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연출가 고선웅(47)과 국립극단의 첫 협업작인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면(面)·선(線)·점(點)의 미학을 펼쳐낸다.
나무 등 작게 만든 소품마저 오르락 내리락하게끔 천장에 매단 하얀 도화지 면 같은 무대, 그 위에 먹을 묻힌 붓으로 느긋하게 그은 선처럼 연기하는 배우들, 그들이 점처럼 찍어내는 감정의 방점들이 어우러지며 감정의 폭풍우를 쏟아낸다. 텅 빈 공간에 감정의 밀도를 빼곡하게 쌓아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각색의 귀재로 정평 난 고선웅이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조씨고아(趙氏孤兒)'를 각색·연출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춘추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중국 원나라 때의 작가 기군상이 연극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조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 '조씨 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녀까지 희생시키게 되는 비운의 필부 정영이 중심축이다.
그는 많은 사람의 희생 끝에 살아남은 조씨 고아를 자신의 자식이자 권력을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는 '도안고'의 양자로 키우며 20년 동안 복수의 씨앗으로 길러낸다. 도안고가 조씨 가문을 없앤 장본인이다. 그가 정영의 씨앗을 없앴다.
나무 등 작게 만든 소품마저 오르락 내리락하게끔 천장에 매단 하얀 도화지 면 같은 무대, 그 위에 먹을 묻힌 붓으로 느긋하게 그은 선처럼 연기하는 배우들, 그들이 점처럼 찍어내는 감정의 방점들이 어우러지며 감정의 폭풍우를 쏟아낸다. 텅 빈 공간에 감정의 밀도를 빼곡하게 쌓아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각색의 귀재로 정평 난 고선웅이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조씨고아(趙氏孤兒)'를 각색·연출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춘추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중국 원나라 때의 작가 기군상이 연극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조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 '조씨 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녀까지 희생시키게 되는 비운의 필부 정영이 중심축이다.
그는 많은 사람의 희생 끝에 살아남은 조씨 고아를 자신의 자식이자 권력을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는 '도안고'의 양자로 키우며 20년 동안 복수의 씨앗으로 길러낸다. 도안고가 조씨 가문을 없앤 장본인이다. 그가 정영의 씨앗을 없앴다.
초반부터 갖은 연극적 장치를 가득 채워놓고 시작할 만한 작품인데, 고선웅은 원나라의 대표 연극 형식인 잡극(雜劇) 형식을 차용해 오히려 비워낸다. 가극 형태로 무대 장치는 간단한 소도구뿐이다. 막도 사용하지 않고 상황 설정은 모두 곡(曲·노래), 백(白·대사), 과(科·행동)로 나타냈다.
공연 중 암전이 거의 없이 장면 전환이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되며, 동양 전통 연극에 흔히 나오는 검은 부채를 든 묵자(墨子)가 인물의 퇴장과 소품의 이동을 진행한다.
고선웅 공력의 최대치가 발휘될 만한 형식이다. 그는 올해 10주년을 맞은 자신의 자그마한 극단 플레이팩토리 마방진을 시작으로 경기도립극단, 마방진이 상주한 경기 구리아트홀, 국립창극단 등 공공예술기관 등과 작업하면서 재기발랄함에 진지함이라는 무게감을 얹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국립극단과 협업하는 데까지 이른 그가 고민 끝에 내놓은 산물인 셈이다. 배우들의 희극적 요소가 섞인 과장된 연기 등 고선웅표 인장은 분명하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웃음기가 쏙 빠졌다. 아픔을 이야기해도 희극적인 농도가 짙었던 '푸르른 날에'(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 기존 작품에 비해 그 농도가 옅어진 최근작인 연극 '홍도'(호된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와 뮤지컬 '아리랑'(일제강점기)의 연장선상이다.
공연 중 암전이 거의 없이 장면 전환이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되며, 동양 전통 연극에 흔히 나오는 검은 부채를 든 묵자(墨子)가 인물의 퇴장과 소품의 이동을 진행한다.
