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 교수들 자존심이 유독 강한 서울대가 잊을만 하면 수의대에서 대형 논문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곤혹감에 휩싸여 있다.
서울대 수의대는 2005년 당시 전국을 뒤흔들었던 황우석 사태와 2012년 강수경 교수 논문 조작 사건의 진원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또 국민들을 엄청난 충격과 분노에 빠뜨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수의대 조모 교수가 살균제 제조사 측 돈을 받고 실험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연구 윤리를 엄정하게 지키며 학자로서의 양심을 고수해야 할 교수들이 돈과 명예욕에 매몰돼 추락하는 사건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지만 수의대에서 왜 자꾸 비슷한 조작 사건이 잇따르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대형 논문 조작 사건 반복되는 수의대
서울대 수의대 조모 교수는 지난 7일 검찰에 긴급 체포돼 다음날 결국 구속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최대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측으로부터 거액을 받고 옥시 측에 유리한 실험 보고서를 쓴 혐의를 받고 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하자 옥시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조 교수에게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조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내용이 담긴 실험 보고서를 옥시 측에 건넸다. 이 과정에서 조 교수는 용역비(2억5000만원)와 함께 1200만원을 개인 계좌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수의대는 '줄기세포'를 소재로 한 황우석 교수와 강수경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으로 엄청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황 전 교수는 2004~2005년 신체 모든 조직으로 분화가 가능한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국제과학전문지 사이언스지에 발표하며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영웅이 됐다. 그러나 황 박사가 발표한 논문 핵심 내용의 상당수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 심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2013년에는 줄기세포 논문 17편을 조작한 혐의로 강 교수가 해임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2의 황우석 사태'로 불렸던 강 교수의 논문 조작은 '강 교수가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진 조작이 의심된다'는 익명의 제보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강 교수는 원본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 하면서도 해임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호제훈)는 올해 초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판결문 내용은 비단 강 교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서울대 논문 조작 사건 전반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집약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내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서울대에서 학생지도와 연구를 하는 교수이자 과학자로 논문작성 과정에서 과학적 진실성을 추구해야 함에도 연구부정행위로 본질적이고 중요한 연구윤리를 위반했다"며 "엄한 징계를 하지 않는다면 '연구부정행위 추방 및 연구윤리 재정립'이라는 공익을 달성하기 어렵고 한국 과학자나 서울대에 대한 국민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학논문의 데이터 진실성은 외부에서 검증하기 쉽지 않아 데이터 자체가 조작된 경우 사실임을 전제로 하는 다른 과학자들의 후속 연구가 무산되는 등 과학계 전체가 큰 피해를 입는다"고 지적했다. 황우석, 강수경, 조모 교수 모두에게 해당하는 준엄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 잘못된 관행 탓…땅에 떨어진 신뢰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굵직한 보고서 조작 사건이 유독 몰리면서 서울대 수의대의 명예와 신뢰도는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대해 일부 서울대 교수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온 수의대의 부적절한 관행이 일련의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연구윤리가 철저하게 요구되지 않던 시절에는 교수들이 자본이나 권력의 주문을 그대로 이행하는 데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출셋길로 여기곤 했는데, 특히 외부 프로젝트 연구가 많았던 수의대가 이런 유혹에 더욱 노출돼 있었다는 시각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예가 바로 황우석 사태다. 대통령 업적 차원에서 '줄기세포'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정부의 입장과 연구비 지원, 여기에 학자의 야심이 맞물리면서 논문 조작의 유혹에 깊이 빠졌다는 것이다.
서울대 수의학과 관계자는 "광우병 사태 때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학문적 소신으로 정부를 꾸짖는 교수보다는 정부의 한미FTA 관점에 편승해 정부 논리를 옹호했던 사람들이 잘 풀렸다"고 말했다.
단기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논문 조작을 부추기고 있다. 수의대는 연구 성과가 주요 실적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단과대학으로 꼽힌다. 권위 있는 학술지 게재와 함께 외부 프로젝트 유치 성과 등이 교수의 평판과 승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서울대 교수로서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인정욕구, 금전적 유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데 수의대가 상대적으로 비주류에 속한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런 논문 조작 사태가 비단 수의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11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 대학이 학문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일 년 단위의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며 "주어지는 성과급에 따라 교수들의 수입도 갈리게 된다"고 말했다.
논문 편수 등에 따라 여러 혜택이 달라져 유혹에 휩쓸리는 교수들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 교수는 "긴 호흡으로 학문을 바라보고 연구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단기적으로만 성과를 평가하는 세태가 연구의 부정행위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시적인 결과만 따지는 풍토가 유지되는 한 이러한 (논문 조작) 사태가 줄지는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번에 구속된 조 교수의 보고서 조작 사태로 서울대 수의대 내부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교수 개개인의 일탈로만 간주하며 안일하게 대처했던 기존 반응과 달리 이제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연구 윤리에 대한 진지한 의식을 되살려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다.
