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질서(秩序)’가 유행어가 됐다. 또 다른 유행어 ‘엄중(嚴重)’과 쌍벽을 이루며 대한민국을 흘렀다.
등급이나 유별(categorization)이라는 뜻도 있지만, 지켜야 할 도리로 간주되는 차례나 절차(order)로 더 많이 쓰는 단어가 ‘질서’다. 하늘의 ‘질서’로 선택된 삼위태백에서 하늘의 이치를 심고 깨달아가야 하는 집단이 바로 배달민족이라는 대종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질서’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겠다.
최순실의 존재가 들통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지원 의원이 “질서 있는 퇴진”을 주문했다. 시끌시끌 여러 명이 몰린 상황이 아니니, 한 사람을 보고 질서 있게 퇴진하라는 요구는 ‘법 질서에 맞는 퇴진’을 의미한다.
‘秩’자는 곡식을 나타내는 ‘禾’(벼 화)와 ‘失’(잃을허물 실)자로 구성돼 있다. 벼의 허물은 알갱이를 털어내고 남은 볏짚이다. 秩은 모양이 바뀐 나중의 글자체다. 변하기 전 본래 글자는 ‘豊(풍)’과 ‘弟(제)’의 합침인 ‘豊+弟’다. 풍년(豊)이 들어 순서(弟)대로 차곡차곡 볏짚을 쌓는 모습에서 ‘순서, 차례’를 가리키게 됐다.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소장은 “차례, 순서를 뜻하는 질서의 출전은 중국에서 가장 이른 시문선집인 ‘문선’이다. 남조 양나라 태자 소통(501~531)이 진·한나라 이후 제나라와 양나라의 대표적인 시문들을 모아 엮은 책인데 서진의 저명한 문학가 육기(261~303)가 지은 ‘문부(文賦)’에 질서라는 말이 보인다”고 밝혔다.
박 소장은 “육기는 문장을 지을 때 말의 아름다움과 조화, 음운의 규율 등을 강조하면서 ‘如失機而后會, 操末以續, 謬玄黃之秩序, 故而不鮮’라고 말했다. 축자식 단순 풀이를 하면 ‘가령 기회를 놓친 후에 모인다면, 늘 끝에 닥쳐서 계승함이 거꾸로 돼, 현황(玄黃; 하늘과 땅)의 질서가 뒤바뀌는 고로, 때가 끼어 더러워져 선명하지 못하게 된다’다. 의역하면 ‘말의 음운이 원칙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마치 오색의 수(繡)를 종류별로 순서를 정할 때 천지 색의 순서가 어긋나 색채에 때가 끼어 선명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문의가 선명치 않게 된다’다”라고 설명했다.
법질서에 맞게 깨끗하게 물러나야 어지럽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선 정조 때 최현중의 상소에도 질서가 나온다. “기강을 세워 퇴폐한 풍속을 격려함은 곧 전하의 초기의 정사였으나 단속할 사람이 없어 법금(法禁)은 땅을 쓴 듯이 없어졌으며, 수령의 출척(黜陟)은 혹 친소에 따라 움직이고 묘당에는 뇌물이 먼저 행해져서 지위와 봉록의 고하는 거의 체통이 없어졌으며, 진신(搢紳) 사이에 해학이 풍속을 이루고 궁정의 표석(標石)은 조정 의식(儀式)이 질서를 잃은 것을 바로 잡지 못하고, 궁궐 문의 방수(防守)는 소원하는 백성이 제멋대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며, 규찰은 폐단을 끼칠까 지나치게 우려해 법부(法府)는 드디어 쓸모 없는 관사가 됐고, 교만하고 완고함은 은혜를 믿는 데에서 쉽게 생기고, 소민(小民)은 도리어 관장(官長)을 업신여기니, 전하의 기강이 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데자뷔다.
생전의 법정 스님도 질서를 일렀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 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역시 박지원 의원의 표현인데,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죽어야 생물이다.
작금의 소설 같은 시국은 질서 소설로 옮겨질 수도 있다. 작가 복거일씨에게 문학이란 “사람의 혼란스러운 경험들에서 질서를 찾아내서 그런 질서들을 되도록 높은 차원의 지식들로 다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질서 있는 퇴진’의 작자 박지원 의원이 5일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직에서 질서 있게 퇴진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질서의 반대말은 혼돈일 수도, 자유일 수도, 탄핵일 수도 있다. 질서 없이 여럿이 어지럽게 어울리는 아사리판(阿闍梨判)이 새로운 질서를 낳으려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등급이나 유별(categorization)이라는 뜻도 있지만, 지켜야 할 도리로 간주되는 차례나 절차(order)로 더 많이 쓰는 단어가 ‘질서’다. 하늘의 ‘질서’로 선택된 삼위태백에서 하늘의 이치를 심고 깨달아가야 하는 집단이 바로 배달민족이라는 대종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질서’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겠다.
