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한국영화 ‘제목 짓기’와 관련해 흥미로운 칼럼이 등장했다. 영화평론가이자 소설가로도 활동 중인 듀나의 엔터미디어 8월27일자 칼럼 ‘영화제목 카피의 노골적 부작용’이다. 한국영화와 드라마들이 모두 해외 영화나 소설 등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짚은 칼럼이다.
칼럼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작품의 제목을 카피 하는 건 당연한 습관이 되어 있다. 최근작들만 봐도 [여인의 향기], [반짝반짝 빛나는], [당신이 잠든 사이], [내 사랑 내 곁에] 모두가 카피다. 이 숫자는 드라마 세계의 실장님 숫자만큼이나 병적이다.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차태현의 차기작이라는 사극 코미디 제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란다.”라며 “왜 이러는 걸까. 업계 사람들은 익숙한 제목으로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각인 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하는데, 여기에 의미 있는 통계 연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보나마나 이 변명도 질문이 나온 다음에 졸속으로 만들어냈다가 나중에 그들 스스로 믿어버린 게 뻔하다. 카피 제목의 유용성은 단 한 번도 입증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게으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제 정보시대를 살고 있고, 정보시대에는 따로 지켜야 할 에티켓과 삶의 방식이 있다. 사람들의 지식 접근을 방해하고 혼란에 빠트리며 남의 노력에 생각 없이 기생하려는 이 게으른 습관은 결코 여기에 맞지 않는다.”며 “어이가 없는 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손쉽기 짝이 없다는 거다. 습관에 끌려가는 대신 그냥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면 된다.”고 일렀다.
그럼 과연 한국영화가 해외영화 또는 소설 제목을 카피해온 사례는 어느 정도나 될까. 지난 10년간 자료를 찾아본 결과,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원 나이트 스탠드’ 같은 외래 관용구나 ‘그녀에게’ ‘실종’ ‘괴물’ ‘해바라기’처럼 상용적 단어를 사용해 딱히 카피라 보기 힘든 제목, ‘키다리 아저씨’ ‘인어공주’ ‘주홍글씨’ ‘어린왕자’처럼 이미 국내에서도 관용화 된 표현들을 모두 제외하고서도 그렇다. 차례로 짚어보자.
2011년 상반기: * 적과의 동침(쇼박스)-1991년작 미국영화 ‘Sleeping With the Enemy’의 국내개봉제목. * 애정만세(KT&G상상마당)-1994년작 대만영화 ‘愛情萬歲’의 국내개봉제목. * 모비딕(쇼박스)-1851년작 허먼 멜빌 소설제목.
2010년: * 나쁜 놈이 더 잘 잔다(키노아이DMC)-1960년작 일본영화 ‘惡ぃ奴ほどよく眠る’의 직역제목. * 돌이킬 수 없는(케이디미디어)-2002년작 프랑스영화 ‘Irréversible’의 국내개봉제목.
2008년: * 무방비도시(CJ엔터테인먼트)-1945년작 이태리영화 ‘Roma, città aperta’의 국내비디오출시제목. * 마이 뉴 파트너(엠플러스픽쳐스)-1984년작 프랑스영화 ‘Les ripoux’의 국내개봉제목. * 당신이 잠든 사이에(엠플러스픽쳐스)-1995년작 미국영화 ‘While You Were Sleeping’의 국내개봉제목. * 소년은 울지 않는다(스튜디오2.0)-1999년작 미국영화 ‘Boys Don't Cry’의 국내개봉제목. * 뜨거운 것이 좋아(시네마서비스)-1960년작 미국영화 ‘Some Like It Hot’의 국내개봉제목.
2007년: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스폰지)-1967년작 미국영화 ‘Bonnie and Clyde’의 국내개봉제목. * 헨젤과 그레텔(CJ엔터테인먼트)-그림형제 동화제목.
