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뉴시스】김도란 기자 = 1년 전 4월 1일, 세상을 경악케했던 오원춘 사건이 경기 수원 지동의 한 주택가에서 발생했다. 조용했던 주택가는 순식간에 '위험한 동네'로 변해버렸고, 주민들은 아직도 그날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다.
26일 오후 7시께 지동 주택가 도로. 해가 지면서 어둑어둑해지자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다른 동네 같으면 저녁장사가 한창일 시간이지만, 상점 주인들은 서둘러 가게 안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원춘 사건 이후 생긴 변화다. 지동에선 호프집 등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상점이 안전문제 등을 이유로 문을 일찍 닫는다.
꽃집을 운영하는 김모(40·여)씨는 오원춘 사건 후 자연스럽게 퇴근이 빨라졌다"며 "늦게까지 가게안에 혼자 있기가 왠지 무섭다"고 말했다.
자동차용품점 직원 한모(31)씨는 "아무래도 늦게 귀가하던 여성이 변을 당한 곳이라 그런지 7~8시가 지나면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가게를 열고 있어봤자 손님이 없다"고 했다.
불이 켜져있던 상점들의 불이 꺼지면서 주택가는 더욱 어두컴컴해졌고, 간간히 길을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학원에서 딸을 데리고 귀가하는 중이라던 주부 정모(35·여)씨는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등하굣길에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매일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있다. 오늘은 다른 볼일을 보고 오느라 평상시보다 늦은 편"이라며 딸의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사건 후 시는 지동 일대를 '시민안전특구'로 지정하고 가로등과 CCTV를 확충했지만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진 못했다.
8시께가 지나 완전히 어두워진 거리 곳곳에 가로등 불이 들어왔지만, 구불구불 이어진 주택가 뒷골목까진 미치지 못했다. 인적 없는 거리 한켠에선 길고양이만이 쓰레기 더미를 뒤졌다.
26일 오후 7시께 지동 주택가 도로. 해가 지면서 어둑어둑해지자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다른 동네 같으면 저녁장사가 한창일 시간이지만, 상점 주인들은 서둘러 가게 안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원춘 사건 이후 생긴 변화다. 지동에선 호프집 등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상점이 안전문제 등을 이유로 문을 일찍 닫는다.
꽃집을 운영하는 김모(40·여)씨는 오원춘 사건 후 자연스럽게 퇴근이 빨라졌다"며 "늦게까지 가게안에 혼자 있기가 왠지 무섭다"고 말했다.
자동차용품점 직원 한모(31)씨는 "아무래도 늦게 귀가하던 여성이 변을 당한 곳이라 그런지 7~8시가 지나면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가게를 열고 있어봤자 손님이 없다"고 했다.
불이 켜져있던 상점들의 불이 꺼지면서 주택가는 더욱 어두컴컴해졌고, 간간히 길을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학원에서 딸을 데리고 귀가하는 중이라던 주부 정모(35·여)씨는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등하굣길에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매일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있다. 오늘은 다른 볼일을 보고 오느라 평상시보다 늦은 편"이라며 딸의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사건 후 시는 지동 일대를 '시민안전특구'로 지정하고 가로등과 CCTV를 확충했지만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진 못했다.
8시께가 지나 완전히 어두워진 거리 곳곳에 가로등 불이 들어왔지만, 구불구불 이어진 주택가 뒷골목까진 미치지 못했다. 인적 없는 거리 한켠에선 길고양이만이 쓰레기 더미를 뒤졌다.

주민 정모(56)씨는 "큰길 주변만 밝아졌을 뿐 뒷골목은 여전한데다, 동네에 워낙 오래된 건물과 골목이 많아 크게 안심이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오원춘의 집 대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졌다. 그러나 깨진 유리창과 뜯겨진 방충망, 굳게 닫힌 철문은 1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 불과 2~3미터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40대 주부는 "매일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 앞을 지나다니며 사는 게 어떤 기분일 것 같냐"며 "애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이사를 가고 싶은데, 집이 나가질 않는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오원춘의 집과 같은 건물을 임대해 쓰는 50대 남성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건현장을) 손가락질 하거나,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걸어간다"며 "특별히 해가 있는건 아니지만 기분이 찝찝하긴 하다"고 말했다.
이사가는 사람은 많은 데 오는 사람은 없어 빈집도 늘었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경기는 침체됐고, 주민들 사이에선 '중국인 거부 반응'이 생겼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박모(43)씨는 "인터넷에 '지동'이라고 검색만 하면 온갖 섬뜩한 단어들이 튀어나오는 데 누가 살고 싶어하겠냐"며 "사건 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더니 지금은 상가·주택 합처 공실률이 10%는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부동산중개업자는 "다른 데보다 시세가 저렴하고 빈 방도 많아 중국인들이 방을 구하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집주인들이 중국인이나 조선족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계약을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지동에서만 30년을 살았다는 김모(60)씨는 "끔찍한 사건이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놔서 그렇지, 이래뵈도 예전엔 주민들끼리 단합도 잘되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며 한탄했다.
[email protected]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오원춘의 집 대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졌다. 그러나 깨진 유리창과 뜯겨진 방충망, 굳게 닫힌 철문은 1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 불과 2~3미터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40대 주부는 "매일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 앞을 지나다니며 사는 게 어떤 기분일 것 같냐"며 "애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이사를 가고 싶은데, 집이 나가질 않는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오원춘의 집과 같은 건물을 임대해 쓰는 50대 남성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건현장을) 손가락질 하거나,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걸어간다"며 "특별히 해가 있는건 아니지만 기분이 찝찝하긴 하다"고 말했다.
이사가는 사람은 많은 데 오는 사람은 없어 빈집도 늘었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경기는 침체됐고, 주민들 사이에선 '중국인 거부 반응'이 생겼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박모(43)씨는 "인터넷에 '지동'이라고 검색만 하면 온갖 섬뜩한 단어들이 튀어나오는 데 누가 살고 싶어하겠냐"며 "사건 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더니 지금은 상가·주택 합처 공실률이 10%는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부동산중개업자는 "다른 데보다 시세가 저렴하고 빈 방도 많아 중국인들이 방을 구하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집주인들이 중국인이나 조선족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계약을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지동에서만 30년을 살았다는 김모(60)씨는 "끔찍한 사건이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놔서 그렇지, 이래뵈도 예전엔 주민들끼리 단합도 잘되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며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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