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2011년 11월2일 미국 하버드대 샌더스관 앞에 수십 명의 학생이 모여 수강을 거부하고 '교수에게 보내는 항의 서한'을 낭독했다.
"당신의 강의는 지나치게 편향됐다. 당신이 우리에게 주입하는 경제학은,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를 영구화하고 세계 금융 위기를 유발한 그 이데올로기 아닌가."
학생으로부터 수모를 당한 교수는 그레고리 맨큐, 바로 '맨큐의 경제학'의 저자다. 그러나 학생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여전히 하버드대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세계 많은 나라 대학에서 경제학 기본 교재로 쓰이고 있다.
2008년 세계를 휩쓴 금융 위기 이후 시장 만능을 설파하던 신자유주의와 이를 뒷받침해 온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비난과 회의감이 팽배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금융 위기가 터졌는데도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그들 중 상당수가 금융의 무모한 팽창을 열렬히 지지해 온 인물들이다.
각 대학에서 경제학 교육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어나 '다원주의적 경제학을 위한 국제학생운동'으로까지 번지는 것이 무리가 아니며, 산업계와 정책 현장에서도 현재의 경제학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의 기본 체계를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누구도 쉽게 의견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30년 가까이 경제학의 유일한 적자인양 주류를 자처하며 군림해 온 신고전파 경제학의 아성은 그만큼 굳건하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금융 위기 이후 누군가가 꼭 써 주기를 기다려 왔지만 아무도 선뜻 총대를 메지 않던 바로 그 작업을 장하준 교수가 흔쾌히 맡은 책이다. 다시 말하자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새뮤얼슨, 맨큐 등 경제학자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또 하나의 경제학 입문서가 아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아니 현실을 호도해 온 경제학을 근본에서부터 뒤지는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이자, 대중과 유리돼 일부 경제학자의 전유물이나 지적 유희 대상으로 전락한 경제라는 학문을 생산과 경제 활동의 주역인 시민에게 되돌리려는 기획이다.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 경제학)는 "내용은 쉽고 말투는 순하지만 내 책 중 가장 래디컬하다"고 스스로 평한다. 무슨 뜻일까. 지금까지 장하준은 세계에 획일적으로 강요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경제의 역사를 돌아보면 나라마다 사회 구조와 발전 단계에 맞는 경제 정책이 따로 있었음을 입증하거나('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주류 경제학의 주장에 어떤 허점들이 있는지 논파('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하는 데 힘을 쏟았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는 더 근원으로 파고들어 신자유주의를 부추긴 주류 경제학 자체의 사고 구조와 이론적 문제점을 파헤친다. 한 마디로 주류 경제학이 세뇌한 경제학의 정의와 개념부터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경제학 교과서들과 많은 경제학자가 주장하던 관점을 뒤집고 근본부터 재정립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
장 교수는 먼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지적 오만에 빠져있다고 질타한다. 장하준이 보기에는 제 할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제학이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러한 착각와 오만은 현재 경제학계의 주류를 차지한 신고전학파가 경제학을 규정하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신고전파는 경제학을 '희소성을 지닌 수단과 목적 사이의 관계로서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접근법을 모든 세상 일에 적용한다. 신고전파가 전제하는 합리적 인간관, 경제의 다기한 영역 가운데 오로지 소비 및 교환을 중심에 둔 접근법은 경제를 파악하는 수많은 방법론이나 도구 중에 하나일 뿐인데, 이 도구를 물리학 법칙처럼 여기다 보니 도구를 이용해 다뤄야 할 대상을 오히려 도구에 맞추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는 격언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장하준은 도구는 도구일 뿐, 경제학 자체는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의미의 과학이 아니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더 흥미로운 점은 장하준이 신고전학파에 대한 비판에서 나아가 그간 비주류로 치부됐으나 사실은 경제사의 국면마다 현실 필요에 부응해 마땅한 역할을 수행해 온 여러 경제학 방법론을 소개하고 그들의 가치를 재확인함으로써 철없는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신고전학파를 또래 아이의 일원으로 돌려보낸다는 점이다. 1부 4장 '백화제방'이 그 내용이다. 9개 주요 경제학파의 장단점과 한계, 역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읽다 보면, 신고전학파가 누려 온 그간의 위세가 학문적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에 따른 것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김희정 옮김, 496쪽, 1만6800원, 부키
[email protected]
"당신의 강의는 지나치게 편향됐다. 당신이 우리에게 주입하는 경제학은,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를 영구화하고 세계 금융 위기를 유발한 그 이데올로기 아닌가."
