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윤다빈 기자 =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2012년 대선에서 48%의 득표율로 패배의 쓴맛을 봤던 문 후보가 '대권도전' 재수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역임한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11년 야권통합의 기치를 내건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로 합류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2012년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그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대선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를 이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양자대결을 펼쳤지만 3.6% 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문 후보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46일간 단식농성을 진행하자 10일간 동조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201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선거에서 박지원 의원과 맞붙어 3.5% 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그는 당대표로 치른 4·29 재보선에서 패배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후 안철수 의원에게 당 혁신위원장과 문·안·박 연대(문재인·안철수·박원순)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안 의원은 '친문패권주의'를 비판하며 새정치연합을 탈당했고 정치적 결별 수순을 밟았다.
이후 비문재인계 의원이 대거 탈당하며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로 접어들었다. 이때 문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멘토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대위원장에 앉히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문 후보는 또 김병관·김병기·김정우·박주민·문미옥·조응천·표창원 의원, 양향자 최고위원 등을 영입해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고, 이는 결국 적중했다.
문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반문정서'를 의식, "호남에서 지지를 못 받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그 결과 수도권 등에서 표심 결집을 이뤘으나 호남에서는 국민의당에 참패를 당했다. 이후 문 후보는 총선 당시 정계은퇴 선언에 대해 '전략적 발언이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친문재인' 인사를 대거 지도부에 당선시키며 대선으로 가는 비단길을 깔았다. 문 후보는 이날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자 수도권·강원·제주 선출대회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되며 본선 무대에 올랐다.
◇사법연수원 차석졸업…인권변호사 길 걸어
문 후보는 1953년 피란민 출신으로 경남 거제에서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계란행상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75년 4월 경희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유신반대 학내 시위를 주도한 후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후 복학해 사법시험 2차까지 치른 다음 79년 합격자발표를 앞두고 시위 참여를 이유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가 유치장에서 사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역임한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11년 야권통합의 기치를 내건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로 합류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2012년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그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대선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를 이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양자대결을 펼쳤지만 3.6% 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문 후보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46일간 단식농성을 진행하자 10일간 동조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201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선거에서 박지원 의원과 맞붙어 3.5% 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그는 당대표로 치른 4·29 재보선에서 패배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후 안철수 의원에게 당 혁신위원장과 문·안·박 연대(문재인·안철수·박원순)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안 의원은 '친문패권주의'를 비판하며 새정치연합을 탈당했고 정치적 결별 수순을 밟았다.
이후 비문재인계 의원이 대거 탈당하며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로 접어들었다. 이때 문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멘토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대위원장에 앉히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문 후보는 또 김병관·김병기·김정우·박주민·문미옥·조응천·표창원 의원, 양향자 최고위원 등을 영입해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고, 이는 결국 적중했다.
문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반문정서'를 의식, "호남에서 지지를 못 받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그 결과 수도권 등에서 표심 결집을 이뤘으나 호남에서는 국민의당에 참패를 당했다. 이후 문 후보는 총선 당시 정계은퇴 선언에 대해 '전략적 발언이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친문재인' 인사를 대거 지도부에 당선시키며 대선으로 가는 비단길을 깔았다. 문 후보는 이날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자 수도권·강원·제주 선출대회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되며 본선 무대에 올랐다.
◇사법연수원 차석졸업…인권변호사 길 걸어
문 후보는 1953년 피란민 출신으로 경남 거제에서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계란행상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75년 4월 경희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유신반대 학내 시위를 주도한 후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후 복학해 사법시험 2차까지 치른 다음 79년 합격자발표를 앞두고 시위 참여를 이유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가 유치장에서 사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문 후보는 사법연수원 차석졸업이라는 영광을 얻었지만 시위 전력 탓에 판사 임용의 꿈은 좌절됐고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그는 당시 국내 최대 대형로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뿌리치고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와 동업을 선택했다.
두 사람의 법률사무소는 부산은 물론 인근 울산·창원·거제 등 지역 노동인권사건을 총괄했다. 그는 자연스레 재야운동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됐고, 87년 부산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을 맡아 6월항쟁을 주도했다.
◇노무현의 친구…"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해"
노 전 대통령의 언급을 종합해보면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에게 '영원한 비서실장'이라기보다 '영원한 친구'에 가깝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부산선대위원장을 맡은 문 후보를 향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재직 초기 과로와 스트레스로 10개의 이가 빠져 임플란트를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후 문 후보는 민정수석을 사퇴하고 히말라야로 트래킹을 떠났지만 노 전 대통령 탄핵안 국회 통과 직후 대리인을 맡았다. 2007년 3월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맡아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한미 FTA 비준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서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비극의 순간에도 담담함을 잃지 않았던 모습은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를 정치권으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
문 후보는 2011년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말과 함께 정치에 입문했다.
◇이대문?(이대로면 대통령은 문재인)…'통합 리더십' 시험대
문 후보는 이날 후보수락 연설을 통해 "분열의 시대와 단호히 결별하고 정의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통합을 다짐했다.
그러나 문 후보에게는 늘 '분열'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2012년 대선에서 단일화를 했던 안철수 전 대표는 정당을 달리한 후 자신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됐다. 새정치연합 시절 박지원·김한길·주승용 등 20명에 이르는 의원이 '친문패권'을 지적하며 당을 떠나기도 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역시 문 후보와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 채 탈당,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두 사람의 법률사무소는 부산은 물론 인근 울산·창원·거제 등 지역 노동인권사건을 총괄했다. 그는 자연스레 재야운동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됐고, 87년 부산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을 맡아 6월항쟁을 주도했다.
