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441>
“이른 아침 별망군(別望軍)이 ‘부지기수 적선이 명량으로 몰려온다’고 보고한다. 즉시 여러 배에 전령해 닻을 걷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130여척이 우리를 에워싼다. 장수들은 중과부적임을 알고 도망할 궁리만 한다. 우수사 김억추는 벌써 아득한 곳으로 물러가 있다. 나는 노를 재촉해 돌진하여 지자(地字), 현자(玄字) 등 각종 총포들을 바람과 우레같이 마구 쏘아댄다. 군관들도 배 위 가득 서서 빗발같이 어지러이 쏴대니, 적도는 당하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한다. 그러나 적에게 몇 겹으로 둘러싸여 형세가 어찌 될 지 알 수 없다. 온 배에 있는 장병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잃는다. 나는 조용히 타이른다. 적이 1000척이라도 우리 배를 당히지 못할 것이다. 동심하지 말고 진격해 적을 쏘라 하고, 장수들의 배들을 돌아보니 먼 바다로 물러나 관망하고 진격하지 않는다. 내 배를 돌려 바로 중군장 김응함의 배로 가서 먼저 그 목을 베어 효시하고 싶었으나, 내 배가 머리를 돌리면 여러 배들이 차차로 멀리 물러날 것이요, 따라서 적선이 점점 육박해 오면 일은 아주 낭패라. 호각을 불어 중군령하기(中軍令下旗)를 세우고 초요기(招搖旗)를 세우니,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내 배에 가까이 오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온다. 내가 안위를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하니,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한다. 다시 김응함을 불러 ‘너는 중군장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원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하랴?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전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한다’ 하니, 두 배가 곧장 쳐들어가 접전하는데 적장이 그 휘하선 세 척을 지휘해 한꺼번에 개미 붙듯 안위의 배로 매달려 서로 먼저 올라가려 다툰다. 안위와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죽기로 맹세하고 싸운다. 몽둥이로 치고, 긴 창으로 찌르고, 돌덩이로 마구 후려치며 방어한다. 그러다가 힘이 거의 다하게 된다. 내 배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 빗발치듯 쏴대자 적선 세 척이 남김없이 전멸되는데, 녹도 만호 송여종과 평산포 대장 정응두의 배가 계속해 이르러 합력해 적을 쏜다. 항복한 왜인 준사는 안골포 적진에서 투항해 온 자인데, 내 배위에서 굽어보며 ‘저 무늬 있는 비단옷을 입은 놈이 안골포 적진의 적장 마다시(구루시마 미치후사)라 한다. 김돌손으로 하여금 갈고리를 던져 뱃머리로 끌어올리게 하니, 준사가 날뛰며 마다시라고 한다. 곧 명령해 토막토막 자르게 하니 적의 기운이 크게 꺾여 버린다. 이때 우리 배들이 일제히 북을 울리며 가지런히 나아가면서 지자, 현자를 쏘고 활을 빗발같이 쏘니 그 소리가 산악을 진동시킨다. 31척이 부서지자 적선들이 퇴각하고 다시는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니 이는 실로 천행이다.” (‘난중일기’ 1597년 9월16일)
이 영화같은 장면이 영화로 나왔고, 국민들은 열광하고 있다.
영국의 넬슨 제독과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이순신과 더불어 세계 3대 해군장군으로 손꼽힌다. 넬슨은 1805년 스페인 트라팔가르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퇴한다. 도고는 1905년 러일전쟁 당시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를 무찌른다. 일본역사문화 연구가 장성훈은 “트라팔가르 해전은 영국 함대 41척과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 38척간의 전투였다. 발틱함대는 북유럽에서부터 대한해협까지 먼 길을 오느라 병사들이 지칠대로 지친 데다 무엇보다 함대의 경로가 그대로 노출돼 있었을뿐 아니라 명성과 달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 함대였다. 넬슨이나 도고는 나라와 국민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조선의 조정은 이미 피란길에 올랐고 온 나라는 전란으로 황폐했다. 지방의 작은 수군부대로 식량은 물론 폭탄을 만들 유황조차 제대로 조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면서 23번을 싸워 23번의 전승으로 일본군을 격파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러일전쟁 뒤 기자회견, “당신은 넬슨 제독보다 뛰어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해군제독”이라는 상찬이 나오자 도고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넬슨 제독과는 비교할 수 있어도 이순신 장군과 비교되는 것조차 황송스럽다. 이순신이야말로 세계 해전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다.”
