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사고 1년]비정규직부터 메피아까지…지워지지 않는 '그림자'

기사등록 2017/05/25 09:31:00

【서울=뉴시스】강지은 기자 = 2016년 5월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정비하던 꽃다운 청춘이 열차에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당시 만 19세인 김군의 가방에서 발견된 것은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이 '단출한' 유품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고질적인 병폐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김군은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용역업체인 ㈜은성PSD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당시 김군의 5월 급여지급명세서에서는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를 고스란히 읽게 했다.

 김군이 받는 급여 총액은 160만원, 이중 기본급이 130만원이었다. 나머지 30만원은 휴일수당, 식대, 연차수당 등으로 그마저도 일반적인 기준보다 크게 낮았다.

 휴일근무 수당은 6900원, 연차를 쓰지 않았을 때 받는 연차수당은 6만9000원에 불과했다. 월 식대는 9만원, 은성PSD 한달 평균 근무일수는 22일 정도로 하루 식비로 따지면 4000원을 조금 넘는 셈이다.

 김군의 업무시간은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였다. 출근 준비에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점심은 근무시간에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급여명세서만 보면 하루 4000원으로 점심과 저녁 두끼를 해결하라는 얘기다. 김군의 가방에서 컵라면이 나온 배경이다.

 구의역 사고는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와 하청업체인 은성PSD간 비리의 민낯도 낱낱이 드러냈다. 이들의 용역계약 이면에는 이른바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가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경영효율화의 일환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수많은 명예퇴직자들을 용역업체로 떠넘겼다. 특히 은성PSD 측에 일감을 주는 조건으로 퇴직자들을 정규직으로 우선 채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처럼 서울메트로 출신 퇴직자들이 '낙하산'처럼 용역업체로 옮겨갔지만 업무의 질이나 양은 은성PSD의 비정규직보다도 낮았다.

 김군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스크린도어 고장시 한시간내 출동해야 하는 격무에 시달리며 월급 140만원을 손에 쥐었을 때 퇴직자들은 관리업무 등 단순한 일을 하며 평균 연봉 5100만원을 받았다.

 안전불감증도 여전했다.  

 김군이 고장 신고를 받고 출동해 스크린도어를 정비중이었지만 서울메트로측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시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사실상 손을 놓고 방관한 것이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인 2인1조 근무수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심지어 구의역 사고 직후 서울메트로는 은성PSD에 직원들이 2인1조로 근무한 것처럼 기록하라고 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2인1조 근무수칙이 인력부족이라는 현장의 상황을 외면한 '탁상공론'이었다는 것이다.

 오는 28일은 '구의역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사고 직후 서울시는 사고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관련자를 문책하고 재발방지대책 등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박원순 시장은 "시민안전을 위협하는 특권과 관행을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구의역사고는 '현재 진행형'이다. 해결해야할 과제가 여전히 많고, 여전히 많은 '김군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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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7/05/25 09:31: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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