학생으로부터 수모를 당한 교수는 그레고리 맨큐, 바로 '맨큐의 경제학'의 저자다. 그러나 학생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여전히 하버드대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세계 많은 나라 대학에서 경제학 기본 교재로 쓰이고 있다.
2008년 세계를 휩쓴 금융 위기 이후 시장 만능을 설파하던 신자유주의와 이를 뒷받침해 온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비난과 회의감이 팽배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금융 위기가 터졌는데도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그들 중 상당수가 금융의 무모한 팽창을 열렬히 지지해 온 인물들이다.
각 대학에서 경제학 교육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어나 '다원주의적 경제학을 위한 국제학생운동'으로까지 번지는 것이 무리가 아니며, 산업계와 정책 현장에서도 현재의 경제학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의 기본 체계를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누구도 쉽게 의견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30년 가까이 경제학의 유일한 적자인양 주류를 자처하며 군림해 온 신고전파 경제학의 아성은 그만큼 굳건하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금융 위기 이후 누군가가 꼭 써 주기를 기다려 왔지만 아무도 선뜻 총대를 메지 않던 바로 그 작업을 장하준 교수가 흔쾌히 맡은 책이다. 다시 말하자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새뮤얼슨, 맨큐 등 경제학자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또 하나의 경제학 입문서가 아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아니 현실을 호도해 온 경제학을 근본에서부터 뒤지는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이자, 대중과 유리돼 일부 경제학자의 전유물이나 지적 유희 대상으로 전락한 경제라는 학문을 생산과 경제 활동의 주역인 시민에게 되돌리려는 기획이다.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 경제학)는 "내용은 쉽고 말투는 순하지만 내 책 중 가장 래디컬하다"고 스스로 평한다. 무슨 뜻일까. 지금까지 장하준은 세계에 획일적으로 강요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경제의 역사를 돌아보면 나라마다 사회 구조와 발전 단계에 맞는 경제 정책이 따로 있었음을 입증하거나('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주류 경제학의 주장에 어떤 허점들이 있는지 논파('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하는 데 힘을 쏟았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는 더 근원으로 파고들어 신자유주의를 부추긴 주류 경제학 자체의 사고 구조와 이론적 문제점을 파헤친다. 한 마디로 주류 경제학이 세뇌한 경제학의 정의와 개념부터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경제학 교과서들과 많은 경제학자가 주장하던 관점을 뒤집고 근본부터 재정립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
장 교수는 먼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지적 오만에 빠져있다고 질타한다. 장하준이 보기에는 제 할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제학이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러한 착각와 오만은 현재 경제학계의 주류를 차지한 신고전학파가 경제학을 규정하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신고전파는 경제학을 '희소성을 지닌 수단과 목적 사이의 관계로서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접근법을 모든 세상 일에 적용한다. 신고전파가 전제하는 합리적 인간관, 경제의 다기한 영역 가운데 오로지 소비 및 교환을 중심에 둔 접근법은 경제를 파악하는 수많은 방법론이나 도구 중에 하나일 뿐인데, 이 도구를 물리학 법칙처럼 여기다 보니 도구를 이용해 다뤄야 할 대상을 오히려 도구에 맞추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는 격언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장하준은 도구는 도구일 뿐, 경제학 자체는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의미의 과학이 아니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더 흥미로운 점은 장하준이 신고전학파에 대한 비판에서 나아가 그간 비주류로 치부됐으나 사실은 경제사의 국면마다 현실 필요에 부응해 마땅한 역할을 수행해 온 여러 경제학 방법론을 소개하고 그들의 가치를 재확인함으로써 철없는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신고전학파를 또래 아이의 일원으로 돌려보낸다는 점이다. 1부 4장 '백화제방'이 그 내용이다. 9개 주요 경제학파의 장단점과 한계, 역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읽다 보면, 신고전학파가 누려 온 그간의 위세가 학문적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에 따른 것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김희정 옮김, 496쪽, 1만6800원,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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