2006년: * 비열한 거리(CJ엔터테인먼트)-1973년작 미국영화 ‘Mean Streets’의 국내비디오출시제목. * 열혈남아(CJ엔터테인먼트)-1988년작 홍콩영화 ‘旺角卡門’의 국내개봉제목.
2005년: * 달콤한 인생(CJ엔터테인먼트)-1960년작 이태리영화 ‘La Dolce Vita’의 국내비디오출시제목. * 분홍신-1948년작 영국영화 ‘The Red Shoes’의 국내개봉제목. * 용서받지 못한 자(청어람)-1992년작 미국영화 ‘Unforgiven’의 국내개봉제목.
2003년: * 위대한 유산(CJ엔터테인먼트)-1861년작 찰스 디킨즈 소설제목.
2002년: * 공공의 적(시네마서비스)-1931년작 미국영화 ‘The Public Enemy’의 직역제목(흔히 쓰이는 상용구로 여겨지지만, 영화 개봉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거의 안 쓰던 표현이었다). * 복수는 나의 것(CJ엔터테인먼트)-1979년작 일본영화 ‘復讐するは我にあり’의 직역제목. * 품행제로(청어람)-1933년작 프랑스영화 ‘Zero De Conduite’의 직역제목.
이밖에 해외영화 제목을 조금씩 손봐서 내놓는 경우까지 합한다면 사실상 카피제목은 부지기수가 된다. 예컨대 ‘라듸오 데이즈’는 미국영화 ‘라디오 데이즈’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미국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이태리영화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직역인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을 조금씩 변형한 것이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도 비슷한 선상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각각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을 변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뻔뻔스러운 해외영화제목 카피 트렌드는 대체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되짚어보면 1994년작 ‘게임의 법칙’ 정도를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영화감독 장 르느와르의 클래식 ‘La règle du jeu’, 즉 ‘게임의 규칙’을 살짝 변형한 제목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인 1995년, 1975년작 미국영화 ‘Dog Day Afternoon’을 ‘액면 그대로’ 번역한 제목인 ‘개 같은 날의 오후’란 영화가 또 등장했다. ‘Dog Day Afternoon’는 원 의미대로 국내에선 ‘뜨거운 날의 오후’로 비디오출시 돼있었는데, 이 역시 제목을 살짝 변형한 형태로 봐야한다.
이후 위다의 소설제목을 차용한 ‘플란더스의 개’ 등이 간간이 등장하다 ‘공공의 적’ ‘복수는 나의 것’ ‘품행제로’ 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2002년 이후부터 일종의 트렌드로서 자리 잡았다고 봐야한다.
이 같은 카피가 난무하게 된 까닭에 대해 의견은 다양하다. 듀나처럼 “그냥 게으를 뿐”이란 입장도 있지만, 찬찬히 따지고 보면 꼭 그렇다고 만도 보기 힘들다.
예컨대 1990년대 중반 등장했던 2편의 카피 제목은 당시 막 생성되기 시작하던 영화마니아층을 의식한 결과란 의견이 존재한다. 지금과 달리 당시 PC통신 영화동호회 등에서 활동하던 영화마니아층은 영화관련 여론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주류 미디어들조차 PC통신 영화동호회 게시판을 훔쳐보며 기사를 썼으니 말 다했다. 결국 마니아층이나 알만한 클래식영화 제목을 변형해 붙임으로써 이들의 관심을 끌고, 연쇄적으로 미디어의 관심도 끌려는 전략이었단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들어서 이뤄진 다발적 카피 현상은? 반 정도는 듀나 말처럼 “그냥 게으를 뿐”일 수 있겠지만, 나머지 반 정도는 나름대로 “익숙한 제목으로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각인 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었을 수 있다. 확실히 21세기 들어 한국영화 제목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향은 ‘입에 착 달라붙는 문구’를 애용해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입에 착 달라붙는 문구’란 어디선가 들어봤거나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관용구로 해석돼왔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우리 집에 왜 왔니’ ‘님은 먼 곳에’ 등 유명 노래가사나 시 구절을 가져온 제목, ‘인정사정 볼것없다’ ‘피도 눈물도 없이’ ‘주먹이 운다’ 등 익숙한 관용구를 가져온 제목들이 예다. 확실히 이런 제목들은 기억도 쉽고, 입에 착 달라붙어 입 전파도 수월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옛 해외영화 제목을 카피한 경우들 중 일부는 해당영화 등장 후 그 제목 자체가 한국사회에서 관용적으로 굳어진 것들이 많다. ‘적과의 동침’이 한 예다. 종합일간지 정치면에서까지 제목으로 뽑히곤 한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등도 보다 가벼운 주간지, 월간지 등에선 종종 볼 수 있는 관용구가 됐다. ‘열혈남아’는 그보다 더 다양한 범위에서 사용된다.
