 온 것을 본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함께 바둑을 두던 심충혜(沈忠惠) 공이 임금께 진상하기를 바랐다.

 그러자 증조부는 '단성에서 이렇게 큰 은어가 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으니 이것은 우연이다. 지금 한번 진상하면 매년 바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면 단성의 백성들은 그 병폐를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이런 연유로 그 큰 은어는 진상되지 않았다.

 전라도로 암행어사를 떠났던 최창대(崔昌大 1669~1720)는 돌아와 임금께 이렇게 보고했다. "은어의 진상은 도의 여러 읍에 큰 폐단이 되고 있다. 옥과(지금의 전남 곡성)와 남원이 바로 그렇다. 강에서 은어가 나서 제공을 바쳐왔으나 세월이 흘러 내와 못이 변해 은어가 없어진지 수년이 됐다. 백성들은 양곡을 가지고 은어가 나는 하동, 진주에서 구해 와야 하는 실정이다. 두세 마리의 값이 500전이나 한다. 부역에 응하지 못하고 도망간 백성이 10명 중 4~5명이나 된다."

 순조 때 작성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당시 거래되던 물고기 가격이 기록돼 있다. 생 쏘가리 1냥2전, 은어 4전, 생조기 2전, 조기 1전6푼, 황석수어는 8푼이다. 은어는 생 쏘가리의 3분의 1 가격이지만 조기 보다는 2배 이상 비싸다. 그런데 진상을 위해 타 지역으로 구하러 다니던 은어 2~3마리의 가격이 500전이나 됐으니 가난한 백성들이 살 길은 도망 뿐 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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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7/07/17 07:00: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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