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문화人-⑥]'그녀는 프로다'…'책방'주인된 최인아 前제일기획 부사장

기사등록 2016/10/09 09:00:00

최종수정 2016/12/28 17:45:00

【서울=뉴시스】박정규 기자 = 국내 광고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제일기획에서 잘나가는 카피라이터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부사장까지 올랐다 스스로 내려왔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등의 명카피를 지은 '광고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29년간 '광고쟁이'로 명성을 떨친 그녀가 책방 주인이 됐다.

 인터넷 발달로 종이책을 읽지 않는 시대, 서점들은 고사직전이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 임원 출신의 변신이 화제다.

  "책방과 광고일은 그리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면 똑같은 일이죠."

  서울 강남 선릉에 '책방'을 낸 최인아(55)대표는 세간의 관심과 달리 차분했다. "29년 광고쟁이 시절을 버티게 해준 것은 책의 힘이었다"며 "무모한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고 했다.

 '책방'은 자리 잡고 있는 곳부터 색달랐다. 초고층 빌딩과 사무실들이 즐비한 강남 한복판에 있다. 선릉역 7번 출구를 나서서 100m 정도 가다보면 눈에 띄는 붉은 벽돌에 '생각의 숲'을 만들었다.

 건물 주인집으로 들어갈 법한 옆 마당으로 들어가 4층으로 올라가니 큰 거실 같기도 하고, 서재 같기도 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한쪽에는 커피와 차를 사서 마실 수 있는 바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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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헌 디트라이브 대표와 함께 차린 ‘최인아 책방’은 작은 휴식 공간 같은 책방을 표방한다.

 베스트셀러가 즐비한 일반 서점과 달리 책방 중앙 탁자에는 '무슨 일을 하든 글쓰기가 중요하다', '쟁이들은 어떤 책을 사랑하는가' 등으로 분류된, 사장님이 특별히 추천하는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책을 찾기 쉽게 제목별로 분류해놓은 책장도 있다. 하지만 한쪽 벽면 책장을 보니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인 그대에게', '우리 사회가 나아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마흔 살 들에게',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등으로 책을 분류한 문구가 방문한 이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낸다.서가의 3분의 1은 지인 140명에게 추천을 받은 책이 채워졌다.

 책을 펼쳐보면 최 대표의 지인 등이 저마다 책에 대한 생각을 써놓은 추천카드들이 눈에 띈다. 써준 사람들만 해도 16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 직장인 제일기획 사람들을 비롯해 광고주, 그 외의 다른 지인 등 다양한 이들이 친절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에 대해 안내하는 문구를 써줬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책방이다보니 마치 서재에 들어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바로 그것이 저희가 의도한 것이죠. 누구의 서재가 거리로 나온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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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대표는 "저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로망"이라며 책장에 기대어 있는 사다리를 가리켰다. 높은 책장의 책을 꺼내기 위해 타고 올라가는 사다리다. "사실 수백만원이 들었다"고 말하는데 '생각의 사다리'같아 보이는 최대표의 자랑같았다.

 잘 나가는 광고기획 전문가에서 책방 주인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물었다.

 "퇴직을 먼저 했고 그만두고 싶어 퇴직한 것이지, 책방을 열기 위해 퇴직한 것은 아니다"

 거창한 개념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 밖 대답, 의외였다.

 삼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첫 여성 부사장을 지낸 최 대표가 제일기획을 그만둔 것은 2012년. 책방 공동대표인 정치헌 디트라이브 대표도 제일기획 후배다.

 최 대표는 그곳에서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광고를 비롯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안 할 자유' 등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명 카피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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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40대 중반부터 은퇴를 염두에 두고 있던 중 '이제 할 만큼 했다.'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 젊음을 바친 회사를 나오면서 후회는 없었다. 이후 광고회사 창업 등 여러 할 일을 놓고 고민하던 중 '책을 읽게 하는 방법'이라는 프로젝트를 받게 됐다. 이를 놓고 지인들과 논의하던 차에 '우리가 직접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모두 다 동의하면서 책방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평생 누군가를 대행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직접 해보자는 것"이었다.

 최 대표는 "막연하게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며 "평소 다독가는 아니지만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에 책을 붙들고 있을 때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책방 운영도 광고일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광고가 기업 입장에서는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거나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을 통해 해법을 찾는 일이듯이 책방도 별반 다르지 않죠. 우리 책방의 승부수는 기획력이고 그래서 모토를 '생각의 숲'으로 정했습니다." '시옷(∧)'자 세 개로 된 책방 로고도 이러한 '생각의 숲'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책을 잘 사서 보지 않는 우리나라 문화 속에서 그의 고민도 다른 서점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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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대표는 "손님들이 책을 더 사시면 좋겠다. 읽고만 가는 분들도 꽤 있다"며 "동네 주민분들도 '옷은 서너 시간씩 입다만 가지 않으면서 책은 왜 서너 시간씩 보다가만 가느냐'고 걱정해주시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카페를 겸하는 것에 더해 강연과 옥상 공간을 이용한 '루프톱파티' 등을 기획하고 있다. 책방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달에 자신을 비롯해 광고계 인사들이 돌아가며 강연하는 행사를 열었고 이달에는 '조현영 피아니스트와 함께 하는 최인아책방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클래식 연주자들이 등장하는 콘서트도 연다.

 결국 책방도 책이 팔려야 산다. 느긋해 보이는 최 대표가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다들 (책을)사셔야죠. 안 그래도 '좀 사시라'는 뜻에서 (책방에 대한 소갯말 등을)써놨는데 앞으로 더 뭣하면 직접적으로 '좀 사세요'라고 얘기하려고요~" 

 '아는 것이 힘인 시대로부터 생각이 힘인 시대'가 됐다. 올 가을, '책 냄새'나는 '책방'의 '생각의 숲'을 거닐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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