결국 현 영화 주 소비층인 20대는 해당영화 자체는 모르더라도 그 제목이 관용적으로 굳어져 사용된 형태는 자주 봐온 것이 맞으니, “익숙한 제목으로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각인 시킬 수 있다”는 입장도 전반적 영화 제목짓기 트렌드 내에서 딱히 이해하기 힘든 설명은 아니란 얘기다.
이제 이 같은 카피 제목짓기의 폐단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위 칼럼에서 듀나는 다음과 같이 문제점을 짚었다.
“카피 제목은 우리가 사는 디지털 환경 안에서 일종의 공해가 된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를 검색하려 ‘Open City’를 검색한 사람들은 이상기의 2008년 영화 [무방비도시]의 자료까지 한꺼번에 얻는다. 구글에서 한국어로 ‘무방비도시’를 검색한 사람들은 첫 페이지에서 로베르토 로셀리니 영화에 대한 자료를 겨우 하나밖에 얻지 못한다. 이 정도면 거의 도둑질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정보공해 외에도 문제점은 더 있다. 원제에서 직역된 국내개봉제목을 카피한 영화들은 해외진출 시 영어제목을 고쳐야만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대로 내보냈다간 소송을 당할 수 있고, 최소한도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부랴부랴 제목을 고쳐 정하다보니 그들 영화의 영어제목은 꽤나 기괴한 형태로 흐르게 됐다.
예컨대 ‘복수는 나의 것’을 영작하면 자연스럽게 ‘Vengeance is Mine’이 되지만, 그 제목은 이미 일본영화가 써먹었으니 결국 ‘Sympathy for Mr. Vengeance’로 정해졌다. ‘복수 씨를 위한 동정’이란 해괴한 의미다. 마찬가지로 ‘비열한 거리’는 ‘A Dirty Carnival’이 됐고, ‘적과의 동침’은 ‘In Love and the War’, ‘돌이킬 수 없는’은 ‘No Doubt’,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Once Upon a Time in Seoul’,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What Happened Last Night’이 됐다. 다들 조금씩 희한하거나 뭔가 맞지 않는 느낌이 됐다. 심지어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본래 일본영화 영어제목이 ‘The Bad Sleep Well’인데 ‘A Good Night Sleep for the Bad’라는, 문법적으로 맞는지조차 의심스런 제목이 돼버렸다.