“이른 아침 별망군(別望軍)이 ‘부지기수 적선이 명량으로 몰려온다’고 보고한다. 즉시 여러 배에 전령해 닻을 걷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130여척이 우리를 에워싼다. 장수들은 중과부적임을 알고 도망할 궁리만 한다. 우수사 김억추는 벌써 아득한 곳으로 물러가 있다. 나는 노를 재촉해 돌진하여 지자(地字), 현자(玄字) 등 각종 총포들을 바람과 우레같이 마구 쏘아댄다. 군관들도 배 위 가득 서서 빗발같이 어지러이 쏴대니, 적도는 당하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한다. 그러나 적에게 몇 겹으로 둘러싸여 형세가 어찌 될 지 알 수 없다. 온 배에 있는 장병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잃는다. 나는 조용히 타이른다. 적이 1000척이라도 우리 배를 당히지 못할 것이다. 동심하지 말고 진격해 적을 쏘라 하고, 장수들의 배들을 돌아보니 먼 바다로 물러나 관망하고 진격하지 않는다. 내 배를 돌려 바로 중군장 김응함의 배로 가서 먼저 그 목을 베어 효시하고 싶었으나, 내 배가 머리를 돌리면 여러 배들이 차차로 멀리 물러날 것이요, 따라서 적선이 점점 육박해 오면 일은 아주 낭패라. 호각을 불어 중군령하기(中軍令下旗)를 세우고 초요기(招搖旗)를 세우니,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내 배에 가까이 오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온다. 내가 안위를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하니,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한다. 다시 김응함을 불러 ‘너는 중군장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원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하랴?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전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한다’ 하니, 두 배가 곧장 쳐들어가 접전하는데 적장이 그 휘하선 세 척을 지휘해 한꺼번에 개미 붙듯 안위의 배로 매달려 서로 먼저 올라가려 다툰다. 안위와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죽기로 맹세하고 싸운다. 몽둥이로 치고, 긴 창으로 찌르고, 돌덩이로 마구 후려치며 방어한다. 그러다가 힘이 거의 다하게 된다. 내 배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 빗발치듯 쏴대자 적선 세 척이 남김없이 전멸되는데, 녹도 만호 송여종과 평산포 대장 정응두의 배가 계속해 이르러 합력해 적을 쏜다. 항복한 왜인 준사는 안골포 적진에서 투항해 온 자인데, 내 배위에서 굽어보며 ‘저 무늬 있는 비단옷을 입은 놈이 안골포 적진의 적장 마다시(구루시마 미치후사)라 한다. 김돌손으로 하여금 갈고리를 던져 뱃머리로 끌어올리게 하니, 준사가 날뛰며 마다시라고 한다. 곧 명령해 토막토막 자르게 하니 적의 기운이 크게 꺾여 버린다. 이때 우리 배들이 일제히 북을 울리며 가지런히 나아가면서 지자, 현자를 쏘고 활을 빗발같이 쏘니 그 소리가 산악을 진동시킨다. 31척이 부서지자 적선들이 퇴각하고 다시는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니 이는 실로 천행이다.” (‘난중일기’ 1597년 9월16일)
이 영화같은 장면이 영화로 나왔고, 국민들은 열광하고 있다.
영국의 넬슨 제독과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이순신과 더불어 세계 3대 해군장군으로 손꼽힌다. 넬슨은 1805년 스페인 트라팔가르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퇴한다. 도고는 1905년 러일전쟁 당시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를 무찌른다. 일본역사문화 연구가 장성훈은 “트라팔가르 해전은 영국 함대 41척과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 38척간의 전투였다. 발틱함대는 북유럽에서부터 대한해협까지 먼 길을 오느라 병사들이 지칠대로 지친 데다 무엇보다 함대의 경로가 그대로 노출돼 있었을뿐 아니라 명성과 달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 함대였다. 넬슨이나 도고는 나라와 국민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조선의 조정은 이미 피란길에 올랐고 온 나라는 전란으로 황폐했다. 지방의 작은 수군부대로 식량은 물론 폭탄을 만들 유황조차 제대로 조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면서 23번을 싸워 23번의 전승으로 일본군을 격파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러일전쟁 뒤 기자회견, “당신은 넬슨 제독보다 뛰어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해군제독”이라는 상찬이 나오자 도고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넬슨 제독과는 비교할 수 있어도 이순신 장군과 비교되는 것조차 황송스럽다. 이순신이야말로 세계 해전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다.”
