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 “일단 저지르자”가 올해 목표였던 배우 천우희(27)는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로 크게 일을 쳤다. 덤덤한 표정에서 풍기는 슬픔에 가득 찬 눈빛에 세계가 주목했으며 프랑스 영화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는 “천우희 팬”을 자청했다.
영화 ‘써니’(감독 강형철)에서 본드에 취해 흐리멍덩한 눈으로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내뱉던 ‘본드걸’의 강렬한 연기와는 사뭇 다른 충격이다.
천우희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한 여자고등학교 연극부가 전부일 정도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살면서 큰 반항을 하거나 말썽도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매주 주말이면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향하는” 착한 딸이다. 굴곡 없는 삶과 단란한 가정과는 달리 영화 속 천우희는 어린 나이에 세상의 편견을 견뎌냈다.
“배우에게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죠. 하지만 겪지 않은 일을 연기하는 순간이 더 많을 거예요. 똑같은 부분은 없더라도 공감하려고 했죠. 모든 여자가 겪었을법한 수치심을 극대화해 ‘한공주’에 몰입하려고 했어요. 또 불행한 일을 겪고 난 후 느끼는 감정의 본질에 충실히 하려고 했죠. 어떤 인물에게 감정을 대입하기보다는 내가 공주였다면 어떤 기분일지를 많이 생각했어요.”
천우희는 영화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쫓겨나듯 다른 학교로 전학 온 ‘한공주’를 연기한다. 의지할 사람도, 마음 편히 머물 집도 없다. 그러다 알게 된 새로운 친구와 함께 노래하며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애쓰지만, 피의자 부모들이 학교로 몰려와 또 쫓겨나듯 새로운 곳으로 도망치게 된다. 덤덤한 표정에 어린 슬픈 눈이 폭발하는 감정연기보다 더 밀도 있게 다가온다.
“보이는 연기를 하면 관객들도 눈으로만 제 연기를 볼 것 같았어요. 내가 마음으로 연기하면 모든 걸 다 보지 않을까 싶었죠. 감정적으로만 표현했다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그렇기에 표정이 아닌 눈으로 연기하려고 했고요. 괴로웠지만 힘들지는 않았어요. 고통스러우면서도 더 파고 싶었거든요. 그 과정을 즐겼던 것 같아요.”
심리적으로는 답답하고 힘들었다. “비슷한 일을 겪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정직함을 무기로 내세웠다. “밑바닥에 깔렸지만 표출할 수 없는 공주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연기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소용돌이가 쳤고 억울하고 분노도 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시기를 지내고 나니 표정과 감정을 지울 수 있었죠. 그래도 공주는 슬퍼 보였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첫 회부터 마흔세 명의 고등학생들에게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배우가 그 느낌을 알고서 촬영을 시작하길 바랐다”는 이수진 감독의 의도다. 잔인하다. 하지만 천우희는 “감독님의 의도를 파악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태연해했다. “촬영을 끝냈더니 온몸에 피멍이 들었어요. 온종일 그 장면만 촬영했거든요. 엄마가 ‘전쟁 영화 찍고 왔니?’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도 각오를 했던 부분
이라 경건하게 촬영했어요.”
“오히려 한강에서 수영하는 신이 힘들었죠. 10월쯤 촬영했는데 비도 오고 산속이었고 물도 얼음장같이 차가웠어요. 저도 힘들지만, 대역 배우가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입술이 파랬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나요. 죄송했죠”라는 마음이다.
촬영을 다 끝내고는 열병을 앓았다. 하루 3~4시간만 자면서 촬영했던 터라 체력적·정신적으로 지쳤다. “초 집중하고 단기간에 찍었던 게 병이 났다. 일주일 동안 감기몸살을 정말 크게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한공주는 전환점이 된 작품이에요. 스물여섯 살 때 ‘계속 배우를 해도 될까?’ 걱정이 됐죠, 배우로서 자질이 있는지 걱정이 들면서 조급해졌고요. ‘써니’ 다음에 작품이 없었어요. 하고 싶은 만큼 연기로 발현되지 않았으니 실망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자신을 탓했죠. 일로도 성인으로도 자리 잡지 못해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편인데 그때 처음 슬럼프를 겪었어요. 그러다 ‘한공주’를 만나며 의지가 됐어요. 많은 면에서 성숙해진 것 같아요.”
