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없는 곳에 설치된 택시 승차대…먼지만 잔뜩 "있으나 마나"

기사등록 2015/01/10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4:24:58

【서울=뉴시스】김예지 기자 = "불법 주정차인 걸 알지만 손님을 빨리 태우려면 어쩔 수 없어요."

 35년째 택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김강식(55)씨는 마포구를 지날 때면 습관적으로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 멈춰 선다. 정차한 곳 바로 위에는 ‘불법 주정차 무인 단속 중’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씨는 "택시 승차대의 대부분이 한적한 곳에 있으니 이런 곳에 서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시 대부분의 택시 승차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승객이 없는 곳에 승차대를 설치한 탓이다. 이렇다 보니 승차대 중 고속버스터미널이나 서울역 인근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택시 승차대에 승객도, 택시도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시에는 413개의 택시 승차대가 있다. 지난 1일 서울 시내 11곳의 택시 승차대를 직접 확인한 결과 대기 중인 택시가 있는 곳은 세 군데에 불과했다.

 서대문구 대신동 이화여대 후문 앞과 연세대 동문회관 앞 택시 승차대의 하얀 의자에는 먼지가 까맣게 쌓여있다. 의자를 만지자 손가락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서울의 택시 승차대 설치는 관할관청, 경찰청, 서울시 세 곳이 관여한다. 관할관청이 택시 승차대 설치 지점을 경찰과 협의하고 서울시에 승인 요청한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제10조 2항에 따르면 관할관청은 택시 이용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에 택시 승차대를 설치할 수 있다. 또 관할관청이 도로에 택시 승차대를 설치하거나 설치 및 시설 기준을 정하는 경우 관할 지방경찰청장과 협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 박재영 지도부장은 "결국 서울시와 구청, 경찰 세 곳이 합의를 해야 하는데 이들의 기준이 일관성이 없다보니 정작 불필요한 곳에 택시 승강장이 생긴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관할 구청에 전달한 택시 승차대 설치 권고 사항은 ▲택시 이용 시민이 많은 터미널, 지하철역 주변, 호텔, 백화점 등 이용자가 많은 횡단보도 주변 ▲폐쇄된 중앙버스정거장의 베이(Bay) ▲빈 택시가 상시 3대 이상 승객을 대기하고 있거나 택시 이용 수요가 많은 지하철역 입구 주요 건물 입구 등 세 가지다.

 반면 경찰 측에서 제시하는 택시 승차대 설치 기준은 다르다. 서울의 한 경찰 관계자는 "택시 승차대가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과 가까우면 편리하겠지만 교통 흐름에는 방해가 된다. 그런 곳에 승차대를 설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서울시 택시물류과 관계자는 "우리는 아무래도 시민 편의를 먼저 생각하지만 경찰에서는 시민의 안전과 교통의 흐름 등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협의가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결국 세 기관의 협의를 거치다 엉뚱한 곳에 택시 승차대가 세워지는 일이 허다하다.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기사 분들 의견을 수렴해서 관할관청에 건의를 하지만 백이면 백 원하는 위치에 택시 승차대가 세워진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 유동인구가 많은 잠실역 인근에 택시 승차대 설치를 요청했지만 결국 구청과 경찰이 여러 이유를 들며 택시 이용객이 많지 않은 곳에 설치한 적도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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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뚱한 곳에 설치된 택시 승차대 때문에 오히려 교통 흐름이 깨지기도 한다.

 택시 표시 그림이 떨어지고 'TAXI'라는 문구만 남은 서대문구의 한 택시 승차대는 출퇴근 시간 정체 구간인 연희동에서 동교동 방향 차선에 위치해 있다. 이 곳에 택시가 정차하면 뒤따라오던 진행 차량들이 같이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서대문구의 한 회사에 다니는 김모(57)씨는 "택시가 승차대에 멈출 때면 승객을 태우고 떠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끼어들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버스는 버스 승강장에 주정차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있다. 하지만 택시는 택시 승차대에 주정차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택시기사들도 손님이 없는 택시 승차대는 무의미하다고 입을 모았다.

 택시기사 박모(56)씨는 "택시 승차대가 한적한 곳에 있어 손님을 기다린다기보다 5~10분 정도 쉬다 간다고 생각한다"며 "손님도 없는 곳에 돈 들여서 승차대를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윤자문(76)씨는 "정작 필요한 곳에는 택시 승차대가 없고 버스 중앙차로 때문에 도로는 좁아져 정차해 있으면 거의 다 불법이라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택시가 없는 택시 승차대로 인해 시민들도 불편을 토로했다.

 다리에 깁스를 한 A씨는 택시로 귀가하기 위해 택시 승차대를 찾았다. 한참 팔을 휘저으며 서있었지만 택시는 오지 않았다. A씨는 "택시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택시 승차대에 왔는데 오히려 택시 잡기가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금요일 늦은 시각에 주로 택시를 타는 김모(27·여)씨는 "나는 택시 승차대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택시 승차대도 아닌 곳에서 택시를 낚아채 듯 타고 가면 닭 쫓던 개가 된 기분"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이제선 교수는 "기존 택시 승차대의 대부분이 과거에 만든 것이고 버스중앙차로도 생기다보니 교통 상황이 달라졌다"며 "택시 승차대의 이용 강도를 재조사해서 위치를 조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김도경 교수는 "택시 승차 수요가 많은 지역은 상업시설이 활성화된 번화가라 교통량도 많다"며 "그런 곳에 택시 승차대를 만들면 도로의 한 차선을 택시들이 잡아먹는 형태가 돼 교통 흐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택시 승차대 문제를 이대로 안고 갈 수는 없다"며 "본선 차로를 잡아먹는 게 아니라 본선 차로 안쪽에 곡선형 차선을 만들어 택시 전용 공간을 만드는 베이(Bay) 형태로 설치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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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없는 곳에 설치된 택시 승차대…먼지만 잔뜩 "있으나 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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