황우석 사태 이후 2006년부터 운영 중인 '연구진실성위원회'에 대해서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방안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수의대 관계자는 "교수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내부에서도 수의학과 자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번 상황이 마무리되면 본격적으로 왜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는지 원인과 대응책을 논의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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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수의대는 2005년 당시 전국을 뒤흔들었던 황우석 사태와 2012년 강수경 교수 논문 조작 사건의 진원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또 국민들을 엄청난 충격과 분노에 빠뜨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수의대 조모 교수가 살균제 제조사 측 돈을 받고 실험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연구 윤리를 엄정하게 지키며 학자로서의 양심을 고수해야 할 교수들이 돈과 명예욕에 매몰돼 추락하는 사건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지만 수의대에서 왜 자꾸 비슷한 조작 사건이 잇따르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대형 논문 조작 사건 반복되는 수의대
서울대 수의대 조모 교수는 지난 7일 검찰에 긴급 체포돼 다음날 결국 구속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최대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측으로부터 거액을 받고 옥시 측에 유리한 실험 보고서를 쓴 혐의를 받고 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하자 옥시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조 교수에게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조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내용이 담긴 실험 보고서를 옥시 측에 건넸다. 이 과정에서 조 교수는 용역비(2억5000만원)와 함께 1200만원을 개인 계좌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수의대는 '줄기세포'를 소재로 한 황우석 교수와 강수경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으로 엄청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황 전 교수는 2004~2005년 신체 모든 조직으로 분화가 가능한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국제과학전문지 사이언스지에 발표하며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영웅이 됐다. 그러나 황 박사가 발표한 논문 핵심 내용의 상당수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 심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2013년에는 줄기세포 논문 17편을 조작한 혐의로 강 교수가 해임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2의 황우석 사태'로 불렸던 강 교수의 논문 조작은 '강 교수가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진 조작이 의심된다'는 익명의 제보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강 교수는 원본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 하면서도 해임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호제훈)는 올해 초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판결문 내용은 비단 강 교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서울대 논문 조작 사건 전반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집약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내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서울대에서 학생지도와 연구를 하는 교수이자 과학자로 논문작성 과정에서 과학적 진실성을 추구해야 함에도 연구부정행위로 본질적이고 중요한 연구윤리를 위반했다"며 "엄한 징계를 하지 않는다면 '연구부정행위 추방 및 연구윤리 재정립'이라는 공익을 달성하기 어렵고 한국 과학자나 서울대에 대한 국민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학논문의 데이터 진실성은 외부에서 검증하기 쉽지 않아 데이터 자체가 조작된 경우 사실임을 전제로 하는 다른 과학자들의 후속 연구가 무산되는 등 과학계 전체가 큰 피해를 입는다"고 지적했다. 황우석, 강수경, 조모 교수 모두에게 해당하는 준엄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 잘못된 관행 탓…땅에 떨어진 신뢰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굵직한 보고서 조작 사건이 유독 몰리면서 서울대 수의대의 명예와 신뢰도는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대해 일부 서울대 교수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온 수의대의 부적절한 관행이 일련의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연구윤리가 철저하게 요구되지 않던 시절에는 교수들이 자본이나 권력의 주문을 그대로 이행하는 데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출셋길로 여기곤 했는데, 특히 외부 프로젝트 연구가 많았던 수의대가 이런 유혹에 더욱 노출돼 있었다는 시각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예가 바로 황우석 사태다. 대통령 업적 차원에서 '줄기세포'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정부의 입장과 연구비 지원, 여기에 학자의 야심이 맞물리면서 논문 조작의 유혹에 깊이 빠졌다는 것이다.
서울대 수의학과 관계자는 "광우병 사태 때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학문적 소신으로 정부를 꾸짖는 교수보다는 정부의 한미FTA 관점에 편승해 정부 논리를 옹호했던 사람들이 잘 풀렸다"고 말했다.
단기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논문 조작을 부추기고 있다. 수의대는 연구 성과가 주요 실적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단과대학으로 꼽힌다. 권위 있는 학술지 게재와 함께 외부 프로젝트 유치 성과 등이 교수의 평판과 승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서울대 교수로서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인정욕구, 금전적 유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데 수의대가 상대적으로 비주류에 속한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런 논문 조작 사태가 비단 수의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11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 대학이 학문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일 년 단위의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며 "주어지는 성과급에 따라 교수들의 수입도 갈리게 된다"고 말했다.
논문 편수 등에 따라 여러 혜택이 달라져 유혹에 휩쓸리는 교수들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 교수는 "긴 호흡으로 학문을 바라보고 연구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단기적으로만 성과를 평가하는 세태가 연구의 부정행위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시적인 결과만 따지는 풍토가 유지되는 한 이러한 (논문 조작) 사태가 줄지는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번에 구속된 조 교수의 보고서 조작 사태로 서울대 수의대 내부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교수 개개인의 일탈로만 간주하며 안일하게 대처했던 기존 반응과 달리 이제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연구 윤리에 대한 진지한 의식을 되살려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다.
황우석 사태 이후 2006년부터 운영 중인 '연구진실성위원회'에 대해서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방안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수의대 관계자는 "교수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내부에서도 수의학과 자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번 상황이 마무리되면 본격적으로 왜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는지 원인과 대응책을 논의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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