최순실의 존재가 들통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지원 의원이 “질서 있는 퇴진”을 주문했다. 시끌시끌 여러 명이 몰린 상황이 아니니, 한 사람을 보고 질서 있게 퇴진하라는 요구는 ‘법 질서에 맞는 퇴진’을 의미한다.
‘秩’자는 곡식을 나타내는 ‘禾’(벼 화)와 ‘失’(잃을허물 실)자로 구성돼 있다. 벼의 허물은 알갱이를 털어내고 남은 볏짚이다. 秩은 모양이 바뀐 나중의 글자체다. 변하기 전 본래 글자는 ‘豊(풍)’과 ‘弟(제)’의 합침인 ‘豊+弟’다. 풍년(豊)이 들어 순서(弟)대로 차곡차곡 볏짚을 쌓는 모습에서 ‘순서, 차례’를 가리키게 됐다.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소장은 “차례, 순서를 뜻하는 질서의 출전은 중국에서 가장 이른 시문선집인 ‘문선’이다. 남조 양나라 태자 소통(501~531)이 진·한나라 이후 제나라와 양나라의 대표적인 시문들을 모아 엮은 책인데 서진의 저명한 문학가 육기(261~303)가 지은 ‘문부(文賦)’에 질서라는 말이 보인다”고 밝혔다.
박 소장은 “육기는 문장을 지을 때 말의 아름다움과 조화, 음운의 규율 등을 강조하면서 ‘如失機而后會, 操末以續, 謬玄黃之秩序, 故而不鮮’라고 말했다. 축자식 단순 풀이를 하면 ‘가령 기회를 놓친 후에 모인다면, 늘 끝에 닥쳐서 계승함이 거꾸로 돼, 현황(玄黃; 하늘과 땅)의 질서가 뒤바뀌는 고로, 때가 끼어 더러워져 선명하지 못하게 된다’다. 의역하면 ‘말의 음운이 원칙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마치 오색의 수(繡)를 종류별로 순서를 정할 때 천지 색의 순서가 어긋나 색채에 때가 끼어 선명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문의가 선명치 않게 된다’다”라고 설명했다.
법질서에 맞게 깨끗하게 물러나야 어지럽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선 정조 때 최현중의 상소에도 질서가 나온다. “기강을 세워 퇴폐한 풍속을 격려함은 곧 전하의 초기의 정사였으나 단속할 사람이 없어 법금(法禁)은 땅을 쓴 듯이 없어졌으며, 수령의 출척(黜陟)은 혹 친소에 따라 움직이고 묘당에는 뇌물이 먼저 행해져서 지위와 봉록의 고하는 거의 체통이 없어졌으며, 진신(搢紳) 사이에 해학이 풍속을 이루고 궁정의 표석(標石)은 조정 의식(儀式)이 질서를 잃은 것을 바로 잡지 못하고, 궁궐 문의 방수(防守)는 소원하는 백성이 제멋대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며, 규찰은 폐단을 끼칠까 지나치게 우려해 법부(法府)는 드디어 쓸모 없는 관사가 됐고, 교만하고 완고함은 은혜를 믿는 데에서 쉽게 생기고, 소민(小民)은 도리어 관장(官長)을 업신여기니, 전하의 기강이 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데자뷔다.
생전의 법정 스님도 질서를 일렀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 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역시 박지원 의원의 표현인데,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죽어야 생물이다.
작금의 소설 같은 시국은 질서 소설로 옮겨질 수도 있다. 작가 복거일씨에게 문학이란 “사람의 혼란스러운 경험들에서 질서를 찾아내서 그런 질서들을 되도록 높은 차원의 지식들로 다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질서 있는 퇴진’의 작자 박지원 의원이 5일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직에서 질서 있게 퇴진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질서의 반대말은 혼돈일 수도, 자유일 수도, 탄핵일 수도 있다. 질서 없이 여럿이 어지럽게 어울리는 아사리판(阿闍梨判)이 새로운 질서를 낳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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