그런 공주가 이 세상과 잘 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살면서 분명히 어려운 점이 있을 거예요. 불현듯 과거가 생각이 나면 괴롭기도 하겠죠.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email protected]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72호(4월14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영화 ‘써니’(감독 강형철)에서 본드에 취해 흐리멍덩한 눈으로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내뱉던 ‘본드걸’의 강렬한 연기와는 사뭇 다른 충격이다.
천우희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한 여자고등학교 연극부가 전부일 정도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살면서 큰 반항을 하거나 말썽도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매주 주말이면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향하는” 착한 딸이다. 굴곡 없는 삶과 단란한 가정과는 달리 영화 속 천우희는 어린 나이에 세상의 편견을 견뎌냈다.
“배우에게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죠. 하지만 겪지 않은 일을 연기하는 순간이 더 많을 거예요. 똑같은 부분은 없더라도 공감하려고 했죠. 모든 여자가 겪었을법한 수치심을 극대화해 ‘한공주’에 몰입하려고 했어요. 또 불행한 일을 겪고 난 후 느끼는 감정의 본질에 충실히 하려고 했죠. 어떤 인물에게 감정을 대입하기보다는 내가 공주였다면 어떤 기분일지를 많이 생각했어요.”
천우희는 영화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쫓겨나듯 다른 학교로 전학 온 ‘한공주’를 연기한다. 의지할 사람도, 마음 편히 머물 집도 없다. 그러다 알게 된 새로운 친구와 함께 노래하며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애쓰지만, 피의자 부모들이 학교로 몰려와 또 쫓겨나듯 새로운 곳으로 도망치게 된다. 덤덤한 표정에 어린 슬픈 눈이 폭발하는 감정연기보다 더 밀도 있게 다가온다.
“보이는 연기를 하면 관객들도 눈으로만 제 연기를 볼 것 같았어요. 내가 마음으로 연기하면 모든 걸 다 보지 않을까 싶었죠. 감정적으로만 표현했다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그렇기에 표정이 아닌 눈으로 연기하려고 했고요. 괴로웠지만 힘들지는 않았어요. 고통스러우면서도 더 파고 싶었거든요. 그 과정을 즐겼던 것 같아요.”
심리적으로는 답답하고 힘들었다. “비슷한 일을 겪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정직함을 무기로 내세웠다. “밑바닥에 깔렸지만 표출할 수 없는 공주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연기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소용돌이가 쳤고 억울하고 분노도 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시기를 지내고 나니 표정과 감정을 지울 수 있었죠. 그래도 공주는 슬퍼 보였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첫 회부터 마흔세 명의 고등학생들에게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배우가 그 느낌을 알고서 촬영을 시작하길 바랐다”는 이수진 감독의 의도다. 잔인하다. 하지만 천우희는 “감독님의 의도를 파악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태연해했다. “촬영을 끝냈더니 온몸에 피멍이 들었어요. 온종일 그 장면만 촬영했거든요. 엄마가 ‘전쟁 영화 찍고 왔니?’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도 각오를 했던 부분
이라 경건하게 촬영했어요.”
“오히려 한강에서 수영하는 신이 힘들었죠. 10월쯤 촬영했는데 비도 오고 산속이었고 물도 얼음장같이 차가웠어요. 저도 힘들지만, 대역 배우가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입술이 파랬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나요. 죄송했죠”라는 마음이다.
촬영을 다 끝내고는 열병을 앓았다. 하루 3~4시간만 자면서 촬영했던 터라 체력적·정신적으로 지쳤다. “초 집중하고 단기간에 찍었던 게 병이 났다. 일주일 동안 감기몸살을 정말 크게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한공주는 전환점이 된 작품이에요. 스물여섯 살 때 ‘계속 배우를 해도 될까?’ 걱정이 됐죠, 배우로서 자질이 있는지 걱정이 들면서 조급해졌고요. ‘써니’ 다음에 작품이 없었어요. 하고 싶은 만큼 연기로 발현되지 않았으니 실망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자신을 탓했죠. 일로도 성인으로도 자리 잡지 못해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편인데 그때 처음 슬럼프를 겪었어요. 그러다 ‘한공주’를 만나며 의지가 됐어요. 많은 면에서 성숙해진 것 같아요.”
그런 공주가 이 세상과 잘 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살면서 분명히 어려운 점이 있을 거예요. 불현듯 과거가 생각이 나면 괴롭기도 하겠죠.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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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72호(4월14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