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추리물의 스릴, 전쟁영화의 박진감, 휴먼스토리의 먹먹함…. 각 장르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하나로 녹였다. 이 요소들은 충돌하지 않고 하나로 녹아들었다. '시너지 효과'라고 하던가.
지난해 '의형제'로 관객 550만명 신화를 쓴 장훈(37) 감독, 영화 'JSA 공동경비구역', 드라마 '히트'(2007) '선덕여왕'(2009) '로열패밀리'(2011)의 히트 제조기 박상연(39) 작가, 신하균(37) 고수(33) 등 흥행과 연기 모두 검증된 배우, 신성 이제훈(27) 등의 캐스팅 등으로 기대를 모은 100억원 대작 '고지전'(제작 티피에스컴퍼니, 제공·배급 쇼박스㈜미디어플렉스)은 휴머니즘 전쟁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남북의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1952년 2월 국군 방첩대의 '강은표 중위'(신하균)는 동부전선 애록고지에서 일어난 국군 10사단 3연대 1대대 1중대 일명 '악어중대'의 중대장 사망사건이 북괴군과 국군의 내통 과 연관이 있는지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지난 2년간 남북이 일진일퇴를 거듭해 온 전략적 요충지인 애록고지에 도착한 강은표 앞의 악어중대 병사들은 좋게 말하면 산전수전 다 겪어 노련한, 나쁘게 말하면 전쟁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진 모습이었다.
중대의 실질적 리더는 중대장 대리를 맡고 있는 갓 스무살의 '신일영 대위'(이제훈)와 소대장 '김수혁 중위'(고수)다. 김수혁을 본 강은표는 놀라고 만다. 바로 2년 전 의정부 전선에서 북괴군과 교전 중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대학친구였기 때문이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의욕 넘치는 신임 중대장이 적의 수중에 넘어간 고지를 탈환하겠다는 과욕에 사로 잡혀 신일영, 김수혁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모한 작전을 벌치고 이로 인해 부대가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신일영과 김수혁은 능수능란한 작전과 두둑한 배짱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 마침내 고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작전 중 강은표는 친구 김수혁의 달라진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된다. 일부러 북괴군으로 어설프게 위장했다가 잡히는 교란 작전으로 북괴군에게 탈취된 대공포 진지를 탈환하는 활약을 펼친 것도 모자라 사로 잡은 북괴군을 모두 즉결처분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과거 전장에서 두려움에 벌벌 떨던 친구가 아니었다.
더 큰 충격은 고지를 점령한 뒤에 벌어졌다. 이등병이 술에 취한 모습을 본 강은표는 술의 출처를 찾아 나서고, 토굴 안에서 김수혁과 부대원 몇 명이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북괴군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편지뭉치가 놓여 있다. 북괴군과 내통해 온 것이 분명한 정황이다. 격분한 강은표는 이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
영화는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하는 치열한 전쟁 속에서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 그들에게 이념이나 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가치였고 그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일 수밖에 없는 여린 존재임을 말한다.
남북의 병사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에서도 구덩이 속 상자를 매개로 소통하며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지만 결국 자신과 교감한 대상이 누구인지 모른 채 총을 쏘고, 대검을 휘두르며 죽어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임을 밝힌다. 그들에게 전쟁은 어서 끝나야 할 드라마, 빠져 나가야 할 지옥이었다는 사실, 죽은 전쟁 영웅보다 살아남은 겁쟁이가 되고픈 속마음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하지만 영화가 이런 철학적인 메시지, 심각한 주제 의식에만 몰두한다면 재미는 반감될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초반에는 스릴러적 요소, 중반부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고지 전투신, 후반부에는 휴머니즘을 적절히 나눠 배치함으로써 러닝타임 133분 동안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게 한다.
