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초대석] 원로 연출가 임영웅 "연극은 시대의 거울…배우들 사랑해야"

기사등록 2017/01/02 08:37:07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극단 '산울림' 임영웅 예술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12.28.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극단 '산울림' 임영웅 예술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12.2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연극을 하면서 훈장을 받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받으리라는 생각도 안 했고요. 연극은 훈장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를 테면 전쟁에 나가서 큰 공을 세워야 훈장을 받는 거잖아요."

 '연극 외길 인생 60년'을 뚜벅뚜벅 걸어온 원로 연출가 임영웅(80) 극단 산울림 대표가 묵직하게 말했다.     

 지난해 말 훈장을 받으러 가기 전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는 그는 "그전의 상들은 잘하라고 주는 것이라 받았지만 훈장은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만 알았다"며 내내 겸양의 미덕을 보였다.  

 연극 토양이 척박한 한국에서 연극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 아니냐고 하자 "그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직후에는 특히 배우들이 먹을 것이 없어 힘도 내기 어려웠어요. 이후로도 연극은 항상 힘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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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극단 '산울림' 임영웅 예술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12.28.  [email protected]
 임 대표는 1955년 '사육신' 연출로 데뷔했다. 이후 각종 연극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한국 연극의 위상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았다. 덕분에 지난해 말 금관훈장(1등급)을 수훈했다. 살아생전 이 훈장을 받는 이는 드물다.

 방송국 PD와 신문기자 생활도 한 임 대표가 연출로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한 대표작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다. 1969년 이 연극의 국내 초연을 맡은 뒤 수차례 무대에 올렸다.

 그는 이 난해한 부조리극에 대해 "시대의 거울"이라고 했다. 아주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아주 잘 그린 작품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임 대표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렵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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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극단 '산울림' 임영웅 예술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2.28.  [email protected]
 "연극은 사람 사는 이야기에요. 그러니 '고도를 기다리며'를 어려운 작품이라고 생각을 안했죠. 굳이 이야기한다면 좀 특출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까요? 세상을 살다보면 실제로도 별난 사람들이 있잖아요? 허허."

 '연극계 거목' 으로 불리는 그는 "여전히 연극을 통해 배운다"고 했다. "연극은 예술 중에서 제일 인간의 삶과 가까이에 있어요. 연극 자체가 무대 위에서, 사람의 인생살이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사람의 성격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니 연극도 매번 다를 수밖에 없죠. 그러니 계속 배우는 수밖에요."

 1985년 홍대 앞 자택을 허물고 세운 산울림 소극장 건물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지만 지하 1층 극장은 여전히 그대로다. 극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 벽은 이 극장을 거친 수많은 배우들의 얼굴로 장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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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극단 '산울림' 임영웅 예술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 무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2.28.  [email protected]
 손숙, 정동환, 윤석화, 이호성, 안석환, 한명구, 배종옥 등과 작업한 임 대표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로 '호랑이 선생'으로 유명했다. 이 벽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던 임 대표는 "뒷사람들 모두 나를 싫어할 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임 대표와 한번 작업한 배우들은 그와 인연의 끈을 절대 놓지 않고 있다. 윤석화 등은 공개석상에서 임 대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배우들이 물론 연습할 때는 속상한 것이 있을 거예요. 그래도 막을 올리고 공연이 끝나고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죠. 연극은 협업의 예술인만큼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다 같이 훈련이 돼 있어야 해요. 연극이라는 작업은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전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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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극단 '산울림' 임영웅 예술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 무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2.28.  [email protected]
 배우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그가 제대로 챙겨먹지도 못한 가난한 시절에도, 간식에 일체 입을 대지 않았던 것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여전히 힘들게 연극을 하고 있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청하자 거듭 "배우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연극할 때는 먹을 게 귀했어요. 그래도 어쩌다 누군가 먹을 걸 가져오면 절대 먹지 않았죠. 스태프들도 못 먹게 했죠. 배우들이 먹어야 힘을 쓰니까. 그런 배려 때문에 그렇게 혼을 내도 배우들이 미워하지 않나 봐요. 허허."  

 원로 연출가는 60여년동안 '가난한 연극쟁이'로 살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연극 연습하고 공연할 때는 행복하다"고 활짝 웃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어서인지 한 번도 고통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연극을 하고 있을 때 살아 있는 걸 느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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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초대석] 원로 연출가 임영웅 "연극은 시대의 거울…배우들 사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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