이런 식이면 문제가 커진다. 인터넷 영화스쿠프사이트 에인트잇쿨뉴스 운영자 해리 놀즈가 2003년 베스트 10 선정과정에서 ‘복수는 나의 것’을 당당 1위로 꼽았을 때, 미국 네티즌들 반응은 거의 폭소 수준이었다. 무슨 그런 제목이 다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복수 씨를 위한 동정’이란 제목을 들으면 한국에서라도 파안대소가 터져 나올 법하긴 하다. 거기다 그 제목에 맞춰 ‘친절한 금자씨’도 ‘Sympathy for Lady Vengeance’ 즉 ‘복수 여사를 위한 동정’으로 만들어져버렸다. 해외 영화관계자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희한한 제목들을 지닌 영화가 당장 해외 DVD샵의 선반에 올려져있다면 일반대중은 제목만 보고도 기피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모든 트렌드의 시초였던 ‘게임의 법칙’에서부터도 드러난 바 있다. 원제에서 ‘규칙’을 ‘법칙’으로 살짝 바꿔놓고, 같은 제목으로 보이지 않도록 영어제목도 ‘Law of the Game’이라고 만들어놓았는데, 문제는 이것이 명확히 틀린 표현이었다는데 있다. 상식적으로 ‘게임’에는 ‘법(Law)’이 있을 리 없다. ‘게임’에 적용될 수 있는 건 ‘규칙(Rule)’이다. 애초 한국어로도 틀린 표현을 영어로 옮기려다보니 오류가 생겨, 미국 영화데이터베이스 사이트인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www.imdb.com)에서도 ‘게임의 법칙’ 영어제목을 ‘Rule of the Game’이라고 ‘알아서 맞게’ 번역해놓고 있는 실정이다.
끝으로 해외사정을 알아보자. ‘꿈의 공장’ 할리우드가 위치한 미국에서 이 같은 제목 카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래 가사나 제목을 제목으로 사용하려 해도 반드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며, 심지어 특정영화의 유명대사를 가져와도 마찬가지로 사용료를 내야한다. 간혹 제목이 같은 영화도 있는데, 그런 경우 역시 이전 영화에 반드시 제목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줘 합의를 봐야한다.
심지어 미국에선 제목이 비슷하기만 해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1997년 소니 픽쳐스는 디멘션 필름이 제작한 ‘스크림(Scream)’ 탓에 자신들이 11개월 먼저 공개한 ‘스크리머스(Screamers)’가 혼동을 일으켜 손해를 보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사건은 법정 밖에서 합의를 보는 것으로 끝났지만, 대히트를 거둬 같은 제목으로 속편들을 만들어내야 했던 ‘스크림’ 측에서 거액의 합의금을 건네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도 ‘적과의 동침’ ‘당신이 잠든 사이에’ ‘소년은 울지 않는다’ ‘비열한 거리’ 등 미국영화 제목을 직역한 제목들이 ‘발각’됐을 경우 할리우드 측에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할까? 할리우드까지 갈 것도 없이 국내 판권계약을 갖고 있는 저작권자들부터 들고 일어날 수 있다. 이미 같은 제목을 먼저 사용한 미국영화들이 한국에서 DVD 등 2차 시장에 진출해있는 상황이다. 혼동을 일으켜 손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있다.
물론 한국에선 2차 시장 다 무너졌으니 걱정할 것 없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서도 같은 2차 시장 입장에서 연간 2조 원대 규모의 인터넷 웹하드 시장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일부 업로더들은 위 ‘같은 제목’ 영화들 중 실제 저작권자와 제대로 계약 맺은 파일들을 웹하드에 올리고 있다. 이 정도면 위험성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슷한 사례가 역전돼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발생한 일도 있다. 지난 1997년 공개된 올리버 감독작 ‘U-턴(U-Turn)’의 원작소설 제목은 ‘Stray Dogs’였다. 제작 중 스톤은 원작소설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려 했으나 일본영화계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에게서 우려의 표명이 전달됐다. 자신이 1949년 제작한 영화 ‘野良犬’의 영어제목이 ‘Stray Dog’이니 혼동이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거장에 대한 존경심 때문인지 실제 소송이 가능한 상황이란 판단에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됐건 스톤은 제목을 ‘U-턴’으로 정하고 충돌을 피했다.
한국 영화계 입장에선 상상력의 부족, 독창성의 결여 등 고상한 부분을 논하기 이전, 소송부터 걱정해야 할 상황이란 얘기다.
