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휴대폰 액정이 깨지니 보이는 것들

기사등록 2016/03/02 09:03:00

최종수정 2016/12/28 16:41:11

【서울=뉴시스】정필재 기자 = ‘휴대폰 액정이 나갔다. 문자를 볼 수 없다.'

 최근 액정 내부가 깨졌는지 화면이 나오지 않았다. 비싼 수리비를 핑계로 새 폰을 사기로 했다. 새 기기를 알아보고 온라인 가입신청서를 작성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넣고, 사용 중인 번호를 입력했다. 본인인증이 필요하단다. 방법은 세 가지다. 첫 번째, 자기 명의의 휴대폰 문자를 통해 본인을 인증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휴대폰 액정이 나갔다. 문자를 볼 수 없다.'

 두 번째, 공인인증서를 통한 방법. 최근 컴퓨터를 포맷해 공인인증서가 없다. 은행 홈페이지에서 인증서 재발급을 신청했다. 절차가 있다. 자기 명의의 휴대폰 문자를 통해 본인을 인증해야 한다.

 그런데 '핸드폰 액정이 나갔다. 문자를 볼 수 없다.'

 세 번째, 아이핀 번호를 이용한 방법이다. 아이핀에 로그인했다. 아이핀 번호 발급을 클릭했다. 절차가 있다. 앱이나 자기 명의의 휴대폰 문자를 통해 본인을 인증해야 한다.

 그런데 '휴대폰 액정이 나갔다. 문자를 볼 수 없다.'

 인터넷을 통해 휴대폰 없이 문자를 확인하는 방법을 찾았다. 통신사에 계정을 만들어 문자를 컴퓨터로 확인하는 방법이다. 유료다. 이 서비스를 신청하기 위해 통신사에 전화했다. ARS를 통해 전화번호와 생년월일을 입력했다. 본인이 인증됐다는 기계음과 함께 상담원이 연결됐다.

 휴대폰 액정이 나갔다. 그래도 문자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상담원이 명의자를 확인하고 용건을 물었다. "컴퓨터로 문자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본인 명의의 휴대폰 문자를 통해 본인을 인증해야 한다"고 했다. 전화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휴대폰 액정이 나갔다. 문자를 볼 수 없다.'

 은행에서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이핀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이스에선 아이핀 번호 발급을 위해 "서울 여의도 본사로 직접 찾아와 얼굴을 보여달라"고 주문한다. 

 이게 인터넷 가입자 비율 세계 최고라는 IT강국의 현주소다.

 과거 웹사이트 회원 가입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를 통한 본인인증, 집주소, 직장, 취미 등이 필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 규제라는 반발로 이젠 이메일만 있으면 본인을 인증해 가입이 가능하다.

 정부는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풀겠다고 나섰고, 나름 여러 방면에서 열심히 한다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이렇게 암담하다. 휴대폰 액정이 나가면 문자를 볼 수 없고, 본인 인증 하나 맘대로 못 한다. 결국 계좌이체든 송금이든 초보적 금융거래조차 막힌다.

 정부나 금융계는 부인하지만 분명한 건 모든 것을 휴대폰 문자로 통하게 획일화한, 우리의 정보 및 금융서비스 수준은 '우간다'만도 못하다는 점이다. 

 휴대폰 액정이 깨지니 많은 것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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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휴대폰 액정이 깨지니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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