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5년 영조실록에 2남1녀 출산 기록
단양군, 29~30일 쌍둥이 힐링 페스티벌
【단양=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청도 단양군의 여인이 한꺼번에 2남1녀의 세쌍둥이를 낳았다.'
영조실록 41년(1765) 1월25일자에 실린 기사다.
세쌍둥이는 예나 지금이나 흔한 일은 아니다.
충주목사 이창재가 올린 첩정(牒呈·상급관아에 올리는 문서)에 따르면 "우리 고을 산척면 원서리에 사는 양인 맹원조의 처 박소사가 지난달 21일 한 태(胎)에 사내아이 세쌍둥이를 낳았다"라며 "사내아이 세쌍둥이를 낳은 일은 이상한 일이므로 연유를 올린다"고 밝혔다. 철종 3년(1852) 5월7일의 일이다.
더구나 단양에서처럼 남녀 세쌍둥이 출산은 극히 드물다.
세쌍둥이와 관련한 실록의 기록에는 대부분 아들 셋이거나 딸 셋이 대부분이다.
단양의 사례처럼 남녀 세쌍둥이 출산 기록은 명종 18년(1563) 경기도 삭녕과 현종 13년(1672) 경상도 하동, 숙종 20년(1694) 경상도 진주목, 영조 47년(1771) 평안도 개천군 정도다.
단양에서 세쌍둥이가 태어나 실록에까지 기록된 지 252년이 지난 올해 충북 단양군은 29~30일 '2회 쌍둥이 힐링 페스티벌'을 연다.
단양군이 지난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개최한 이 쌍둥이 축제는 중부내륙의 대표적인 관광도시 단양을 체류형 관광지로 활성화하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이는 3만 인구를 마지노선으로 인구 증가에 안간힘을 쓰는 단양군의 절박함도 담겨 있다.
단양군은 출산율을 높이고자 지난달 21일 제천단양축협과 출산축하후원금 지원 업무 협약을 했다.
단양군은 출생신고를 위해 해당 읍·면을 방문하는 군민에게 축협의 출산축하후원금 사업을 홍보하고, 제천단양축협은 자체 부담으로 출생아 명의의 예금통장 개설 때 출생아 1인당 5만원의 출산축하후원금과 내복 1벌을 지원한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출산장려정책이 있었다.
세종 8년(1426) 6월29일자 기사를 보면, 경상도 장기현 사람 구원길의 아내가 한 번에 세 아들을 낳자 쌀을 주도록 명했다.
성종 7년(1476) 11월18일자 기사에도, 경기의 금천에 사는 사노(私奴) 복만의 아내인 양녀(良女) 춘덕과 충청도 한산에 사는 선군(船軍) 최중의 아내인 양녀 귀비 등은 모두가 한꺼번에 아들 셋을 낳았으니 청하건대 전례에 의해 각각 쌀·콩 아울러 10석씩 내려 주게 해달라고 예조에서 아뢰니 성종이 그리하도록 했다.
명종 1년(1546) 2월에는 흉년이 들어 비축한 곡물이 거의 떨어졌으니 세쌍둥이와 네쌍둥이 출산 가정에 축하 곡식을 감량해 지급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보고에 명종은 쌀과 콩 10석을 준 전례(前例)에 따르도록 했다.
국고(國庫)가 넉넉하지 않아도 세쌍둥이 이상 낳은 가정에는 후한 정책을 썼다.
출산율 감소로 국가적·사회적 문제가 되는 지금처럼 조선시대 역시 인구가 늘어나면 나라의 힘이 커지고 살림도 늘어나는 것으로 여겨 세쌍둥이, 네쌍둥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곡식 등을 내려주며 축하했다.
[email protected]
단양군, 29~30일 쌍둥이 힐링 페스티벌
【단양=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청도 단양군의 여인이 한꺼번에 2남1녀의 세쌍둥이를 낳았다.'
영조실록 41년(1765) 1월25일자에 실린 기사다.
세쌍둥이는 예나 지금이나 흔한 일은 아니다.
충주목사 이창재가 올린 첩정(牒呈·상급관아에 올리는 문서)에 따르면 "우리 고을 산척면 원서리에 사는 양인 맹원조의 처 박소사가 지난달 21일 한 태(胎)에 사내아이 세쌍둥이를 낳았다"라며 "사내아이 세쌍둥이를 낳은 일은 이상한 일이므로 연유를 올린다"고 밝혔다. 철종 3년(1852) 5월7일의 일이다.
더구나 단양에서처럼 남녀 세쌍둥이 출산은 극히 드물다.
세쌍둥이와 관련한 실록의 기록에는 대부분 아들 셋이거나 딸 셋이 대부분이다.
단양의 사례처럼 남녀 세쌍둥이 출산 기록은 명종 18년(1563) 경기도 삭녕과 현종 13년(1672) 경상도 하동, 숙종 20년(1694) 경상도 진주목, 영조 47년(1771) 평안도 개천군 정도다.
단양에서 세쌍둥이가 태어나 실록에까지 기록된 지 252년이 지난 올해 충북 단양군은 29~30일 '2회 쌍둥이 힐링 페스티벌'을 연다.
단양군이 지난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개최한 이 쌍둥이 축제는 중부내륙의 대표적인 관광도시 단양을 체류형 관광지로 활성화하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이는 3만 인구를 마지노선으로 인구 증가에 안간힘을 쓰는 단양군의 절박함도 담겨 있다.
단양군은 출산율을 높이고자 지난달 21일 제천단양축협과 출산축하후원금 지원 업무 협약을 했다.
단양군은 출생신고를 위해 해당 읍·면을 방문하는 군민에게 축협의 출산축하후원금 사업을 홍보하고, 제천단양축협은 자체 부담으로 출생아 명의의 예금통장 개설 때 출생아 1인당 5만원의 출산축하후원금과 내복 1벌을 지원한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출산장려정책이 있었다.
세종 8년(1426) 6월29일자 기사를 보면, 경상도 장기현 사람 구원길의 아내가 한 번에 세 아들을 낳자 쌀을 주도록 명했다.
성종 7년(1476) 11월18일자 기사에도, 경기의 금천에 사는 사노(私奴) 복만의 아내인 양녀(良女) 춘덕과 충청도 한산에 사는 선군(船軍) 최중의 아내인 양녀 귀비 등은 모두가 한꺼번에 아들 셋을 낳았으니 청하건대 전례에 의해 각각 쌀·콩 아울러 10석씩 내려 주게 해달라고 예조에서 아뢰니 성종이 그리하도록 했다.
명종 1년(1546) 2월에는 흉년이 들어 비축한 곡물이 거의 떨어졌으니 세쌍둥이와 네쌍둥이 출산 가정에 축하 곡식을 감량해 지급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보고에 명종은 쌀과 콩 10석을 준 전례(前例)에 따르도록 했다.
국고(國庫)가 넉넉하지 않아도 세쌍둥이 이상 낳은 가정에는 후한 정책을 썼다.
출산율 감소로 국가적·사회적 문제가 되는 지금처럼 조선시대 역시 인구가 늘어나면 나라의 힘이 커지고 살림도 늘어나는 것으로 여겨 세쌍둥이, 네쌍둥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곡식 등을 내려주며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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