대중문화평론가 [email protected]
한국영화 ‘제목 짓기’와 관련해 흥미로운 칼럼이 등장했다. 영화평론가이자 소설가로도 활동 중인 듀나의 엔터미디어 8월27일자 칼럼 ‘영화제목 카피의 노골적 부작용’이다. 한국영화와 드라마들이 모두 해외 영화나 소설 등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짚은 칼럼이다.
칼럼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작품의 제목을 카피 하는 건 당연한 습관이 되어 있다. 최근작들만 봐도 [여인의 향기], [반짝반짝 빛나는], [당신이 잠든 사이], [내 사랑 내 곁에] 모두가 카피다. 이 숫자는 드라마 세계의 실장님 숫자만큼이나 병적이다.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차태현의 차기작이라는 사극 코미디 제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란다.”라며 “왜 이러는 걸까. 업계 사람들은 익숙한 제목으로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각인 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하는데, 여기에 의미 있는 통계 연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보나마나 이 변명도 질문이 나온 다음에 졸속으로 만들어냈다가 나중에 그들 스스로 믿어버린 게 뻔하다. 카피 제목의 유용성은 단 한 번도 입증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게으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제 정보시대를 살고 있고, 정보시대에는 따로 지켜야 할 에티켓과 삶의 방식이 있다. 사람들의 지식 접근을 방해하고 혼란에 빠트리며 남의 노력에 생각 없이 기생하려는 이 게으른 습관은 결코 여기에 맞지 않는다.”며 “어이가 없는 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손쉽기 짝이 없다는 거다. 습관에 끌려가는 대신 그냥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면 된다.”고 일렀다.
그럼 과연 한국영화가 해외영화 또는 소설 제목을 카피해온 사례는 어느 정도나 될까. 지난 10년간 자료를 찾아본 결과,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원 나이트 스탠드’ 같은 외래 관용구나 ‘그녀에게’ ‘실종’ ‘괴물’ ‘해바라기’처럼 상용적 단어를 사용해 딱히 카피라 보기 힘든 제목, ‘키다리 아저씨’ ‘인어공주’ ‘주홍글씨’ ‘어린왕자’처럼 이미 국내에서도 관용화 된 표현들을 모두 제외하고서도 그렇다. 차례로 짚어보자.
2011년 상반기: * 적과의 동침(쇼박스)-1991년작 미국영화 ‘Sleeping With the Enemy’의 국내개봉제목. * 애정만세(KT&G상상마당)-1994년작 대만영화 ‘愛情萬歲’의 국내개봉제목. * 모비딕(쇼박스)-1851년작 허먼 멜빌 소설제목.
2010년: * 나쁜 놈이 더 잘 잔다(키노아이DMC)-1960년작 일본영화 ‘惡ぃ奴ほどよく眠る’의 직역제목. * 돌이킬 수 없는(케이디미디어)-2002년작 프랑스영화 ‘Irréversible’의 국내개봉제목.
2008년: * 무방비도시(CJ엔터테인먼트)-1945년작 이태리영화 ‘Roma, città aperta’의 국내비디오출시제목. * 마이 뉴 파트너(엠플러스픽쳐스)-1984년작 프랑스영화 ‘Les ripoux’의 국내개봉제목. * 당신이 잠든 사이에(엠플러스픽쳐스)-1995년작 미국영화 ‘While You Were Sleeping’의 국내개봉제목. * 소년은 울지 않는다(스튜디오2.0)-1999년작 미국영화 ‘Boys Don't Cry’의 국내개봉제목. * 뜨거운 것이 좋아(시네마서비스)-1960년작 미국영화 ‘Some Like It Hot’의 국내개봉제목.
2007년: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스폰지)-1967년작 미국영화 ‘Bonnie and Clyde’의 국내개봉제목. * 헨젤과 그레텔(CJ엔터테인먼트)-그림형제 동화제목.
