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 유적, 금관가야 왕궁터?…발굴 중간결산

기사등록 2016/11/22 16:08:56

최종수정 2016/12/28 17:57:53

【서울=뉴시스】김해 봉황동 유적 주변 성곽(봉황토성-고읍성-조선읍성)
【서울=뉴시스】김해 봉황동 유적 주변 성곽(봉황토성-고읍성-조선읍성)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 312 회현동 주민센터 앞 발굴조사 결과가 공개된다.

 금관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 북동쪽 평탄면 일대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올해 발굴조사 성과를 밝히고 조사방향을 검토하는 전문가 자문회의를 23일 오전 10시, 주민 현장설명회를 오후 2시에 연다.  

 금관가야는 가락국이라고도 한다. 서기 전후부터 532년까지 김해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친 6가야 중 하나다. 금관가야와 가락국의 추정 왕궁지로 주목받아 온 김해 봉황동 유적은 1907년 일본인이 ‘회현리 패총’을 발견해 조사한 이래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조사가 이뤄졌다. 그동안 60여차례 시·발굴 조사를 했다. 대부분 도로공사 구간, 단독주택 건축용지 등에 대한 소규모 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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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북동쪽에서 바라본 조사구역
 하지만 지난해 9월 시작한 이번 조사는 금관가야의 중심지로 추정된 곳에서 비교적 넓은 대지(5000㎡)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발굴조사여서 의미가 있다.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문화층이 확인됐다. 많은 수혈(竪穴), 즉 구덩이와 주거로 추정되는 생활의 흔적들도 확인됐다. 삼국 시대 문화층에서는 봉황대 구릉에서부터 지형을 따라 흐른 것으로 추정되는 물에 의한 두꺼운 퇴적층이 확인됐다. 경사가 낮은 동쪽으로는 켜켜이 퇴적된 모래층이 넓게 형성돼 있었다.

 옹(甕), 사발(碗), 시루 등 생활 용기의 토기류가 많이 확인됐다. 고배(高杯 굽다리접시), 기대(器臺 그릇받침대), 파수부대부완(把手附臺附碗 손잡이가 달린 굽다리바리), 차륜형 토기 등 삼국 시대 고분에서 주로 보이는 유물들도 다량 수습됐다. 차륜형토기(車輪形土器)는 수레바퀴형 토기라고 하며, 고분에 부장되는 명기다. 신라가야 지역에서 일부 확인되는 이형(異形) 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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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사갱2(남편 구역) 수성퇴적층(모래층-사진 위쪽) 평면 양상
 또 토우(土偶), 방추차(紡錘車 가락바퀴) 등 토제품뿐 아니라 곡옥, 유리구슬 등 옥석류 장신구도 확인됐다. 골제 도자병부(骨製 刀子柄附 뼈로 만든 손칼 손잡이) 등 골각기(骨角器)를 비롯해 상어, 고래, 강치 등 바다 동물의 뼈와 사슴, 돼지 등 육지 동물의 뼈 등 동물유체도 다수 수습됐다.

 왕궁터로 상정할 만한 유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야 토기류와 신라계 토기류가 혼재돼 있고, 차륜형토기나 장신구류와 같이 권위 있는 계층이 쓰던 유물이 나오는 등 출토 유물의 양상과 토기의 질로 미뤄 보아 이곳이 금관가야의 주요 생활 터전이었고, 금관가야가 쇠퇴한 후에도 유력한 집단이 생활했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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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삼국시대 퇴적층과 추정 주거지 바닥면
 김삼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은 “김해 지역은 신라 시대에도 ‘금관경(김해경)’으로 5소경에 포함된 지방의 중심도시였다. 봉황동 유적이 고읍성(통일신라~고려 시대) 내부에 있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지역이 고대부터 중심지 구실을 해 왔다는 것은 문헌과 여타 고고 자료를 통해서도 증명된 바 있다. 현재까지는 일부만 조사돼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정밀 발굴조사를 통해 이 유적이 왕궁터인지를 확인하고, 성격구조 등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5소경(五小京)은 신라가 삼국 통일 후 전국 통치체제인 ‘9주5소경(九州五小京)’으로 전국을 9개 주로 나누고 작은 수도인 소경을 둬 수도가 동남쪽에 치우친 한계를 극복하고자 만든 제도다. 동(김해 금관경) 서(청주 서원경) 남(전주 남원경) 북(원주 북원경) 중앙(충주 중원경)으로 설치했다. 지방의 피정복민을 회유하고 통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 가운데 김해 금관경(문무왕 20·680년)은 이후 김해경(경덕왕 16·757년)으로 개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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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삼국시대 문화층 상부층 출토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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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황동 유적, 금관가야 왕궁터?…발굴 중간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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