고선웅 공력의 최대치가 발휘될 만한 형식이다. 그는 올해 10주년을 맞은 자신의 자그마한 극단 플레이팩토리 마방진을 시작으로 경기도립극단, 마방진이 상주한 경기 구리아트홀, 국립창극단 등 공공예술기관 등과 작업하면서 재기발랄함에 진지함이라는 무게감을 얹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국립극단과 협업하는 데까지 이른 그가 고민 끝에 내놓은 산물인 셈이다. 배우들의 희극적 요소가 섞인 과장된 연기 등 고선웅표 인장은 분명하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웃음기가 쏙 빠졌다. 아픔을 이야기해도 희극적인 농도가 짙었던 '푸르른 날에'(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 기존 작품에 비해 그 농도가 옅어진 최근작인 연극 '홍도'(호된 시집살이를 하는 며느리)와 뮤지컬 '아리랑'(일제강점기)의 연장선상이다.
왕후의 씨앗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씨앗이 죽는 걸 눈앞에서 목격한 정영이 20년 뒤 마침내 조씨 고아를 통해 도안고에게 복수를 감행함에도 그의 9족을 없앨 거라는 왕의 말에 허무함을 느끼는 순간, 웃음기가 들어갈 틈이 없어지는 이야기의 완결성을 보여준다. 고선웅은 이번 작품은 이야기 만으로 가득 채워진다며 그 외의 것들은 빼고 또 뺐다.
아들을 잃은 뒤 충격에 목숨을 잃은 정영의 처를 비롯해 조씨 고아를 둘러싸고 죽은 이들이 정영 앞에 모두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밑바닥에 있을 수밖에 없는 민초들을 위한 씻김굿이다.
2시간 넘게 감정의 진을 계속 빼야 하는 정영 역의 하성광은 막판에 실제 정영이 된 듯 실제 얼굴마저 초췌해지고, 연극 '리어왕'에서 미친 리어로 광기를 발휘한 장두이는 이번에 권력에 미친 도안고로 또 다시 광인의 눈빛을 번뜩인다. 객석 앞으로 살짝 기운, 무대디자이너 이태섭의 빈 무대는 인생의 오르막길에도 안간힘을 쓰고 살아가려는 인물들의 삶을 머금었다.
4~22일 명동예술극장. 도안고 장두이, 정영 하성광, 공손저구 임홍식, 영공 이영석, 조순 유순웅, 제미명 조연호, 정영의 처 이지현 등. 예술감독 김윤철, 원작 기군상, 번역 오수경, 조명 류백희, 무술 한지빈. 러닝타임 160분(휴식 15분 포함). 2만~5만원. 국립극단. 1644-2003
[email protected]
아들을 잃은 뒤 충격에 목숨을 잃은 정영의 처를 비롯해 조씨 고아를 둘러싸고 죽은 이들이 정영 앞에 모두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밑바닥에 있을 수밖에 없는 민초들을 위한 씻김굿이다.
2시간 넘게 감정의 진을 계속 빼야 하는 정영 역의 하성광은 막판에 실제 정영이 된 듯 실제 얼굴마저 초췌해지고, 연극 '리어왕'에서 미친 리어로 광기를 발휘한 장두이는 이번에 권력에 미친 도안고로 또 다시 광인의 눈빛을 번뜩인다. 객석 앞으로 살짝 기운, 무대디자이너 이태섭의 빈 무대는 인생의 오르막길에도 안간힘을 쓰고 살아가려는 인물들의 삶을 머금었다.
4~22일 명동예술극장. 도안고 장두이, 정영 하성광, 공손저구 임홍식, 영공 이영석, 조순 유순웅, 제미명 조연호, 정영의 처 이지현 등. 예술감독 김윤철, 원작 기군상, 번역 오수경, 조명 류백희, 무술 한지빈. 러닝타임 160분(휴식 15분 포함). 2만~5만원. 국립극단.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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