2006년: * 비열한 거리(CJ엔터테인먼트)-1973년작 미국영화 ‘Mean Streets’의 국내비디오출시제목. * 열혈남아(CJ엔터테인먼트)-1988년작 홍콩영화 ‘旺角卡門’의 국내개봉제목.
2005년: * 달콤한 인생(CJ엔터테인먼트)-1960년작 이태리영화 ‘La Dolce Vita’의 국내비디오출시제목. * 분홍신-1948년작 영국영화 ‘The Red Shoes’의 국내개봉제목. * 용서받지 못한 자(청어람)-1992년작 미국영화 ‘Unforgiven’의 국내개봉제목.
2003년: * 위대한 유산(CJ엔터테인먼트)-1861년작 찰스 디킨즈 소설제목.
2002년: * 공공의 적(시네마서비스)-1931년작 미국영화 ‘The Public Enemy’의 직역제목(흔히 쓰이는 상용구로 여겨지지만, 영화 개봉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거의 안 쓰던 표현이었다). * 복수는 나의 것(CJ엔터테인먼트)-1979년작 일본영화 ‘復讐するは我にあり’의 직역제목. * 품행제로(청어람)-1933년작 프랑스영화 ‘Zero De Conduite’의 직역제목.
이밖에 해외영화 제목을 조금씩 손봐서 내놓는 경우까지 합한다면 사실상 카피제목은 부지기수가 된다. 예컨대 ‘라듸오 데이즈’는 미국영화 ‘라디오 데이즈’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미국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이태리영화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직역인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을 조금씩 변형한 것이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도 비슷한 선상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각각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을 변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뻔뻔스러운 해외영화제목 카피 트렌드는 대체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되짚어보면 1994년작 ‘게임의 법칙’ 정도를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영화감독 장 르느와르의 클래식 ‘La règle du jeu’, 즉 ‘게임의 규칙’을 살짝 변형한 제목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인 1995년, 1975년작 미국영화 ‘Dog Day Afternoon’을 ‘액면 그대로’ 번역한 제목인 ‘개 같은 날의 오후’란 영화가 또 등장했다. ‘Dog Day Afternoon’는 원 의미대로 국내에선 ‘뜨거운 날의 오후’로 비디오출시 돼있었는데, 이 역시 제목을 살짝 변형한 형태로 봐야한다.
이후 위다의 소설제목을 차용한 ‘플란더스의 개’ 등이 간간이 등장하다 ‘공공의 적’ ‘복수는 나의 것’ ‘품행제로’ 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2002년 이후부터 일종의 트렌드로서 자리 잡았다고 봐야한다.
이 같은 카피가 난무하게 된 까닭에 대해 의견은 다양하다. 듀나처럼 “그냥 게으를 뿐”이란 입장도 있지만, 찬찬히 따지고 보면 꼭 그렇다고 만도 보기 힘들다.
예컨대 1990년대 중반 등장했던 2편의 카피 제목은 당시 막 생성되기 시작하던 영화마니아층을 의식한 결과란 의견이 존재한다. 지금과 달리 당시 PC통신 영화동호회 등에서 활동하던 영화마니아층은 영화관련 여론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주류 미디어들조차 PC통신 영화동호회 게시판을 훔쳐보며 기사를 썼으니 말 다했다. 결국 마니아층이나 알만한 클래식영화 제목을 변형해 붙임으로써 이들의 관심을 끌고, 연쇄적으로 미디어의 관심도 끌려는 전략이었단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들어서 이뤄진 다발적 카피 현상은? 반 정도는 듀나 말처럼 “그냥 게으를 뿐”일 수 있겠지만, 나머지 반 정도는 나름대로 “익숙한 제목으로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각인 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었을 수 있다. 확실히 21세기 들어 한국영화 제목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향은 ‘입에 착 달라붙는 문구’를 애용해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입에 착 달라붙는 문구’란 어디선가 들어봤거나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관용구로 해석돼왔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우리 집에 왜 왔니’ ‘님은 먼 곳에’ 등 유명 노래가사나 시 구절을 가져온 제목, ‘인정사정 볼것없다’ ‘피도 눈물도 없이’ ‘주먹이 운다’ 등 익숙한 관용구를 가져온 제목들이 예다. 확실히 이런 제목들은 기억도 쉽고, 입에 착 달라붙어 입 전파도 수월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옛 해외영화 제목을 카피한 경우들 중 일부는 해당영화 등장 후 그 제목 자체가 한국사회에서 관용적으로 굳어진 것들이 많다. ‘적과의 동침’이 한 예다. 종합일간지 정치면에서까지 제목으로 뽑히곤 한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등도 보다 가벼운 주간지, 월간지 등에선 종종 볼 수 있는 관용구가 됐다. ‘열혈남아’는 그보다 더 다양한 범위에서 사용된다.