7개월에 걸쳐 찾아낸 해발 650m의 실제 민둥산인 경남 함양 백양산을 6개월여의 작업을 통해 애록고지로 만들고 연인원 1만4000명, 총 4만5000발의 총알과 다이너마이트 240㎏이 투입된 전투 신들은 실제 같다는 느낌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연기 역시 명불허전이다. 신하균은 전쟁의 광기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지식인의 모습을 리얼하게 드러냈고, 고수는 살아남기 위해 연약함을 벗고 냉혹해져야 했던 그 시절 군인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펼쳐놓았다. 이제훈은 2년 전 경북 포항 전투에서 살기 위해 택해야 했던 행위에 책임을 지기 위해 중독될만큼 모르핀을 맞아가며 카리스마 넘치게 부하들을 이끌어야 하는 지휘관의 모습을 사실감있게 보여줬다. 고창석(41)과 류승수(40)는 '명품조연'이라는 성가에 걸맞는 완벽한 콤비 플레이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에 깨소금 같은 재미를 줬다. 류승룡(41), 김옥빈(24), 이다윗(17) 등도 자신의 캐릭터를 잘 살려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영화는 영화다. 마지막 전투를 앞둔 남북 군인들이 안갯속에서 '전선야곡'을 함께 부르는 모습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함축하고 있을만큼 감동스러웠지만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에도 충분하다.
장훈 감독은 "남북한 병사들이 전선야곡을 함께 부르는 것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어떤 감정으로 연기해야 할 지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뺄 수 있던 부분이 아니었고 그게 잘 융합이 되게끔 촬영을 해야 했던 부분이며, 영화에서 제일 중요했던 부분이었다.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모든 영화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전선야곡'에서 감동을 받을 수도 있고, 감정의 우격다짐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또 북괴군을 발견하고도 놓아주고 마는 국군의 모습에서 '좌클릭'을 의심할 수 있고, 국군의 배려로 목숨을 부지했으면서도 국군을 향해 서슴없이 총탄을 날리는 북괴군을 보며 '우클릭'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가 좌우를 떠나 인간을 중심에 두고 전쟁의 비극을 고발하려고 했다는 사실만큼은 왼쪽 눈을 감고 보든, 오른쪽 눈을 감고 보든 또렷이 보인다.
[email protected]
지난해 '의형제'로 관객 550만명 신화를 쓴 장훈(37) 감독, 영화 'JSA 공동경비구역', 드라마 '히트'(2007) '선덕여왕'(2009) '로열패밀리'(2011)의 히트 제조기 박상연(39) 작가, 신하균(37) 고수(33) 등 흥행과 연기 모두 검증된 배우, 신성 이제훈(27) 등의 캐스팅 등으로 기대를 모은 100억원 대작 '고지전'(제작 티피에스컴퍼니, 제공·배급 쇼박스㈜미디어플렉스)은 휴머니즘 전쟁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남북의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1952년 2월 국군 방첩대의 '강은표 중위'(신하균)는 동부전선 애록고지에서 일어난 국군 10사단 3연대 1대대 1중대 일명 '악어중대'의 중대장 사망사건이 북괴군과 국군의 내통 과 연관이 있는지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지난 2년간 남북이 일진일퇴를 거듭해 온 전략적 요충지인 애록고지에 도착한 강은표 앞의 악어중대 병사들은 좋게 말하면 산전수전 다 겪어 노련한, 나쁘게 말하면 전쟁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진 모습이었다.
중대의 실질적 리더는 중대장 대리를 맡고 있는 갓 스무살의 '신일영 대위'(이제훈)와 소대장 '김수혁 중위'(고수)다. 김수혁을 본 강은표는 놀라고 만다. 바로 2년 전 의정부 전선에서 북괴군과 교전 중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대학친구였기 때문이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의욕 넘치는 신임 중대장이 적의 수중에 넘어간 고지를 탈환하겠다는 과욕에 사로 잡혀 신일영, 김수혁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모한 작전을 벌치고 이로 인해 부대가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신일영과 김수혁은 능수능란한 작전과 두둑한 배짱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 마침내 고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작전 중 강은표는 친구 김수혁의 달라진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된다. 일부러 북괴군으로 어설프게 위장했다가 잡히는 교란 작전으로 북괴군에게 탈취된 대공포 진지를 탈환하는 활약을 펼친 것도 모자라 사로 잡은 북괴군을 모두 즉결처분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과거 전장에서 두려움에 벌벌 떨던 친구가 아니었다.