나무박사 강판권 교수(계명대 사학)는 이순신 함대의 판옥선(板屋船)에 주목한다. 2층 구조와도 같은 판옥선은 “윗부분의 너비를 아랫부분보다 넓게 만들어 그 사이로 노를 내밀도록 한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노꾼을 아래위 갑판 사이의 안전한 장소에 배치해서 노 젓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다. 동시에 노꾼을 늘리려는 의도다. 판옥선의 정원은 164~194명에 달했다. 그중 노꾼이 120여명이었다. 전투병보다 노꾼이 훨씬 많은 것은 기동성 확보 때문이었다. 갑판 위 전투병들은 높은 곳에서 적을 바라보면서 싸울 수 있었다. 적이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여서 왜적의 장기인 칼을 이용한 접전을 막을 수 있는 장점도 갖췄다. 포의 위치도 높아 포격전에도 매우 유리했다.” 강 교수는 판옥선의 재료를 특기한다. 판옥선은 소나무, 왜군의 안택선(安宅船)은 삼나무로 만든다. 삼나무는 소나무에 비해 재질이 무르다. 이순신이 충파(沖破·衝破), 즉 ‘몸빵’ 명령을 내린 자신감의 바탕일 것이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1000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이순신의 창작어록이 아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군사지도자 오기가 ‘오자병법’에서 전한 말이다. 오자는 76전64승 12무를 기록한 전쟁의 전설이다.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은 “그러나 (충성심 과시 수단으로 아내 살해를 택하는 등) 차갑고 가식적인 삶, (새로운 주군을 찾아 떠돈) 의리 없는 기술자인 오자를 이순신과 비교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진짜 부자지병을 실천한 것은 이순신”이라고 구분한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1000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이순신의 창작어록이 아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군사지도자 오기가 ‘오자병법’에서 전한 말이다. 오자는 76전64승 12무를 기록한 전쟁의 전설이다.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은 “그러나 (충성심 과시 수단으로 아내 살해를 택하는 등) 차갑고 가식적인 삶, (새로운 주군을 찾아 떠돈) 의리 없는 기술자인 오자를 이순신과 비교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진짜 부자지병을 실천한 것은 이순신”이라고 구분한다.
“김중걸이 이달 초6일 달마산(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으로 도망갔다가 왜놈에게 붙잡혀 결박당해 왜선에 실렸더니, 김해 사람으로 이름 모를 어떤 이가 왜장에게 빌어 묶인 것을 풀어준다. 그날 밤 김해 사람이 김중걸의 귀에 대고 ‘조선 해군 10여척이 왜군을 추격해 사살하고 불태웠으므로 불가불 보복을 해야겠다. 그리하여 여러 배들을 모아 조선 해군을 몰살한 후에 바로 경강으로 올라가겠다고 왜놈들이 말하더라’는 것이다.” 정유년(1597) 명량대첩 이틀 전인 9월14일 난중일기다. “이덕열이 아뢰기를 ‘이순신이 원균의 공을 빼앗아 권준의 공으로 삼으면서 원균과 상의하지도 않고 먼저 장계한 것입니다. 그때 왜선 안에서 여인을 얻어 사실을 탐지하고는 곧장 장계했다고 합니다.” 같은해인 선조 30년 ‘조선왕조실록’ 1월27일자다.
왜란 한참 뒤인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순사 출신인 사와무라 하치만다로는 명량대첩의 일등공신으로 ‘어란’을 지목한다. 난중일기와 실록이 ‘이름 모를 어떤 이’, ‘김해 사람’, ‘여인’으로 표기한 인물이 바로 어란이라는 것이다. 관기인 어란이 적장의 기밀을 빼내 조선 수군에게 넘겼다고 주장한다. 왜장 스가 마사가게가 누설한 군사 기밀, 즉 왜군의 출발일시를 어란이 이순신 측에게 전달했고, 덕분에 조선군은 대승할 수 있었다고 강변한다. 천하의 이순신이 기생의 도움을 받았다니, 다행히 야사다. 정사는 임중형, 임준영 등 이순신의 탐망·척후 군관의 이름을 명기하고 있다.
충무공은 성웅일지언정 신은 아니다. 신당에 이순신을 모신 무당이 거의 없다는 점이 방증이다. 19세기의 반란수괴 혹은 실패한 민중혁명가 홍경래는 백마신장이 돼있다. 이성계, 박정희도 신이 된 지 오래다. 심지어 외국인인 관우도 관성제군이라는 신으로 우리나라에 눌러 앉았다. 무당이 신으로 추앙하는 귀신은 사람이 죽은 것이다. 사람처럼 거짓말을 잘한다. 무당에게 접근하면서 신분을 속인다. 최영 장군의 졸개였다고 정직하게 밝히면 무당이 우습게 본다. 그래서 최영을 사칭한다. 무당치고 최영 신을 안 챙기는 이가 없다시피 한 까닭이다. 이순신은 비견할 영웅이 없는 톱스타다. 적당히 예쁘면 희롱당할 수도 있지만, 절세가인에게는 범접 못하는 주눅이 귀신과 무당에게 두루 적용된 경우가 바로 충무공인 셈이다.