결국 현 영화 주 소비층인 20대는 해당영화 자체는 모르더라도 그 제목이 관용적으로 굳어져 사용된 형태는 자주 봐온 것이 맞으니, “익숙한 제목으로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각인 시킬 수 있다”는 입장도 전반적 영화 제목짓기 트렌드 내에서 딱히 이해하기 힘든 설명은 아니란 얘기다.
이제 이 같은 카피 제목짓기의 폐단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위 칼럼에서 듀나는 다음과 같이 문제점을 짚었다.
“카피 제목은 우리가 사는 디지털 환경 안에서 일종의 공해가 된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를 검색하려 ‘Open City’를 검색한 사람들은 이상기의 2008년 영화 [무방비도시]의 자료까지 한꺼번에 얻는다. 구글에서 한국어로 ‘무방비도시’를 검색한 사람들은 첫 페이지에서 로베르토 로셀리니 영화에 대한 자료를 겨우 하나밖에 얻지 못한다. 이 정도면 거의 도둑질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정보공해 외에도 문제점은 더 있다. 원제에서 직역된 국내개봉제목을 카피한 영화들은 해외진출 시 영어제목을 고쳐야만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대로 내보냈다간 소송을 당할 수 있고, 최소한도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부랴부랴 제목을 고쳐 정하다보니 그들 영화의 영어제목은 꽤나 기괴한 형태로 흐르게 됐다.
예컨대 ‘복수는 나의 것’을 영작하면 자연스럽게 ‘Vengeance is Mine’이 되지만, 그 제목은 이미 일본영화가 써먹었으니 결국 ‘Sympathy for Mr. Vengeance’로 정해졌다. ‘복수 씨를 위한 동정’이란 해괴한 의미다. 마찬가지로 ‘비열한 거리’는 ‘A Dirty Carnival’이 됐고, ‘적과의 동침’은 ‘In Love and the War’, ‘돌이킬 수 없는’은 ‘No Doubt’,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Once Upon a Time in Seoul’,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What Happened Last Night’이 됐다. 다들 조금씩 희한하거나 뭔가 맞지 않는 느낌이 됐다. 심지어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본래 일본영화 영어제목이 ‘The Bad Sleep Well’인데 ‘A Good Night Sleep for the Bad’라는, 문법적으로 맞는지조차 의심스런 제목이 돼버렸다.