더 큰 충격은 고지를 점령한 뒤에 벌어졌다. 이등병이 술에 취한 모습을 본 강은표는 술의 출처를 찾아 나서고, 토굴 안에서 김수혁과 부대원 몇 명이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북괴군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편지뭉치가 놓여 있다. 북괴군과 내통해 온 것이 분명한 정황이다. 격분한 강은표는 이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
영화는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하는 치열한 전쟁 속에서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 그들에게 이념이나 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가치였고 그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일 수밖에 없는 여린 존재임을 말한다.
남북의 병사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에서도 구덩이 속 상자를 매개로 소통하며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지만 결국 자신과 교감한 대상이 누구인지 모른 채 총을 쏘고, 대검을 휘두르며 죽어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임을 밝힌다. 그들에게 전쟁은 어서 끝나야 할 드라마, 빠져 나가야 할 지옥이었다는 사실, 죽은 전쟁 영웅보다 살아남은 겁쟁이가 되고픈 속마음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하지만 영화가 이런 철학적인 메시지, 심각한 주제 의식에만 몰두한다면 재미는 반감될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초반에는 스릴러적 요소, 중반부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고지 전투신, 후반부에는 휴머니즘을 적절히 나눠 배치함으로써 러닝타임 133분 동안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게 한다.
7개월에 걸쳐 찾아낸 해발 650m의 실제 민둥산인 경남 함양 백양산을 6개월여의 작업을 통해 애록고지로 만들고 연인원 1만4000명, 총 4만5000발의 총알과 다이너마이트 240㎏이 투입된 전투 신들은 실제 같다는 느낌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연기 역시 명불허전이다. 신하균은 전쟁의 광기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지식인의 모습을 리얼하게 드러냈고, 고수는 살아남기 위해 연약함을 벗고 냉혹해져야 했던 그 시절 군인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펼쳐놓았다. 이제훈은 2년 전 경북 포항 전투에서 살기 위해 택해야 했던 행위에 책임을 지기 위해 중독될만큼 모르핀을 맞아가며 카리스마 넘치게 부하들을 이끌어야 하는 지휘관의 모습을 사실감있게 보여줬다. 고창석(41)과 류승수(40)는 '명품조연'이라는 성가에 걸맞는 완벽한 콤비 플레이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에 깨소금 같은 재미를 줬다. 류승룡(41), 김옥빈(24), 이다윗(17) 등도 자신의 캐릭터를 잘 살려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영화는 영화다. 마지막 전투를 앞둔 남북 군인들이 안갯속에서 '전선야곡'을 함께 부르는 모습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함축하고 있을만큼 감동스러웠지만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에도 충분하다.
장훈 감독은 "남북한 병사들이 전선야곡을 함께 부르는 것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어떤 감정으로 연기해야 할 지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뺄 수 있던 부분이 아니었고 그게 잘 융합이 되게끔 촬영을 해야 했던 부분이며, 영화에서 제일 중요했던 부분이었다.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모든 영화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전선야곡'에서 감동을 받을 수도 있고, 감정의 우격다짐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또 북괴군을 발견하고도 놓아주고 마는 국군의 모습에서 '좌클릭'을 의심할 수 있고, 국군의 배려로 목숨을 부지했으면서도 국군을 향해 서슴없이 총탄을 날리는 북괴군을 보며 '우클릭'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가 좌우를 떠나 인간을 중심에 두고 전쟁의 비극을 고발하려고 했다는 사실만큼은 왼쪽 눈을 감고 보든, 오른쪽 눈을 감고 보든 또렷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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