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 위의 명MC들' 이색 전철기관사 열전

기사등록 2011/06/20 06:00:00

최종수정 2016/12/27 22:20:32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서울시내 전철에 올라타면 '철로 위의 명MC'로 불릴 만한 이색 기관사들과 만날 수 있다.   왼쪽부터 김현걸(4호선), 민병준(7호선), 소한섭(9호선) 기관사. (사진= 서울메트로,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서울9호선운영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서울시내 전철에 올라타면 '철로 위의 명MC'로 불릴 만한 이색 기관사들과 만날 수 있다.  왼쪽부터 김현걸(4호선), 민병준(7호선), 소한섭(9호선) 기관사. (사진= 서울메트로,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서울9호선운영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직장인 권혁진(29)씨는 요즘도 4호선 전철을 탈 때면 몇 년 전 여름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빙긋이 웃음 짓곤 한다.

 더위에 지친 여름밤, 권씨는 퇴근길 4호선 만원 전철 안에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짜증스런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열차는 동대문역에 진입하고 있었고 기관사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역은 동대문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잠시 쉬고)어딜까요?"

 기관사의 귀여운 장난에 열차 안은 곧 승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권씨를 웃음 짓게 한 그때 그 기관사의 정체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4호선에는 또 한 명의 튀는 기관사가 있다. 기관사 경력 12년차인 김현걸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 기관사는 운행 중 적절한 시간대를 이용해 마치 승객들과 대화하듯 '감성방송'을 진행한다.

 그는 서울메트로 홈페이지에 올라온 민원 내용을 소개하기도 하고 승객들에게 "초기 임산부들도 눈치 보지 않고 노약자석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김 기관사는 "콩나물시루 같은 열차 안에서 고달프게 살아가는 승객들이 웃음을 머금을 수 있도록 단 몇 마디라도 따뜻한 말을 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기관사가 감성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특이하다.

 김 기관사는 생일을 맞은 어느 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는 열차 맨 뒤에 타고 있는 승무원입니다. 제가 오늘 생일을 맞았지만 새벽에 출근하느라 미역국을 못 먹었습니다. 내리시면서 저한테 생일 축하한다고 한마디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란 말을 남겼다.  

 그러자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열차 운전석까지 다가오더니 정말로 초콜릿과 사탕 등을 건네며 김 기관사의 생일을 축하해줬다.

 승객과의 소통에 감동을 받은 김 기관사는 그날 이후 더 자신감을 갖고 감성방송을 진행하게 됐다.

 7호선에도 명물 기관사가 있다. 재치 있는 방송문구와 트레이드마크 '빨간 넥타이'로 유명한 민병준(31)씨는 이미 수차례 언론에 소개된 이른바 '스타 기관사'다.

 실제로 민 기관사의 방송문구는 재치가 넘친다.

 "문이 닫힌 후 달리는 열차에 올라 탈수 있는 건 슈퍼맨이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가져오신 물건 잊지 마시고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저출산시대에 임산부는 국가유공자나 다름없습니다. 주변에 임산부가 계시다면 자리를 양보해주시고 임산부가 먼저 움직인 후에 조심히 움직여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배나온 남성분이 여성인척하고 서있으면 귀엽게 봐주시고 기분 좋게 자리를 양보해 주십시오."

 민 기관사는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방송이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어린 마음에 근무복과 모자를 쓴 기관사의 모습이 멋지게만 보였는데 직접 기관사가 되고 보니 안타까운 상황들을 직접 보고 느끼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갑갑한 객실에 몸을 구겨 넣듯이 타는 사람들, 조금의 스침으로도 감정이 상해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들, 안타깝게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힘든 생활에 지치고 인생사에 시달리는 분들께 귀로 듣는 쉼터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방송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2009년 7월 개통한 9호선 역시 일찌감치 기관사 실명제를 도입하는 등 스타 기관사를 육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서울9호선운영은 기관사들을 대상으로 정기 안내방송 훈련을 실시하고 매년 연말 최우수기관사 평가시 평가항목에 안내방송 부문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같은 스타 육성 프로그램 하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기관사는 소한섭씨다.

 9호선 홈페이지에는 소 기관사에 대한 칭찬 글이 자주 게재되고 있다.

 "여느 때처럼 9호선 급행열차를 타고 가는데 안내방송에서 '내리실 때는 걱정이나 고민이 사라지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란 말이 흘러나와 입가에 즐거운 미소를 짓게 됐습니다. 하루의 시작에 즐거운 미소가 찾아오게 해준 기관사님의 차분하고 정다운 말에 감사해요."(이갑준씨)

 "아침에 힘들게 일어나 사람 많고 짜증나는 지하철에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아침밥 걱정을 해주신 소현섭 기관사님. 님 덕택에 오늘 하루 기분 좋게 시작했습니다."(이호영씨)

 "역에 도착할 때마다 더운 날씨에 기운을 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정말 그 한마디에 힘도 나고 더위도 싹 사라지는 느낌이더라고요."(김우석씨)

 소 기관사 본인이 느끼는 '가장 반응 좋은 방송'은 아침 출근 시간대 아침식사 여부를 묻는 방송이다.

 이 방송 문구는 "고객 여러분, 오늘 아침식사는 든든하게 챙겨 드시고 나오셨습니까? 아침식사를 해야 그날 하루가 더욱 알차고 건강하다고 합니다. 바쁘고 귀찮으시더라도 항상 아침식사 챙겨 드시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등 3문장으로 구성된다.

 소 기관사는 "이 일을 하다 보니 대체로 아침식사를 거르게 되는데 우리들뿐만 아니라 출근하는 고객들도 아침을 제때 못 먹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방송을 통해 이런 말이라도 들으시면 힘이 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방송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친절한 방송의 원동력은 승객들에 대한 고마움이라는 게 소 기관사의 설명이다.

 소 기관사는 "어린 시절 전철을 처음 봤을 때 '세상에서 가장 큰 차구나. 난 꼭 저 큰 전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될 테야'란 꿈을 꾼 끝에 정말로 기관사가 됐다"며 "이후 내가 운행하는 차를 타주는 고객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그 고마움을 작게나마 표시하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안내방송"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 작은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이 되고 여러모로 좋은 결과를 가져와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지금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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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위의 명MC들' 이색 전철기관사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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