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 대법관, 형사실무연구회 토론회서 "공개변론 고려 중"
【서울=뉴시스】김승모 기자 = 부동산 이중매매 행위가 형법상 배임죄에 해당하는지를 심리중인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신 대법관)가 해당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여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동안 대법원은 부동산을 팔려는 매도인이 계약금에 이어 중도금을 매수인으로부터 받은 이후 제3자에게 부동산을 되팔면 이중매매에 해당해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공개변론을 통해 1963년 이후 일관되게 유지해 온 대법원 판례가 52년만에 변경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신(58·사법연수원 12기) 대법관은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16층 회의실에서 '부동산 이중매매와 배임죄'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를 마치고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중인 관련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자신의 아파트를 팔기로 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에 이어 잔금 일부를 받고도 해당 아파트를 담보로 5회에 걸쳐 대출을 받으면서 금융기관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이익을 취하고,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심리중이다.
자신이 판 아파트를 매수인에게 온전히 넘겨야 할 의무가 있는 매도인(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 이를 위배하는 행위를 통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고 매수인에게 손해를 끼친 행위가 배임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김 대법관이 이 사건 주심이자 토론회를 주최한 형사실무연구회 회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토론회가 전원합의체 최종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법조계와 학계 등 법률전문가들은 '부동산 이중매매가 배임죄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타당한가'라는 주제를 발표한 강수진(44·여·24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도금을 지급한 매수인은 해당 부동산을 취득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고, 매도인은 매수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며 배임죄 성립을 주장했다.
강 교수는 "대법원은 타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할 의무가 단순히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이 권리를 취득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전형적,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신임관계가 당사자 사이에 형성돼 있다면 이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히 등기를 이전하는 사실행위로 자기(매도인)의 사무에 불과하다고 단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를 행위 주체의 요건으로 삼는 배임죄는 '자기 사무를 처리하는' 경우에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강 교수는 "부동산 매매에서 매도인과 매수인은 특히 중도금을 주고받은 이후부터는 결코 평등한 계약당사자가 아니다"며 "중도금이 지급되는 등으로 계약이 일방적으로 해제될 수 없게 되는 시점 이후에 매수인이 갖는 소유권 이전에 대한 신뢰를 보호하는 것을 형평에 반한다고 봐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의 주장은 최소한 중도금 지급 이후부터 부동산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치기 전까지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의 소유권 이전에 관한 특별한 신뢰관계가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반해 '이중매매와 배임죄에 관한 신화'를 주제로 발표한 문형섭(70·4기) 변호사는 부동산 매도인의 등기 이전 의무는 (법에서 규정하는)'타인의 사무'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배임죄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문 변호사는 "(매도인의) 등기 협력이 매수인을 위한 사무이지만, 본래 매수인이 처리할 사무가 아니어서 매수인의 사무가 될 수는 없다"며 "만일 '타인을 위한' 사무를 '타인의' 사무와 같다고 본다면 돈을 빌려주는 거래에서도 배임죄를 인정할 수 있는 등 모든 '(계약의) 채무불이행'을 배임죄라고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부동산 등기를 이전하는 데 협력할 매도인의 의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시기는 대금을 모두 지불했을 때"라며 "중도금을 받는 단계에서는 이 같은 등기협력 의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존재하지 않는 의무가 이행해야 할 타인(매수인)의 사무에 해당해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부동산) 매매관계에서 비록 중도금을 낸 매수인이라고 하더라도 (소유권을 넘겨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계약이 지켜질 것으로 믿는 기대'에 불과하다"며 "그것은 모든 거래 당사자 사이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기대와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관계를 배임죄의 신뢰관계라고 하면 계약 이후 단계를 이행하지 않는 모든 '계약불이행'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돼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정 토론에 나선 이창온(45·30기) 부천지청 부부장검사는 "50년 이상 확립된 가벌성을 충분한 공론화와 입법에 의하지 않고 개별 사안에 대한 법원 판결을 통해 갑자기 변경한다면 오히려 거래계의 예측가능성을 잃어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임기환(43·28기)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채무불이행은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부동산 이중매매에서 매도인이 첫 번째 매수인에 대한 등기협력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적어도 이론적으로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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