◇노무현의 친구…"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해"
노 전 대통령의 언급을 종합해보면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에게 '영원한 비서실장'이라기보다 '영원한 친구'에 가깝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부산선대위원장을 맡은 문 후보를 향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재직 초기 과로와 스트레스로 10개의 이가 빠져 임플란트를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후 문 후보는 민정수석을 사퇴하고 히말라야로 트래킹을 떠났지만 노 전 대통령 탄핵안 국회 통과 직후 대리인을 맡았다. 2007년 3월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맡아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한미 FTA 비준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서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비극의 순간에도 담담함을 잃지 않았던 모습은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를 정치권으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
문 후보는 2011년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말과 함께 정치에 입문했다.
◇이대문?(이대로면 대통령은 문재인)…'통합 리더십' 시험대
문 후보는 이날 후보수락 연설을 통해 "분열의 시대와 단호히 결별하고 정의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통합을 다짐했다.
그러나 문 후보에게는 늘 '분열'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2012년 대선에서 단일화를 했던 안철수 전 대표는 정당을 달리한 후 자신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됐다. 새정치연합 시절 박지원·김한길·주승용 등 20명에 이르는 의원이 '친문패권'을 지적하며 당을 떠나기도 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역시 문 후보와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 채 탈당,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측근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문 후보는 변호사 출신답게 결정에 앞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성향이다. 이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평가로 이어지며 문 후보의 주요한 정치적 자산이 됐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스킨십이 부족하다', '포용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특히 문 후보가 주변 인사의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위에서는 서운하다는 평가가 종종 나오는 편이다.
이와관련 2012년부터 문 후보를 도운 싱크탱크 국민성장 소속의 한 교수는 "자주 만나는 사이인만큼 좀 친근하게 대해주면 좋겠는데 끝까지 그러지 않더라"며 "내가 나이도 어린데도 여전히 존댓말을 쓴다.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문 후보에 대한 주된 비판 중 하나는 '주어진 원고만 읽는다', '최측근의 결정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측근은 "실제로는 의사결정을 주도적으로 한다"며 "문 후보는 매일 오전 1~2시까지 정책 자료와 메시지를 검토하고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한다"고 반박했다.
문 후보는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 쉽게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편이다. 상대적으로 말실수가 적은 이유다. 다만 변호사 시절부터 서면 검토에 익숙해진만큼 원고 없이 연설이나 토론을 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당내 경쟁자와의 화합은 당면 과제다. 이번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충남지사는 "문 후보와 캠프의 태도는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떨어지게 하는지 아냐"며 감정의 골을 드러낸 바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문 후보를 향해 '친재벌 후보', '기득권 대연정'이라고 비판하는 등 대립각을 세웠다. 이들의 지지층을 껴안지 못할 경우 '대세론'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중도 낙마한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까지 포용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검증도 있다. 문 후보는 '검증이 끝난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들 준용 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채용 의혹 등으로 여전히 다른 정당의 타깃이 되고 있다. 측근의 잇따른 말실수와 배타적 태도 역시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제로 꼽힌다.
▲1953년 경남 거제 ▲부산남항초 ▲경남중·고 ▲경희대 법대 졸업 ▲1975년 학생운동으로 투옥, 서대문 구치소 수감 ▲육군 병장(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 만기 제대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 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법무법인 부산 설립 ▲노무현 대통령후보 부산 선거대책본부장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청와대 비서실장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18대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18대 대선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후보
[email protected]
그러나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스킨십이 부족하다', '포용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특히 문 후보가 주변 인사의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위에서는 서운하다는 평가가 종종 나오는 편이다.
이와관련 2012년부터 문 후보를 도운 싱크탱크 국민성장 소속의 한 교수는 "자주 만나는 사이인만큼 좀 친근하게 대해주면 좋겠는데 끝까지 그러지 않더라"며 "내가 나이도 어린데도 여전히 존댓말을 쓴다.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문 후보에 대한 주된 비판 중 하나는 '주어진 원고만 읽는다', '최측근의 결정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측근은 "실제로는 의사결정을 주도적으로 한다"며 "문 후보는 매일 오전 1~2시까지 정책 자료와 메시지를 검토하고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한다"고 반박했다.
문 후보는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 쉽게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편이다. 상대적으로 말실수가 적은 이유다. 다만 변호사 시절부터 서면 검토에 익숙해진만큼 원고 없이 연설이나 토론을 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당내 경쟁자와의 화합은 당면 과제다. 이번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충남지사는 "문 후보와 캠프의 태도는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떨어지게 하는지 아냐"며 감정의 골을 드러낸 바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문 후보를 향해 '친재벌 후보', '기득권 대연정'이라고 비판하는 등 대립각을 세웠다. 이들의 지지층을 껴안지 못할 경우 '대세론'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중도 낙마한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까지 포용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검증도 있다. 문 후보는 '검증이 끝난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들 준용 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채용 의혹 등으로 여전히 다른 정당의 타깃이 되고 있다. 측근의 잇따른 말실수와 배타적 태도 역시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제로 꼽힌다.
▲1953년 경남 거제 ▲부산남항초 ▲경남중·고 ▲경희대 법대 졸업 ▲1975년 학생운동으로 투옥, 서대문 구치소 수감 ▲육군 병장(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 만기 제대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 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법무법인 부산 설립 ▲노무현 대통령후보 부산 선거대책본부장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청와대 비서실장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18대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18대 대선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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