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징벌적 배상제도' 검토하는 국토부…면피용?

기사등록 2018/08/09 06:00:00

"배상액이 관건…매출 1% 부과로는 기업 긴장 안해"

미국은 수조‧수천억 부과…유럽도 천문학적

국토부, 도입 시늉만? '유명무실' 레몬법처럼 되버릴 수도

【화성=뉴시스】전진환 기자 =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이 8일 오후 경기도 화성의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을 찾아 기자들에게 BMW 차량화재 사고와 관련해 철저한 조사와 리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18.08.08. amin2@newsis.com
【화성=뉴시스】전진환 기자 =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이 8일 오후 경기도 화성의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을 찾아 기자들에게 BMW 차량화재 사고와 관련해 철저한 조사와 리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18.08.0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최희정 기자 = BMW 사태를 계기로 국토교통부가 뒤늦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면피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다.

국토부가 최근 도입한 '한국형 레몬법'(신차 동일 하자 반복시 교환·보상해주는 자동차관리법)처럼 껍데기만 그럴싸하고, 실제 소비자 피해 구제는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8일 경기도 화성에 소재한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며 "늑장 리콜 또는 고의로 결함 사실을 은폐·축소하는 제작사는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의 처벌을 받도록 제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고의·악의적으로 불법행위를 한 제조사가 입증된 재산상 손해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피해자에게 물게 하는 제도다.

국토부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때 국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관련 법안이 잇달아 발의됐지만 3년 째 표류하고 있다. 국토부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 소비자들은 미국 소비자의 10%에도 못 미치는 배상을 받았다.

그러나 BMW 차량 화재 사고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자 정부가 뒤늦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검토에 들어갔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면, 제조사의 늑장 대응에 대해 철퇴를 가할 수 있다.

BMW는 2016년부터 유럽에서 비슷한 엔진 화재 사례가 발생한 사실을 인지하고 최근까지도 원인 분석을 위한 테스트를 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늑장 리콜'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 같은 기업들의 행태에 재갈을 물릴 수 있게 된다.

주요 관건 중 하나는 배상액 규모다. 이와 관련, 국토부는 늑장 리콜에만 적용되고 있는 매출액 1%의 과징금 부과를 차량 결함 은폐나 축소시에도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날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매출액의 1% 부과를 적용하면, BMW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금액이 최대 700억원 밖에 안된다"며 "정부 조사에 빠른 대응을 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 수조,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물리는 미국, 캐나다, 유럽 등에 비해서 너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에서 토요타 차량에 급발진이 의심되는 사고로 2명 정도 사망했는데, 토요타가 빨리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1조2000억의 벌금을 물었다"며 "매출액의 1% 밖에 물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기업체에서 긴장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화성=뉴시스】전진환 기자 = 8일 오후 경기도 화성의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연구원 관계자가 BMW 차량화재 사고와 관련해 결함 부품을 설명하고 있다. 2018.08.08. amin2@newsis.com
【화성=뉴시스】전진환 기자 = 8일 오후 경기도 화성의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연구원 관계자가 BMW 차량화재 사고와 관련해 결함 부품을 설명하고 있다. 2018.08.08. [email protected]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벌금이 쥐꼬리 만하면 기업들이 내고 말지, 또 끝까지 버틴다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을 만들어도 벌금이 약하면, 소비자를 무시하는 기업 행태를 바꿀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은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에는 피해액의 최대 8배까지 배상해야 하고, 유럽도 천문학적인 배상을 규정하고 있다.

국민적 공분이 커지면서 정부가 징벌적 배상제도를 만드는 시늉은 했지만, '레몬법'과 같이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버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호근 교수는 "레몬법이 도입됐지만, 운전자가 하자를 입증할 책임을 갖고 있어 유명 무실하다. 판결 효력도 강제성이 없어서 문제다. 기업이 국토부의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 중재에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으로 간다"며 "기업체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징벌적 배상제도도 내용을 잘 봐야 한다. 손해 산정 방식은 소비자 입장에서 고려해야지, 중고차 가격 하락분이나 운행 못했을 때 손해 등 겉에 드러난 손해만 배상하게 되면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수십년 동안 한심한 소비자 보호법 아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 실정에 맞고, 소비자가 진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규정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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