이런 식이면 문제가 커진다. 인터넷 영화스쿠프사이트 에인트잇쿨뉴스 운영자 해리 놀즈가 2003년 베스트 10 선정과정에서 ‘복수는 나의 것’을 당당 1위로 꼽았을 때, 미국 네티즌들 반응은 거의 폭소 수준이었다. 무슨 그런 제목이 다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복수 씨를 위한 동정’이란 제목을 들으면 한국에서라도 파안대소가 터져 나올 법하긴 하다. 거기다 그 제목에 맞춰 ‘친절한 금자씨’도 ‘Sympathy for Lady Vengeance’ 즉 ‘복수 여사를 위한 동정’으로 만들어져버렸다. 해외 영화관계자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희한한 제목들을 지닌 영화가 당장 해외 DVD샵의 선반에 올려져있다면 일반대중은 제목만 보고도 기피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모든 트렌드의 시초였던 ‘게임의 법칙’에서부터도 드러난 바 있다. 원제에서 ‘규칙’을 ‘법칙’으로 살짝 바꿔놓고, 같은 제목으로 보이지 않도록 영어제목도 ‘Law of the Game’이라고 만들어놓았는데, 문제는 이것이 명확히 틀린 표현이었다는데 있다. 상식적으로 ‘게임’에는 ‘법(Law)’이 있을 리 없다. ‘게임’에 적용될 수 있는 건 ‘규칙(Rule)’이다. 애초 한국어로도 틀린 표현을 영어로 옮기려다보니 오류가 생겨, 미국 영화데이터베이스 사이트인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www.imdb.com)에서도 ‘게임의 법칙’ 영어제목을 ‘Rule of the Game’이라고 ‘알아서 맞게’ 번역해놓고 있는 실정이다.
끝으로 해외사정을 알아보자. ‘꿈의 공장’ 할리우드가 위치한 미국에서 이 같은 제목 카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래 가사나 제목을 제목으로 사용하려 해도 반드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며, 심지어 특정영화의 유명대사를 가져와도 마찬가지로 사용료를 내야한다. 간혹 제목이 같은 영화도 있는데, 그런 경우 역시 이전 영화에 반드시 제목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줘 합의를 봐야한다.
심지어 미국에선 제목이 비슷하기만 해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1997년 소니 픽쳐스는 디멘션 필름이 제작한 ‘스크림(Scream)’ 탓에 자신들이 11개월 먼저 공개한 ‘스크리머스(Screamers)’가 혼동을 일으켜 손해를 보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사건은 법정 밖에서 합의를 보는 것으로 끝났지만, 대히트를 거둬 같은 제목으로 속편들을 만들어내야 했던 ‘스크림’ 측에서 거액의 합의금을 건네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도 ‘적과의 동침’ ‘당신이 잠든 사이에’ ‘소년은 울지 않는다’ ‘비열한 거리’ 등 미국영화 제목을 직역한 제목들이 ‘발각’됐을 경우 할리우드 측에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할까? 할리우드까지 갈 것도 없이 국내 판권계약을 갖고 있는 저작권자들부터 들고 일어날 수 있다. 이미 같은 제목을 먼저 사용한 미국영화들이 한국에서 DVD 등 2차 시장에 진출해있는 상황이다. 혼동을 일으켜 손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있다.
물론 한국에선 2차 시장 다 무너졌으니 걱정할 것 없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서도 같은 2차 시장 입장에서 연간 2조 원대 규모의 인터넷 웹하드 시장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일부 업로더들은 위 ‘같은 제목’ 영화들 중 실제 저작권자와 제대로 계약 맺은 파일들을 웹하드에 올리고 있다. 이 정도면 위험성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슷한 사례가 역전돼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발생한 일도 있다. 지난 1997년 공개된 올리버 감독작 ‘U-턴(U-Turn)’의 원작소설 제목은 ‘Stray Dogs’였다. 제작 중 스톤은 원작소설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려 했으나 일본영화계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에게서 우려의 표명이 전달됐다. 자신이 1949년 제작한 영화 ‘野良犬’의 영어제목이 ‘Stray Dog’이니 혼동이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거장에 대한 존경심 때문인지 실제 소송이 가능한 상황이란 판단에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됐건 스톤은 제목을 ‘U-턴’으로 정하고 충돌을 피했다.
한국 영화계 입장에선 상상력의 부족, 독창성의 결여 등 고상한 부분을 논하기 이전, 소송부터 걱정해야 할 상황이란 얘기다.
대중문화평론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