왜란 한참 뒤인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순사 출신인 사와무라 하치만다로는 명량대첩의 일등공신으로 ‘어란’을 지목한다. 난중일기와 실록이 ‘이름 모를 어떤 이’, ‘김해 사람’, ‘여인’으로 표기한 인물이 바로 어란이라는 것이다. 관기인 어란이 적장의 기밀을 빼내 조선 수군에게 넘겼다고 주장한다. 왜장 스가 마사가게가 누설한 군사 기밀, 즉 왜군의 출발일시를 어란이 이순신 측에게 전달했고, 덕분에 조선군은 대승할 수 있었다고 강변한다. 천하의 이순신이 기생의 도움을 받았다니, 다행히 야사다. 정사는 임중형, 임준영 등 이순신의 탐망·척후 군관의 이름을 명기하고 있다.
충무공은 성웅일지언정 신은 아니다. 신당에 이순신을 모신 무당이 거의 없다는 점이 방증이다. 19세기의 반란수괴 혹은 실패한 민중혁명가 홍경래는 백마신장이 돼있다. 이성계, 박정희도 신이 된 지 오래다. 심지어 외국인인 관우도 관성제군이라는 신으로 우리나라에 눌러 앉았다. 무당이 신으로 추앙하는 귀신은 사람이 죽은 것이다. 사람처럼 거짓말을 잘한다. 무당에게 접근하면서 신분을 속인다. 최영 장군의 졸개였다고 정직하게 밝히면 무당이 우습게 본다. 그래서 최영을 사칭한다. 무당치고 최영 신을 안 챙기는 이가 없다시피 한 까닭이다. 이순신은 비견할 영웅이 없는 톱스타다. 적당히 예쁘면 희롱당할 수도 있지만, 절세가인에게는 범접 못하는 주눅이 귀신과 무당에게 두루 적용된 경우가 바로 충무공인 셈이다.
‘명량’의 감독 김한민도 마찬가지 심리였을는지 모른다. 김 감독은 이순신을 감히 어찌할 수 없었다. 분명한 상업영화이건만 교육 혹은 정훈용 대사가 대부분인 이유일 것이다.
배우 최민식은 더 할 나위 없는 영예를 누리고 있다. 새 이순신 영화나 TV드라마가 제작되기 전에는 ‘이순신’하면 최민식이 연상될 터이다. 이전까지는 2005년 KBS 사극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 1980년대 MBC ‘조선왕조 500년, 임진왜란’의 김무생, 1970년대 ‘성웅 이순신’(감독 장일호)과 ‘난중일기’(감독 이규웅)의 김진규가 곧 이순신이었다. 40여년 전 영화기술과 객석의 눈높이를 감안하면, 김진규의 이순신이 최민식의 이순신보다 못하다고 할 만한 구석은 딱히 없는 듯하다. 이순신이 주인공이 아닌 전쟁 블록버스터였다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명량’보다 재미있다고 할 남녀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관객이 아니라 국민된 한 사람으로서 극장을 찾는 애국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명량’은 한국인이라면 봐야하는 영화가 됐다.
명량대첩 후 ‘명량’의 승자들이 감격스러운 대화를 나눈다.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까 모르겠네” “모르면 호로새끼(호래자식)지.” 영화 ‘명량’은 영화가 아니다.
문화부장 [email protected]
배우 최민식은 더 할 나위 없는 영예를 누리고 있다. 새 이순신 영화나 TV드라마가 제작되기 전에는 ‘이순신’하면 최민식이 연상될 터이다. 이전까지는 2005년 KBS 사극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 1980년대 MBC ‘조선왕조 500년, 임진왜란’의 김무생, 1970년대 ‘성웅 이순신’(감독 장일호)과 ‘난중일기’(감독 이규웅)의 김진규가 곧 이순신이었다. 40여년 전 영화기술과 객석의 눈높이를 감안하면, 김진규의 이순신이 최민식의 이순신보다 못하다고 할 만한 구석은 딱히 없는 듯하다. 이순신이 주인공이 아닌 전쟁 블록버스터였다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명량’보다 재미있다고 할 남녀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관객이 아니라 국민된 한 사람으로서 극장을 찾는 애국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명량’은 한국인이라면 봐야하는 영화가 됐다.
명량대첩 후 ‘명량’의 승자들이 감격스러운 대화를 나눈다.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까 모르겠네” “모르면 호로새끼(호래자식)지.” 영화 ‘명량’은 영화가 아니다.
문화부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